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세계자연유산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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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사도, 세계자연유산 될 수 있을까



모래가 많아서 사도(沙島).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모래호수 같다 하여 사호도(沙湖島)라고도 불렸다. 이곳의 모래는 그냥 모래가 아니라 조개껍질이 장구한 세월과 바람과 파도에 풍화되면서 생긴 것이다. 사도는 모두 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빠짐이 심한 정월 대보름께에는 사도 본섬을 비롯해 추도와 중도, 시루섬, 장사도, 나끝, 연목 등 7개의 섬이 말발굽 모양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섬과 섬을 연결하는 바닷길은 그 길이가 780m, 폭 15m에 이르며, 1년에 다섯 번 정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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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시루섬의 일몰과 석양 속의 낚시꾼들.

사도 본섬은 그리 크지 않은 섬이어서 마을에서 5분만 다리품을 팔아도 해안가에 다다를 수 있고, 섬 전체를 둘러보는데도 채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사도와 중도는 다리로 연결돼 있고, 중도와 시루섬을 연결하는 백사장은 통영의 비진도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단 두 개밖에 없는 양면 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있다. 해수욕장이라 하기엔 너무 아담한 이 중도 해수욕장을 건너면 드넓은 바위해변이 펼쳐지고 다시 시루섬과 연결되는데, 여기에는 실로 기기묘묘한 온갖 바위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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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본섬의 아담한 해수욕장(위)과 시루섬 가는 길에 바라본 바다 풍경(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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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섬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거북바위는 과거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 때 모태가 된 바위라는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이는 후대에 창작한 냄새가 역력하다. 다만 바위의 생김새가 기가 막히게 거북이를 빼닮은 건 사실이다. 이밖에도 시루섬에는 제주도 용두암의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는 용꼬리바위, 이목구비가 흡사 사람 얼굴 모양을 한 얼굴바위, 고래바위, 마당바위 등 눈길을 끄는 바위들이 산재해 있다. 얼굴바위 근처에서는 나무 화석이 바위에 박힌 규화목 화석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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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발자국 화석이 산재한 사도 퇴적층 해변 풍경(위). 또다른 공룡발자국 화석을 볼 수 있는 사도 북쪽 해안. 청설모 한 마리가 바닷가로 새알을 훔치러 내려왔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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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사도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공룡발자국 화석(천연기념물 제434호)이다. 사도 본섬을 비롯해 낭도와 추도 등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것으로, 조사 결과 사도에 755점, 추도에 1759점, 낭도에 962점, 목도에 50점, 적금도에 20점 등 총 3546점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주로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의 유형은 조각류 발자국이 80% 이상을 차지하며, 더러 용각류와 수각류 발자국이 혼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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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퇴적층 해안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위). 바닷물에 잠겨 있는 공룡발자국 화석(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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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곳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주목을 끄는 것은 발자국 행렬의 연장성인데, 추도에서는 무려 84m에 이르는 공룡 발자국 보행렬이 발견되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긴 공룡 발자국 행렬에 속하는 것으로, 시 당국에서는 현재 사도와 인근에 산재한 공룡발자국 화석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활동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세계적인 자연유산이 될 수 있는 대단한 유산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그것의 등재활동이 그저 관청의 ‘엑스포 홍보용’이라는 의구심밖엔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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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섬에서 볼 수 있는 얼굴바위(위)와 시루섬 가는 길 바위해변에서 바라본 일몰(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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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일본의 홋카이도에 있는 세계자연유산 시레토코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이 세계자연유산이 된 데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내가 한 언론사에 기고한 시레토코의 세계자연유산 등재활동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다시 소개해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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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발자국 화석으로 가득한 사도와 사도 일대 섬을 소개한 안내판.

처음 시레토코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첫걸음은 1993년 읍사무소 환경보전과에서 세계자연유산에 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어 1997년 시레토코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1인 1백평방미터(m2) 갖기 운동’과 ‘1인 8천엔 기부운동’을 전개하면서 본격적인 세계유산 등재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본래 홋카이도는 아이누족의 터전으로 130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누족이 대대로 사냥과 채집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 정부가 홋카이도를 식민지화하면서 100여 년 전 본격적인 홋카이도 개척과 인구 이주가 시작되었다. 워낙에 기상이 혹독한 곳이어서 한때 일본인들은 홋카이도 개척을 포기하고 본토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홋카이도는 제법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발전했고, 급기야 1970년대 이르러서는 샤리 마을에 부동산 투기 열풍까지 불어닥쳤다. 이에 이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다름아닌 1백평방 갖기 운동을 전개했고, 결국 그들의 터전과 시레토코의 자연환경을 지켜내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활동이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 실사단(2004년)으로부터 매우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시레토코재단은 바로 당시 1백평방 갖기 운동과 8천엔 기부운동을 통해 샤리 마을이 출자한 기금으로 설립된 것이다. 1백평방 운동에는 모두 49,024명이나 참여했으며, 당시 모은 기부금만도 5억 2천만엔이나 되었다고 한다. 샤리마을에서는 이것으로 지역 주민들이 보존하려 했던 지역의 땅 가운데 97.4퍼센를 사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지켜낸 소중한 자연은 오늘날 관광사업으로 발전해 시레토코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자연센터에서 만난 다나카 나오키 씨에 따르면, 시레토코 국립공원과 라우스 온천시설에 연간 230만 명 정도가 다녀간다고 하며, 그 중 샤리 마을을 찾는 관광객 수도 17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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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를 떠나며 바라본 흐릿한 바다와 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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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레토코는 이미 그 자체로 엄청난 자연유산을 지니고 있는 곳이었지만,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까지는 무려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또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사도 일대의 공룡 발자국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등재활동에 대한 주민 참여는 눈에 띠는 것이 없다. 사도에 실물 크기의 공룡 모형을 세우고, 어설픈 공룡공원 하나 만들어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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