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가꾸기 3개월, 생활을 바꾸어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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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가꾸기 3개월, 생활을 바꾸어놓다



누구에게나 경작본능이 있는 걸까. 올해 마당이 있는 시골스러운 전원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머릿속에서 떠올린 밑그림은 텃밭가꾸기였다. 우선 나는 뒤란의 두어 평 흙을 갈아엎고 이랑을 만들면서 무엇을 심을까, 고민했다. 현관에서 가까운 곳에는 부추를 심고, 그 옆에는 청양고추를 심고, 개집 옆에는 풋고추와 옥수수, 상추와 쑥갓, 참외를 심어볼까... 대파도 심고 배추도 심고 내친 김에 수박에다 오이, 토마토도 심어볼까... 생각만 해도 설레는 봄이었다. 4월 말 읍내 모종시장에 나가 나는 머릿속으로 심었던 것들을 모조리 사왔다. 그런데 처음부터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심을 욕심에 온갖 모종을 다 사왔으나, 심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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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상추 새싹이 올라온 모습.

결국 나는 집옆 공터 몇 곳에 손바닥만한 텃밭을 더 만들어 억지로 사온 것들을 체계도 없이 다 심었다. 그래도 한 가지 원칙은 있었다. 우리 가족의 입으로 들어갈 것이므로 어떤 화학비료도, 농약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을 실천하겠다는 것. 처음에는 너무 신경을 쓰느라 하루에 한번 물도 주고, 수시로 잡초도 뽑아주었다. 그런데 활착이 된 뒤에도 물을 준 탓인지, 수박 몇 포기는 습해를 입어 죽어버렸고, 참외 몇 포기는 또 영양부실로 시들시들했다. 사전 공부도 없이 텃밭을 가꾸겠다고 나섰으니, 이 정도의 피해는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름다운 퇴비장

텃밭을 가꾼지 거의 한달이 되어서야 나는 못쓰게 된 커다란 고무함지에 온갖 잡초와 음식물 찌꺼기, 개똥과 고양이똥을 배합하기 위한 퇴비장을 만들었다. 텃밭 농사는 몰라도 이 퇴비장만큼은 ‘나의 아름다운 퇴비장’으로 부를만했다. 일단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버려야 하는 수고로움이 사라졌고, 버려진 음식물 찌꺼기는 똥과 풀과 함께 버무려져 퇴비로 거듭났다. 개똥이나 고양이똥의 처리도 걱정거리였지만, 퇴비장이 생김으로써 그 문제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퇴비장의 또다른 쓸모는 빗물 저금통이라 할 수 있는 ‘빗물창고’로도 유용했다. 여기에 받은 빗물은 자연스럽게 텃밭의 거름으로 뿌리면 되는 거였다. 밭에 뿌리는 물도 절약이 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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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발갛게 익어가는 토마토.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나의 텃밭 가꾸기는 달포가 지나면서 한결 여유를 찾았다. 고춧대에서 팝콘처럼 피어난 꽃은 고스란히 고추가 되었다. 오이는 쑥쑥 키를 키워서 여기저기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매달았다. 씨앗으로 뿌린 상추와 쑥갓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금세 먹을거리가 되었다. 토마토도 주렁주렁 매달렸고, 옥수수도 날로 키를 키웠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수박과 참외는 습해와 영양부실과 부적합한 토양으로 서너 포기를 제외하곤 전멸하고 말았다. 위기는 장마철에 찾아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물폭탄이 급습한 7월 중순에 텃밭은 커다란 피해를 보았다. 잘 자라던 옥수수는 폭우와 비바람에 쓰러져 버렸고, 상추는 빗물에 쓸리고 물에 잠겨 상당수가 녹아버렸다. 배추는 배추벌레가 절반은 먹어서 배추속만 겨우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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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거름을 생산하는 퇴비장.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와 고양이똥, 개똥, 텃밭의 잡초가 이 퇴비그릇에서 분해과정을 거쳐 텃밭으로 나간다.

다행히 다른 작물은 미세한 피해를 보았을 뿐, 그럭저럭 괜찮았다. 텃밭을 가꾸면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식탁 풍경이었다. 심심하면 텃밭의 부추를 잘라다 부추전을 부쳐먹었고, 우리집에서 가장 쓸모가 많은 청양고추는 하루에도 몇 개씩 동이 났다. 갓 따온 오이는 오이무침을 해먹고, 남은 것으로 아내는 오이 마사지도 했다. 텃밭의 오이는 시원하고 달큰해서 한여름 일을 하다 하나씩 따다 씻어먹으면 간식으로도 그만이었다. 요즘에는 한창 토마토가 익어서 벌써 여러 번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먹었다. 겨우 살아남은 참외 서너 포기는 요즘 여기저기 어른 주먹만한 열매를 열심히 키워가고 있고, 풋고추는 벌써 발갛게 익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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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는 무쳐먹고, 간식으로도 먹고, 남은 것은 아내의 마사지용으로 쓰인다.

유기농 텃밭이 지구를 살린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100% 유기농이라는 것이다. 물론 유기농은 질소비료를 뿌린 일반농업의 작물보다 생장속도가 느린 편이다. 그러나 본래 이 느림이 작물의 본래 속도인 것이다. 텃밭을 가꾸면서 내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바퀴 스윽 텃밭 산책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툭하면 마당과 텃밭을 오가며 다리품을 팔았다.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하긴 했지만, 이것저것 유기농과 텃밭 공부도 하게 되었다.

유기농 텃밭이 지구를 살린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는 겨우 텃밭 하나가 무슨 지구를 살리느냐고 콧방귀를 낄지도 모르겠다. 일반 농업이나 텃밭에서 감초처럼 사용하는 질소비료(성장속도를 인위적으로 빠르게 하는 비료)는 이산화탄소보다 300배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텃밭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질소비료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질소비료를 뿌리고도 농약은 사용하지 않았으니 유기농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질소비료를 뿌린 이상(식물 내에 몸에 해로운 질산염량이 높아진다) 절대 유기농이 될 수 없다. 유기농은 농사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도 일반농업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또한 유기농에 사용되는 퇴비 유기물은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어 토양의 씻김을 막아준다. 즉 유기물이 화학비료를 뿌렸을 때보다 더 오랫동안 토양의 물을 붙잡아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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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쓸모가 많은 청양고추. 하루에도 몇 개씩 동이 나지만, 아직도 텃밭에 청양고추가 그득하다.

고작해야 3개월. 규모 있는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니고 텃밭을 가꾼 것에 불과하지만, 그 손바닥만한 텃밭 농사도 쉬운 게 없다. 때 맞춰 모종을 심거나 씨를 뿌리고, 물과 퇴비를 주고, 잡초를 뽑고, 어떤 것은 순지르기를 해주어야 하고, 어떤 것은 과감하게 솎아내주어야 한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소출이 줄어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잠시만 방치해도 망가지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은 밑거름이 충분해야 하고, 어떤 것은 덧거름도 주어야 한다. 나는 지금 그것들을 몸소 체험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다.

* Slow Life::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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