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홍주, 혀끝에 머무는 감동

|


진도 홍주, 혀끝에 머무는 감동의 맛
 


한산 소곡주, 안동 소주와 함께 전통주를 대표하는 술이 진도 홍주다.

한산 소곡주가 전통 발효주의 대표라면,

진도 홍주는 안동 소주, 문배주와 함께 전통 증류주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증류주란 말 그대로 소줏고리인 고조리에 술을 내리는 맑은 술을 말한다.

이렇게 고조리로 내린 진도 홍주는 도수가 40도를 훌쩍 넘는다.



소줏고리인 고조리로 홍주를 내리는 모습. 홍주는 술을 내릴 때 지초를 사용하는데, 홍주의 붉은 빛깔은 그 때문이다.


요즘 전통주라고 이름붙여 팔리는 술의 대부분은

공장형 술도가에서 물건 생산하듯 만드는 게 사실이다.

만일 ‘나는 진도 홍주 먹어봤는데, 그냥 쓰기만 하지, 맛없던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냥 대량으로 생산한 홍주를 먹은 것이 분명하다.

진도 홍주 또한 술도가에서 만들어 파는 병술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진도에는 서천군의 한산처럼

마을마다 누룩을 딛어 홍주를 빚어내는 집이 적지 않다.

그것도 옛날 방식 그대로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고조리에 술을 내린다.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이 바로

전남 무형문화재 제26호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홍주 명인 허화자 할머니다.


홍주 명인의 집은 진도 읍내 시장 골목에 자리해 있다.

좁은 시장 골목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면 허름한 집 한 채가 보이고

그 앞에 홍주 명인 안내판이 붙어 있는

허화자 할머니 댁이 나온다.

진도에서 소주의 전통은 고려시대로 거슬러올라가지만,

소주 중에서도 진도 홍주의 내력은 조선시대 허씨 가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허씨의 유서 깊은 홍주 비법을 전수받은 이가 바로 허화자 할머니다.



 유서 깊은 허씨네 홍주 비법을 전수받은 홍주 명인 허화자 할머니가 고조리를 얹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다.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홍주 빚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못해도 홍주를 빚은 지가 60년은 넘었다는 얘기다.

내가 처음 진도 홍주를 맛본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때 맛본 술은 술도가에서 생산한 병술이어서

맛이 별로였다.

전통 방식인 고조리로 내린 술은 할머니 집을 방문했을 때 처음 먹어봤다.

맛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고나 할까.

시중에서 팔리는 술도가의 술은 쓰기만 쓰고, 독하기만 독할 뿐,

술로써의 감칠맛이 부족했다.

그러나 허화자 할머니의 홍주는 독한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마시고 난 뒤의 뒤끝이 달고 향긋했다.

혀끝이 얼얼하면서도 꽃냄새 같은 것이 살짝 스치는 기분이랄까.


내가 할머니 댁을 방문했을 때,

할머니는 때마침 술을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부뚜막에 고조리를 얹어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옛날 방식 그대로 말이다.

보리 누룩을 딛어 만드는 진도 홍주는

소주를 내릴 때 지초(해독, 이뇨 효과)라는 약초뿌리를 사용하는데,

고조리(고소리, 소줏고리)를 통과한 술이

지초를 거쳐 방울방울 술통으로 떨어지면서 지초의 성분도 함께 뒤섞인다.

진도 홍주의 빛깔이 약간 붉은색을 띠는 건 그 때문이다.



 허화자 명인은 부엌에서 하도 많이 홍주를 내려온 탓에 부엌의 벽과 천정이 온통 그을음으로 새카맣다. 


홍주는 40도를 웃도는 독한 술이지만,

뒤끝이 깨끗하고 구수하며, 약간 쓴맛이 감돈다.

그런데 이 쓴맛은 단맛과 교묘히 버무려져 알싸한 맛을 낸다.

캬아! 혀끝에 머무는 감동!

지초 특유의 약초 냄새가 날 법도 하지만,

잘 내린 술은 약초의 쓴맛보다는 특유의 향긋함이 혀끝에 남는다.

입안에 잔자누룩한 잔맛이 오래 감도는 것도 진도 홍주만의 특징이다.

그러나 워낙에 독한 증류주인지라

한잔만 마셔도 아랫배가 따뜻해진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맛있는 오리지널 전통의 허화자표 진도 홍주는

아는 사람만 주문해서, 그것도 순번을 기다려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