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텃밭 휴게소

|

길고양이 텃밭 휴게소



지난 4개월 동안 먹이를 준 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쇠박새 한 마리를 현관 앞에 두고 간 바람이는
텃밭이 휴게소다.

길고양이 텃밭 휴게소.
녀석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에도
텃밭의 콩포기, 수숫대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텃밭의 콩포기 그늘에 앉아 있는 바람이.

이곳은 또한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는 은신처이자
나의 동정을 살피는 감시초소이기도 하다.
녀석은 텃밭 콩포기 아래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 있다가
내가 먹이그릇을 들고 나타나면
부리나케 마당을 가로질러 테라스 그늘로 들어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문 옆 텃밭 두둑에서 나의 동정을 살피는 바람이.

그러나
녀석은 아직도 나에 대해 100% 신뢰하지는 않고 있다.
내가 다가서도 도망칠 단계는 넘어섰으나,
여전히 녀석은 내가 손을 내밀어도 다가오지 않고,
내 앞에서 그루밍을 하거나
‘발라당’을 하지도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화단에는 옥잠화가 피어 있고, 텃밭에는 토마토가 익어가고 있다. 바람이는 그 속에서 텃밭의 일부처럼 앉아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무 근접했다 싶으면
녀석은 어느 새 텃밭 휴게소로 피난을 가버린다.
이웃집 텃밭에는 요즘 옥수수가 한창 키를 키우고,
토마토 열매는 붉고 탐스럽게 익어서 군침을 돌게 한다.
수수꽃도 피고 콩이며 호박덩굴도 무성하다.
그 속에서 바람이는 텃밭의 일부인양 앉아 있다.
더러 토마토를 배경으로, 더러 콩포기를 배경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콩포기 수숫대 그늘에 식빵 굽는 자세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바람이.

한번은 큰길가 두부집에서 식사를 하고
‘비지’를 한 봉지 얻어와 먹고 남은 것을 거름 삼아 화단에 뿌렸더니
바람이 녀석이 그것을 주워먹는 것이었다.
그것도 꽤 먹을 만하다는 표정으로.
한때 바람이에게 하루 세끼 사료를 내놓은 적도 있지만,
사료가 바닥을 보이면서
최근에는 하루에 한번 정도만 내놓아
아무래도 녀석은 그것으로라도 배를 채울 모양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화단에 거름으로 뿌린 비지를 끌어당겨 먹고 있는 바람이.

녀석은 그렇게 거름으로 뿌린 비지의 절반 가량을 먹어치우고
다시금 텃밭 그늘로 들어가
꾸벅꾸벅 졸았다.
시간이 토마토 열매처럼 익어가는 텃밭에서
녀석은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다.

* 고양이의 사생활:: http://gurum.tistory.com/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