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대사관이 보내온 종이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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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대사관이 보내온 종이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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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뜻밖의 택배를 하나 받았다.

누런 종이박스에 ‘미국대사관 공보과’라고 적혀 있었다.

오래 전부터 미국을 떨떠름하게 생각해온 나로서는

도대체 이 느닷없는 종이상자가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그 의심은 상자를 여는 순간,

의아심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세권의 책으로 구성된 한글판 ‘미국 문학 걸작선’이었다.

<2006 미국 올해의 가장 좋은 시>, <2006 O.헨리문학상 수상작품집> 그리고

<할렘 르네상스: 개인과 집단>.

도대체 이 세권의 책을 왜 보내온 걸까?

선물과 함께 보내온 공보참사관의 인사말에는

미국문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씌어 있다.

일종의 미국문학 참고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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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국 올해의 가장 좋은 시>를 펼쳐보니

존 애쉬버리와 로라 크롱크, 마크 할리데이의 시를 비롯해 선별된 7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여기에 실린 시인들이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여기에 실린 시편들은 미국문학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것이고,

미국 시의 지배적인 유형을 말해 주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을 별로 안좋아해서 미국 시도 별로 안좋아하지만,

여기에는 가령

“프로이트는 호로자식이다. (중략) 어떻게 오목한 여성적 상징이란 상징은 모조리 그의 볼록한 심성에 끼워넣는단 말인가?”(<이중의 알파벳: 플리즈 기브 미> 중에서)라고 쓴 줄리 라리오스의 시나
“공상소설의 배경은/미래여야 한다고 그 누구 말하는가?/ 이제 가장 믿기 어려운 이야기는 과거이다.”(<미래로의 전화 한통> 중에서)라고 쓴 메리 조 샐터의 시처럼
읽을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미국에서도 “현대시의 83퍼센트가 읽을만한 가치가 없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들도 엄청난 문예지 숫자와 시집의 과잉출판, 엘리트주의와 속물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가 통제 불능의 시대로 접어든 건 이미 오래되었다.

“그건 작가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현대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어쨌든 뜻밖의 선물은 내게 뜻밖의 독서를 강요했고,

뜻밖의 결론에 도달했다.

하필이면 주한미국대사관이 미국문학의 중개자 노릇까지 하고 있는데 대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 참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들이 어떤 선의든, 악의든간에

이런 식으로 전세계에 미국문학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

국내의 많은 문학 담당 교수와 문학인들에게도

이 선물이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무차별한 문학의 전파,

한편으로 무섭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해외에 있는 우리 대사관에서는 과연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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