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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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2


며칠 전이었다.
늦게 퇴근한 아내를 마중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야트막한 담장에 노랑이 한 마리가 앉아서
길게 목을 빼고는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불 켜진 창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녀석의 실루엣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낭만적인 그림을 연출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 녀석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고 우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녀석은 창문 안쪽을 기웃거리며 TV를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창문 안에서 TV를 보던 사람은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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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맛일까?" 누군가 길가에 버린 담뱃갑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멍이.

그곳은 노랑새댁네 영역이었지만,
어두운 밤이어서 TV를 보던 녀석이 누구인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더구나 그때는 카메라를 가지고 나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랜동안 녀석들을 지켜봐온 예감으로 보건대
십중팔구 녀석은 휴지 먹던 ‘휴지냥’일 가능성이 높다.
노랑새댁네 식구들 중에 가장 호기심이 왕성한 녀석이 바로 그 녀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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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씨, 나도 요즘 피곤한데..." 빈 드링크병을 야속한 눈으로 바라보는 멍이.

지난 해 4월 <호기심>이란 기사에서 나는
고양이의 다양한 호기심을 사진으로 보여준 적이 있다.
이후에도 나는 곳곳에서 고양이의 호기심에 가득찬 눈빛을 만났고,
그것을 곧바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을 목격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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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왜 이리 딱딱해!" 화분에 꽂아놓은 철사를 맛보는 외출이네 삼색이(위). "이건 뭐지?" 코팅한 목장갑을 만져보고 냄새 맡는 외출이네 턱시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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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녀석들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
길 위에 떨어진 나사못이나 너트 하나에도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왜 여기에 떨어져 있는지, 관심있게 들여다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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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맛이 이러냐?" 바닥에 떨어진 스티로폼 조각을 맛보는 연립댁 첫째.

주택가 화단에 나 있는 환기구 구멍에 앞발을 넣어보거나 고개를 들이밀기도 하고,
텃밭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조각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나뭇조각이나 건초더미를 보면
꼭 한번은 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담장에 늘어진 전선줄이나 비닐끈을 봐도 그냥 지나치는 적이 없다.
심지어 녀석들은 바깥에 내놓은 소줏병이나 길가에 버려진 담뱃갑은 물론
커피캔이나 드링크병에도 호기심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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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마른 풀잎을 잡고 노는 까만코(위). "음! 씹을만하군!" 마치 껌을 씹듯 질겅질겅 건초를 씹고 있는 얼룩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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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얌이와 멍이가 주택가에 누군가 버리고 간 옷장에 관심을 보이길래 잠시 지켜본 적이 있는데,
녀석들은 약간 열린 서랍을 앞발로 잡아당기더니
그 안을 들락거리며 노는 것이었다.
과거 희봉이는 내 카메라에 너무 심한 관심을 보여
카메라만 들이대면 바싹 다가와 렌즈에 침을 발라놓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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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 없어요? 여긴 아무도 없는데..." 화단의 환기구에 머리를 집어넣고 살펴보는 얌이.

동냥이는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는 버릇이 있었고,
그냥이네 새끼들과 노랑이네 식구들은 나뭇가지나 건초만 보면
그냥 놔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고양이는 주변에 무언가 새로운 물건이 나타나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킁킁거리고 만져보고 혀를 대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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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너무 크잖아" 한때 놀이터의 테니스공을 가지고 드리블을 했던 멍이가 진짜 축구공을 보자 냄새만 맡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호기심은 자칫 고양이를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기도 한다.
펄럭이거나 날아가는 것,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것에 관심이 많은 녀석들은
종종 무턱대고 그것을 확인하려고 따라가다 로드킬을 당하거나
천적과 맞닥뜨리곤 하는 것이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은 그 때문에 생긴 것이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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