제주도에 흰고양이 20마리 가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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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이런 고양이 가족이, 흰고양이 20마리

 

구름은 명랑하고, 바다는 애잔하다. 제주 애월읍 애월리 애월항. 항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발길을 옮기다보면 <곤밥 보리밥>이라고 쓴 식당 간판이 보인다. 제주 현지인들에게는 제법 숨은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나도 출출하던 차에 보리밥이나 먹어볼까,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갈 때였다. 식당 입구 텃밭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거였다. 어라, 돌담 아래에 또 한 마리 하얀 고양이가, 그 뒤에도 또 다른 하얀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온전히 흰색 고양이는 아니고, 어떤 녀석은 귓가에 또 어떤 녀석은 꼬리에, 이마에, 살짝살짝 노랑무늬가 섞여 있었다. 모두 아기고양이들이었다.

 

 

배고픔도 잊고 나는 카메라 가방에서 샘플사료 한 봉지를 꺼내 돌담 아래 부어주었다. 텃밭에 앉아 있던 녀석과 돌담 아래 앉아 있던 녀석이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오더니 음냥냥냥, 이건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하면서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소리를 들었을 게다. 텃밭에 가건물처럼 세워놓은 비닐천막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우르르 고양이들이 몰려나왔다. 흰 바탕에 노랑무늬가 살짝 섞인 아기고양이가 네 마리, 역시 똑같이 생겼지만 좀 더 몸집이 큰 녀석이 두 마리. 모두 여섯 마리였고, 모두 같은 색 비슷한 무늬를 지니고 있었다.

 

 

바닷가 마을의 희고 노란 여섯 마리의 고양이!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혼자서 막 흥분했다. 아 이건 터키나 모로코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풍경이야. 게다가 길에서 사는 고양이가 저렇게 깨끗하고 어여쁘다니. 나는 연신 셔터를 눌렀다. 녀석들이 사료를 먹거나 무리지어 있는 모습, 사소하게 혼자 앉아 있거나 그루밍하는 모습들이 모두 한 폭의 멋진 그림이 되었다. 나는 침착함을 잃고 나도 모르게 한발씩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하나 둘씩 천막 은신처로 몸을 숨겼다. 내가 다시 냉정을 되찾아 거리를 벌리자 녀석들은 도로 천막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천막 안에는 더 많은 고양이가 숨어 있는지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탕탕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밖에서 웬 낯선 사내가 어슬렁거리자 드르륵, 식당 부엌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예요?” 그제야 나는 식당에 밥 먹으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네 밥 먹으러 왔다가, 고양이를 만나서, 어쩜 저렇게 다들 예쁜지, 제가 사료를 좀, 아참, 보리밥 되나요 지금?” 횡설수설, 이게 다 고양이 때문이다. 식당 주인에 따르면 이곳의 고양이들은 모두 식당에서 밥을 주며 보살핀다고 했다. 그러니까 마당고양이나 다름없는 길고양이인 셈이다. “6년 전 여기 식당 공사할 때쯤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어서 밥을 주기 시작했죠. 그 아이가 새끼를 낳고는 여기다 데려다 놓고 갔는데, 그때 여기서 자란 새끼 중 한 마리가 지금 얘네들 엄마예요. 그 녀석도 자기 엄마처럼 새끼를 낳으면 여기다 데려다놓곤 했죠.”

 

 

그렇게 몇 세대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고양이 무리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맨 마지막에 태어난 아기고양이 여섯 마리를 포함해 모두 20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희한한 것은 그 20마리 고양이의 털빛이 하나같이 흰색에 노랑무늬가 살짝 섞인 고양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얘네들 아빠가 약간 흰색이었어요. 엄마는 삼색이. 그 사이에 태어난 애들이 하얗더라고요. 세대가 거듭될수록 색깔도 점점 더 밝아지고. 암컷들하고 새끼들은 여기 남아 있는데, 크면 집도 나가고, 나가서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오는 애들도 있고 그래요. 어떤 애는 6개월만에 찾아왔더라고요.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서.”

 

 

사는 곳이 바닷가이다 보니 바다를 드나들다가 로드킬로 죽은 고양이도 여러 마리라고 한다. 그 중 발견된 녀석 세 마리는 현재 꽃밭에 묻혀 있다고. 낚시 바늘을 삼켜서 죽은 고양이도 있다. 식당 주인이 병원까지 데려갔지만, 위에 낚시 바늘이 세 개나 박혀서 결국 죽었다는 것이다. 사실 처음 고양이밥 줄 때만 해도 이 동네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가 않았다. 욕을 하는 할머니도 있었다고. “야 이년아, 막 이러고. 처음엔 얼마나 뭐라고 했는데요. 고양이 밥 주니까, 온 동네 고양이 다 온다고. 쓰레기봉투 뜯는다고 뭐라 하고, 더럽다고 뭐라 하고. 그런데 이렇게 밥 주니까 오히려 쓰레기도 안 뜯고 그러니까 지금은 할머니들이 고양이 밥 주라고 가지고 오는 분들도 있고 그래요.”

 

 

알고 보니 식당에서는 오래 전부터 길에서 구조해온 고양이(눈이 파랗게 예쁜 삼색이)도 한 마리 실내에서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마리, 지붕 속에 자폐증 고양이가 산다고 했다. 맨 처음 밥을 줬던 고양이가 낳은 새끼라는데, 이 녀석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지붕을 내려온 적이 없다고 한다. “밤에 몰래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5년째 여전히 지붕에서 저렇게 지내요. 여기 부엌에서 밥을 올려주면 와서 먹고.” 녀석이 특히 좋아한다는 생고기를 부엌 처마에 올려주자 녀석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 부끄러워!" 장면을 연출중인 아기고양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좀 더 그곳에 머물다가 한라산 중산간을 한참이나 떠돌았다. 저녁이 다 돼 숙소 가는 길에 나는 식당 주인에게 인사도 드릴 겸 고양이도 한 번 더 구경할 겸 <곤밥 보리밥>을 찾았는데, 녀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져 위를 바라보니, 아, 고양이들이 모두 지붕에 올라가 있었다. 점심때 여섯 마리 정도 본 것 같은데, 지붕 위에 있는 녀석을 세어보니 모두 여덟 마리였다. 빛깔과 무늬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고양이 여덟 마리가 지붕에 올라가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흐리고 가끔 고양이> 작업을 위해 취재를 해온 2년 반 동안 만난 풍경 중에 최고의 풍경이라 할 만했다.

 

 

<곤밥 보리밥> 식당 지붕에서 5년째 내려오지 못하고 숨어 산다는 자폐증 고양이.

 

상상해 보라. 여덟 마리의 고양이가 제멋대로 앉아서 이쪽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리고 내가 오기 전에는 이 녀석들이 모두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늘 점심 때 만난 이상한 사람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을지도.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이 결정적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연신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녀석들은 내가 점심 때 사료를 가져왔다는 것만 기억하는지 곧바로 바닥으로 내려와 사료 재촉을 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세 마리의 고양이가 더 합류해, 내 앞에는 모두 열한 마리의 쌍둥이 같은 고양이가 앉아 있었고, 사료는 금세 동이 났다. 때마침 식당 주인이 부엌 창문을 열고 고양이들에게 생고기를 던져주었다. 갑자기 벌어진 생고기 파티. 열한 마리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냥냥거리는 이 행복한 순간. 부디 이런 순간이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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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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