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떠돌고 구름같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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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돌고 구름같이 기다린다



여행하고 있을 때, 여행자는 어쩔 수 없이 장소에 몰입한다.
여기는 고비, 여기는 홉스골,
여기는 모르겠고, 여기는 심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몽골을 여행할 때만큼은 장소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버린다.

여기는 어제의 거기 같고, 여기가 아닌 곳도 여기 같아서
도처에 여기와 저기가 섞여 굳이 여기일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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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송챙겔로 이어진 초원의 길, 바람의 길.

굳이 여기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여기를 떠나
내가 탄 델리카는 황막한 도시 터송챙겔에 도착한다.
오는 길에 네 번째 펑크가 났고,
운전기사는 터송챙겔의 ‘처남 집’에 우리를 부려놓고
‘빵꾸’를 때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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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닥을 걸고 서 있는 몽골 초원의 외로운 선돌.

안주인은 남겨진 손님들에게 방금 기름에 지져낸 도넛처럼 생긴
몽골빵(버르츠크)을 한 대접 내온다.
발효된 우유를 말린 아롤과 수테차도 곁들여 내온다.
2시간이 지나도록 운전기사가 오지 않자
안주인은 또다시 코릴타슐(칼국수)을 만들어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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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벌판에 황막하게 들어선 터송챙겔의 적막한 풍경.

몽골에서 이런 기다림은 이제 익숙해졌다.
사실 몽골에서 그것도 알타이를 여행할 때
오늘은 언제까지 어디에 가야한다는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이다.
가다가 펑크가 나거나
언제든지 또다른 돌발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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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델리카 운전기사의 처남집(위). 안주인은 나에게 몽골 전통빵 버르츠크를 만들어 내놓았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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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송챙겔은 작은 도시다.
우리로 치면 읍내 정도 규모의 분위기랄까.
마을은 적막하고, 이따금 강력한 황사바람이 도심을 뒤덮는다.
솔개와 큰부리까마귀에게는 천국이고,
여행자에게는 지옥(?)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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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위)와 도심 외곽의 초원을 걸어가는 유목민(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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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피씨방도 편의점도 마땅한 숙소도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곳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고,
이곳에서 좀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양과 염소, 먹을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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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송챙겔을 벗어나 만난 어버. 어버 위에 까치가 한 마리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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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나는 토막잠을 자고,
혼자 도심 외곽의 벌판으로 나가 바람의 소리를 듣다가
그 바람 속을 걸어가는 유목민과
구름 속을 떠도는 몇 마리 솔개와
지독한 적막 속을 바람처럼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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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송챙겔 어버 인근에 들어선 '어버 오두막'. 사람들은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손님을 보낼 때 여기까지 배웅나오기도 한다.

오래
바람처럼 떠돌다 구름같이 기다린다.
기다림이 무의미해질 때쯤 운전기사가 도착했다.
4시간여의 기다림 끝에 우리는 다시 출발한다.
그러나 2시간쯤 더 달려 다섯 번째 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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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로 가는 동안 여러 번 펑크가 났고, 터송챙겔을 지나 다섯 번째 펑크가 나서 운전기사와 비지아 교수가 벌판에 차를 세운 채 펑크를 때우고 있다.

다시 타이어를 갈아끼우고, 출발.
저녁 8시 40분이 넘어 울리아스타이에 도착한다.
여기서 하루를 꼬박 달리면
내가 그토록 가고자 했던 알타이다.

* 맛있는 알타이의 푸른바람::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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