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고양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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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고양이는 없다

 

 

지금부터 나는 주목받지 못하는 한 고양이와

그의 두 아기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녀석의 이름은 승냥이.

오래 전 당돌이와 순둥이의 영역을 침입해 툭하면 사료를 빼앗아먹던

바로 그 녀석이다.

 

"뭔 눈이 이리도 많이 왔다냐..."

 

그리고 더 오래 전 이 녀석은 우리동네 교회냥이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지난 해 봄 이웃마을인 당돌이네 영역 근처로

거처를 옮겼다.

녀석은 아주 못생겼다.

그러나 이 못생김은 장애로 인한 것이다.

녀석은 속칭 ‘언청이’라 불리는 장애를 안고 태어나

음식물을 씹을 때면 늘 입 밖으로 조금씩 흘리곤 한다.

 

엄마와 똑같이 생긴 승냥이네 아기고양이.

 

이건 다시 말해 녀석의 먹이활동이 쉽지 않다는 얘기도 된다.

사실 나는 내가 급식을 해온 당돌이와 순둥이뿐만 아니라

과거 임신한 여울이에게까지 먹이를 강탈해가는 녀석을

곱게 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 가을 이후 녀석이 두 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노을이네 급식소를 기웃거릴 때부터 내 생각은 바뀌고 말았다.

 

흰색이 좀더 많은 승냥이네 또다른 아기고양이.

노을이네 영역 인근에서 기회를 보고 있는 승냥이와 아기고양이.

 

녀석은 온갖 눈치를 보며 먹이동냥을 왔고,

언제나 먹이를 발견하면 두 마리의 새끼를 번갈아 불러 먼저 먹이곤 했다.

녀석의 모성애는 다른 고양이와 다를 것없이 지극했다.

내가 녀석의 밥상을 따로 챙겨주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먹이를 먹으러 온 승냥이네 아기고양이를 바라보는 노을이(위). 급식소에서 맞닥뜨린 승냥이와 당돌이(아래).

 

세상에 나쁜 고양이는 없다.

가끔씩 미운 짓을 일삼는 ‘미운 고양이’는 있을지언정

나쁜 고양이는 없는 법이다.

따지고보면 녀석이 과거 순둥이네 밥을 강탈해가고 여울이에게 못살게 굴었던 것도

오로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길고양이로 태어난 이상 하루하루 사는 게 투쟁이고 전쟁이다.

 

승냥이가 밭에서 만난 개(위). 개를 보고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고 있다(아래).

 

더더욱 신체상 핸디캡을 안고 살아야 하는 녀석으로서는

남보다 더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요즘 녀석은 노을이네 급식소로 거의 매일같이 찾아온다.

노을이네 급식소 인근은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노을이와 무럭이 3남매가 주인이다.

하지만 덩달이와 순둥이도 지금은 이곳에서 주로 급식을 받는다.

 

노을이네 영역과 경계인 고추밭, 파밭에 앉아 있는 승냥이.

 

과거 급식소가 있던 골목은 겨우내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그쪽에 밥상을 차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밭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폐차장은 가만이와 카오스의 영역이고

밭을 사이에 두고 오른편은 승냥이와 두 마리의 아기고양이 영역이다.

그러니까 그 중심인 밭두렁에다 나는

세 곳에 나눠 사료를 주곤 한다.

 

승냥이는 선천적으로 입에 장애가 있는 장애묘이다.

 

한 곳은 노을이와 무럭이네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한 곳은 순둥이와 당돌이를 위한 것이며,

나머지 한 곳은 승냥이네를 위한 것이다.

가만이와 카오스는 따로 폐차장에다 밥상을 차려준다.

하지만 승냥이는 이곳이 자기 영역이 아니다보니

언제나 눈치를 보며 밥을 먹는다.

종종 노을이가 승냥이의 출입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담장 위에서 뛰어내리는 승냥이와 아기고양이.

 

노을이 녀석 참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어떤 날은 침입냥에게 한없이 관대하다가도

종종 기분이 안좋을 때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쫓아낸다.

심지어 어떤 때는 폐차장까지 가서 남의 영역의 카오스와 가만이까지

위협을 가하고 쫓아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아주 간혹 일어난다.

어찌됐든 승냥이는 요즘 두 마리의 아기고양이를 데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노을이네 영역을 찾아온다.

 

급식은 짧고 겨울은 길다.

 

문제는 녀석이 나에 대한 경계심이 여전하다는 것인데,

이는 두 마리 아기고양이에게도 적용되는지

녀석들은 내 주변 10미터 이내로는 접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만일 내가 먼저 일정거리 이상 가까이 다가서면

녀석들은 어김없이 줄행랑을 놓고 만다.

내가 밥 주는 녀석 중에 나를 보고 도망치는 유일한 고양이가 있다면

바로 이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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