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다 보인다, 델게르 대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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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 보인다, 델게르 대초원



내가 지구에 살고 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받기에는
몽골만한 곳이 없다.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황무지와 지평선과 구름을 보고 있자면,
지구라는 행성의 거죽이 이렇게 생긴 거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불현듯 달려가고 싶은 유치한 감정이 들다가도
이유 없이 센티멘탈해져서 광대한 우주에 홀로 떨어진
‘나’의 실존을 보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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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간데 없이 펼쳐진 델게르 대초원. 몽골에서는 델게르에서는 세상이 다 보인다는 말이 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얽히고설켜서
초원에 던져진 나는 불분명한 경계를 자꾸만 넘나든다.
전생에 나는 구름이어서
아무렇게나 초원을 굴러다니다가 또 아무렇게나 흩어졌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내가 구름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이고,
이토록 구름처럼 떠도는 이유는 또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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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저쪽 끝에서 푸르공 한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간다. 그것이 지나간 초원은 다만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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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를 떠나는 날, 5월 중순인데도 하얗게 눈이 내렸다.
산맥도 초원도 호텔 앞의 푸르공도 모두 하얗다.
일찍 일어난 운전기사도 델리카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떠날 준비를 한다.
알타이에 머무는 동안
생수도 떨어지고 라면도 떨어지고 보드카도 떨어졌다.
인근 마트에서 생수와 라면을 구해 싣고 다시 눈 내리는 알타이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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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저쪽의 시커먼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이쪽은 해가 나서 초원이 환하다.

그냥 왔으니 그냥 떠나면 그만이다.
초원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다.
알타이에서 멀어질수록 초원의 눈은 점점 사라져 급기야 녹황색 벌판이 드러난다.
갑자기 초원이 넓어지면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다.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이 풍경!
몽골에서 가장 넓은 초원이라는 델게르 대초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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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게르 대초원 언덕에 우뚝 선 어버. 이곳이 바로 모든 세상을 굽어보는 언덕이다(위). 누군가 어버에 놓고 간 거울(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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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델게르 초원에서는 모든 세상이 다 보인다”
모든 세상이 다 보이는 초원.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델게르 대초원 한가운데는
오름같은 봉긋한 언덕이 솟아 있고, 그 위에 어버가 자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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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게르 대초원 한 귀퉁이에 자리한 델게르 마을의 사원.

과연 어버가 있는 언덕에 올라서자 사방의 초원과 지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초원과 지평선이다.
그 광활한 초원에 길이 몇 갈래 나 있고,
멀리서 푸르공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온다.
그건 마치 세상의 끝에서 또다른 세상의 끝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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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게르 마을의 나무 담장 위로 펼쳐진 초원의 구름과 하늘.

초원의 모든 바람이 이곳을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진 Wind-Road.
그러나 모든 것은 끝이 있게 마련이다.
초원도 사랑도 세상마저도.
우리는 모두 그 끝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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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게르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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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게르 초원 한 구석에는 델게르 마을이 있다.
초원의 한 귀퉁이에 호수를 끼고 자리한 오아시스 마을.
멀리 대초원 길에서 보면 델게르 마을과 호수는 마치 신기루처럼 보인다.
호수는 걸어가도 금방 닿을 듯 가까워보인다.
그러나 대초원 길에서 무려 10km를 달려 델게르 마을에 닿았다.
마을은 작고, 사원도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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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게르 마을에서 만난 낙타.

나무 담장을 둘러친 게르마다 낙타 한두 마리씩은 다 키우고 있다.
한낮의 낙타들은 호숫가를 어슬렁거리며
이제 막 올라온 봄풀을 뜯는다.
어떤 어미는 새끼에게 젖을 물린 채 초원을 굴러다니는 구름을 본다.
몽골에서는 정말 구름이 낮게 떠서 ‘구름이 초원을 굴러다닌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낙타의 자식사랑은 독특한 데가 있다.
낙타가 새끼를 낳았을 때 만일 사람이 만지게 되면
어미는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 사람이 가서 마두금을 1시간 정도 연주하면
신기하게도 낙타 어미는 눈물을 흘리면서 버렸던 새끼를 다시 돌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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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게르 마을의 학교. 학교 지붕 너머로 눈이 시린 하늘이 펼쳐져 있다.

종종 낙타가 쌍둥이를 낳을 때도 있는데,
몽골에서는 이를 길조로 여긴다.
반면 말은 쌍둥이를 낳을 경우 흉조라고 여겨 한 마리의 새끼를 죽여버린다고 한다.
잠시 들렀다가 곧 떠날 마을에서 나는 바쁘게 마을을 한바퀴 돈다.
보기 드물게 흙벽돌을 쌓아서 만든 흙집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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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게르 대초원에서 만난 오토바이를 탄 일가족.

눈부신 오후의 호수 물결처럼 반짝이는 마을.
델게르의 한낮은 평화롭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하다.
세상이 정지한 듯한 풍경 속을 천천히 걸어서 나는
델게르를 떠나는 차에 올랐다.

* 맛있는 알타이의 푸른바람::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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