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 없는 길고양이들의 마지막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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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곳 없는 길고양이의 마지막 쉼터

 

  서빙고 길거리에 매서운 강바람이 불어닥친다.
이 추운 겨울에 집도 없이 떠돌며 한뎃잠을 자는 길고양이를 생각하면 마음 한 편이 짠하다.
무엇보다 녀석들을 더 춥게 만드는 것은
유독 길고양이에게 혹독하고 천대하고 멸시하는 이 땅의 현실이다.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길고양이를 보호하고 돌보는 손길은 아직도 가엾고 외로운 섬처럼 존재할 뿐이다.
그 섬이 되는 일은 이 땅에서 여전히 불편부당한 일이므로
숱한 외로움과 손가락질을 감당해야 한다.
그 길은 고생을 자초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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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돌보는 쵸끼맘 님의 손길. 나비야 고양이 쉼터.

여기 한 사람이 있다.
<나비야 고양이 쉼터>를 운영하는 쵸끼맘(본명 유주연) 님.
서빙고 아파트 한켠을 전세 얻어 고양이 쉼터를 열어놓고 있다.
그러니까 여기는 사람이 사는 아파트가 아니라 고양이가 사는 아파트인 셈이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말문이 턱 막힌다.
거실 중앙을 턱하니 차지하고 있는 캣타워에 여기저기 고양이들이 앉아 있고,
그 옆에 깔린 이불 위에도,
부엌의 냉장고와 탁자 위에도 온통 고양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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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타워 구멍 속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신디(사진 오른쪽)와 바람이(위). 거실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들(아래). '나비야'에는 모두 43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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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안쪽에 자리한 3개의 방도 마찬가지다.
제일 큰방에는 호흡기 질환과 신장질환이 있는 고양이들이 격리돼 있고,
오른쪽 방에는 신참 고양이들이,
왼쪽 방에는 임신묘들이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모두 몇 마리나 되나요?”
“43마리 정도...”
들고 나는 고양이들이 많아 쵸끼맘 님도 뒷말을 흐렸다.
사실 혼자서 이 많은 고양이들을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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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타워에 올라앉은 고양이들(위). 이불과 방석을 깔고 자고 있는 고양이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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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비야’에는 고양이를 돌보러 오는 자원봉사자가 17명 정도 된다.
“외국인 봉사자가 10명, 그 중에 정기적으로 오는 분이 7명이다. 한국인은 원래 3명이었는데, 봉사자를 구한다는 공지가 나간 뒤에 7명으로 늘었다.”
사실 외국에서는 동물 보호소 자원봉사가 매우 일상적인 봉사활동이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자원봉사를 한다고 하면 ‘참 할 일 없는 인간’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 이런 인식의 차이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유기묘나 장애묘 입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고양이 보호시설을 찾는 국내의 입양인들이 주로 예쁘고 어리고 멀쩡한 고양이를 찾는다면,
외국인은 주로 장애묘, 사연 있는 유기묘 등을 입양해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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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신참 고양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 사진 왼쪽은 호주에서 온 외국인 자원봉사자다(위). 호흡기 질환과 구내염, 신장질환으로 격리 보호중인 고양이들.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녀석들이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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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가 외국인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인데,
한 외국인 신문에도 ‘나비야’가 상세하게 소개된 바 있다.
내가 ‘나비야’를 찾은 날에도
2명의 외국인 남자가 고양이 입양문제로 찾아왔다.
그들은 고양이의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고양이의 사연을 묻곤 했다.
여기에 온 고양이 치고 사연 하나쯤 없는 고양이가 어디 있을까.
다쳐서 오고, 버려져서 오고, 안락사 직전에 데려오고, 올무에 걸려 구조해오고...
다 그렇게 갈데까지 가서 막장에 다다른 고양이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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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이코 아저씨로부터 본드 테러를 당하고, 내장을 갈라서 내던진 새끼들의 참상을 겪어야 했던 삐삐(사진 오른쪽 가운데). 외국인에게 입양되었다(위). 모란시장 건강원에서 구조해온 흰둥이(아래, 사진 왼쪽 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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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8마리 새끼를 낳은 일명 출산드라, 맨 처음 나비야에 온 식구다.
우두마미(우리, 두리, 마리, 미오)는 6개월 된 어린 임신묘가 낳은 아이들인데,
당시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6개월짜리 어미는 결국 밥 주는 장소에서 새끼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 떨어뜨린 새끼들의 탯줄을 끊어주고 캣맘(지금 이곳의 자원봉사자다)이 데려다 살려서 데려온 녀석들이 바로 우두마미다.
바람이는 ‘여의도 올무 고양이’ 사건의 주인공으로 임신이 된 상태에서 구조해왔고,
나루는 양쪽 눈이 먼 고양이로 2007년 눈이 엄청 내리던 어느 날 강변대교 쪽 풀숲에 버려진 것을 구조해왔다.
지금은 입양이 된 흰둥이 녀석 하나는 모란시장 건강원에서 구조해 왔는데,
누군가 공무원을 사칭해 불법포획을 한 뒤 건강원에 팔아넘긴 어처구니없는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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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 아래 노랑이 선샤인과 놀고 있는 쵸끼맘 님(위). 선샤인을 안고 토닥이는 천랑 님(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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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외국인이 입양해 간 ‘삐삐’는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상을 겪었던 아이다.
삐삐에겐 새끼가 몇 마리 있었는데, 한 캣맘이 밥을 주고 보살펴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 ‘사이코’ 아저씨가 어느 날 삐삐의 새끼들을 잡아서 캣맘이 밥 주는 곳에다
내장을 다 갈라 보이게 한 상태로 버렸다고 한다.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미친놈은 삐삐의 양쪽 귀에 본드를 칠해 붙여놓고 눈에도 본드를 주입해놓았더라는 것이다.
아마 외국 같았으면 이런 범죄행위는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대한민국이다.
고양이를 죽이고 학대하는 것보다 고양이에게 밥주고 보살피는 것이 더 잘못이라고 우겨대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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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인 신문에 소개된 '나비야'(위). 나비야를 거쳐간 고양이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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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한민국에서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고양이 쉼터’를 하겠다고 나선 쵸끼맘 님은
알고보면
미국에서 11년이나 살다 온 뉴요커 출신이다.
그녀가 처음부터 고양이 보호소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원래부터 고양이를 키웠던 그녀는 2003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더러 포획을 해서 중성화수술을 시킨 뒤 방사하는 캣맘 노릇을 해오다
2005년 본격적인 고양이 보호소를 열었다.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결혼 전 8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결혼하고 고양이 문제로 많이 다퉜다. 함께 사는 고양이보다도 구조를 해온 고양이가 갈 데가 없었던 것이다. 구조해서 데려오면 신랑은 입양보내지 않는다고 뭐라 하고, 부모님도 싫어하고...그래서 고양이를 위한 공간을 따로 갖기로 했다. 처음에는 원룸에 데려다놓았다가 환경이 별로 좋지 못해 아파트로 옮겼다. 고보협(고양이보호협회)과 자원봉사자의 도움도 받았다.”
결정적으로 당시 ‘장수동 개지옥 사건’이 벌어졌다.
보신탕 하는 사람이 개들을 캐비닛과 길에다 아무렇게나 풀어놓고 엉망으로 키우고 있었는데,
시민단체에서 그곳의 개들을 구조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사건을 보면서 ‘고양이 쉼터’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견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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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을 위해 나비야를 찾은 2명의 외국인.

