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구워지는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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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구워지는 상점

                                                                                              김중일

                                                                                                                                                 

1.

도시의 동쪽 끝에는 구름이 구워지는 상점이 있다. 어두운 상점의 내부, '물 젖은 구름을 먹어보지 않은 자 어서 오라'라고 적힌 액자 속으로, 온종일 비가 내린다. 눅눅하게 젖은 문자들을 배경으로, 도시의 빌딩 숲 사이사이 온 몸이 다 잘린 민둥산처럼, 무뚝뚝한 대머리가 돋보이는 사내가, 동터오는 오븐에서 붉게 구워진 구름 한 판을 선반 위로 다시 꺼내놓는다. 장마 내내 말없이 구름만 구워낸 사내의 뺨 위로, 어느새 담쟁이넝쿨이 시커멓게 올라붙어 있다. 지친 사내는 선 채로 눈을 감고 잠시 벽에 등을 기댄다. 액자 밖으로 뚝뚝 떨어지던 문자들이 사내의 굽은 등판에 검게 스며든다. 빗줄기는 사내의 머릿속으로 옮아온다. 촘촘한 빗줄기들이 사내의 머릿속에서 철사처럼 얽힌다. 사내는 생각한다. 나는 왜 이곳을 지키게 되었는다? 이곳은 과연 존재하는 곳인가? 도시에서 명부로 가는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들어, 선 채로 구름 한점 더운 술에 적셔먹는 곳. 음식값을 말로 지불하는 곳. 흥청망청 말을 내뱉던 사람들이 점점 말이 없어지는 곳. 점점 빈털터리가 되는 곳. 끊임없이 빛나는 은화 같은 말들을 쏟아내던 요술 지갑인 혀를 순식간에 도둑맞는 곳. 사람들은 도시에서 함부로 덮고 아무렇게나 밀쳐놓은 이불처럼, 피곤한 혀를 이제 그만, 목구멍 깊이 개놓고 상점 앞에 묵묵히 줄을 서고 있다.

2.

도시의 서쪽 끝에는 여자의 부엌이 있다. 여자는 온종일 무거운 구름을 구워 내느라 어깨가 촛농처럼 녹아내린 사내를 위해, 준비한 요리를 노을 위에 얹는다. 구름을 만두피처럼 얇게 펴서 검푸르게 반죽한 도시를 통째로 싼 요리를, 여자가 번번이 시키멓게 태운 하룻밤을, 사내는 군소리 없이 밤새도록 목이 미어지게 먹어치운다. 식사를 마치자 말끔한 식탁처럼 아침이 오고, 여자는 상점으로 출근하는 사내를 위해 구름 위를 걷는 낙타 한 마리를 준비한다.
                 

                                      -- 김중일 <국경꽃집>(창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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