“새벽에 구조 나가고, 길고양이 밥 준다고 검정비닐 들고 다니고 하니까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도 많이 했다.”
그건 아무래도 괜찮다.
문제는 고양이 쉼터를 운영하기 위한 ‘유지비용’이었다.
“그래서 닭집을 하게 됐다. 5시에 문을 열면 자정이 넘어 끝난다. 저녁에 들어가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과 좀 놀아주고...”
오전에 ‘나비야’에 잠시 들르고...
이렇게 바쁘게 살지 않으면 ‘쉼터’를 운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녀는 ‘나비야’에 보호중인 고양이들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사료에
가장 좋은 소나무 톱밥 모래를 쓴다.
이건 녀석들의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다.
좋지 않은 사료와 모래를 쓰게 되면 어차피 병원비가 더 들어간다.
갈데까지 간, 그래서 더 이상 갈곳이 없어 이곳까지 흘러온 녀석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그녀와 ‘나비야’의 모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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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인이 나비야 거실에 장식한 고양이 나비와 날으는 나비.

나비야 거실에서는 한 외국인 자원봉사자가 붙여놓은 장식물을 볼 수 있다.
땅 위에 검은 나비(고양이)를 한 마리 붙여놓고 하늘에 꽃과 나비를 만들어 붙인 작품이다.
이 외국인은 한국에서 고양이 ‘나비’와 날아다니는 ‘나비’가 동음이의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해서 작품을 만든 외국인에게 한국에서는 이 나비와 저 나비가 같은 나비라 불린다고 하자
신기한듯 놀라워했다고 한다.

오늘도 나비야에 나비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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