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파란마을 그림같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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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파란마을 그림같은 고양이

 

저녁이 늦어 쉐프샤우엔(Chefchaouen)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손님들 모두가 메디나로 가는 여행자들이어서 택시 한 대에 다섯 명씩 끼어 함맘 광장에 내렸다. 자 그럼 이제 <호텔 드 무니르>를 찾아볼까? 미리 검색해 적당한 가격의 모로코 전통 호텔을 알아본 것이다. 광장의 구멍가게에서는 난처한듯 고개를 가로질렀다. 설명하기가 매우 복잡하다는 표정이었다. 그 때 무언가를 사러 온 소년이 자기를 따라오라며 길안내를 나섰다. 친절하게도 녀석은 골목을 몇 개 돌아 호텔 앞에 나를 데려다놓고는 “저기야, 자, 무니르 맞지?” 하고는 사라졌다. 사실 모로코에서는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 때 다 이유가 있다.

모든 친절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짐을 들어주거나 길안내를 하거나 자신의 집을 찍으라고 해서 찍으면 영락없이 돈을 요구한다. 이런 면에서는 아이도 어른도 예외 없다. 그런데 아이는 쿨하게 숙소를 가리키고는 사라졌다. 저녁 10시가 넘어, 그것도 비를 쫄딱 맞고 도착한 손님을 보고 호텔 주인은 한심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방은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비가 내리고, 이곳은 산악지대여서 밤에는 꽤 날씨가 쌀쌀했다. 추적추적 밤비는 내리는데 나는 여행 가방을 침대 옆에 내려놓자마자 나무토막처럼 침대에 쓰러져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아침까지 나는 죽은 듯이 잤다.

 

 

새벽 6시에 잠이 깨어 호텔을 나서는데, 짜증이 난 호텔주인 왈 “지금은 다들 잠든 시간이다. 저 나무와 돌까지도.” 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어준다. 모로코에서는 대부분의 전통호텔이 밤늦게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아침 여덟 시 쯤에야 문을 열어주곤 한다. 암묵적으로 통근이 존재하는 셈이다. 어쨌든 그렇게 호텔을 나와 새벽 쉐프샤우엔을 걸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의 쉐프샤우엔 골목. 아마도 그 기분 모를 거다. 이건 뭐 환상 그 자체다. 마치 바닷속을 천천히 걷는 기분이랄까. 혹은 하늘 위를 사뿐사뿐 걷는 기분이랄까.

모로코의 쉐프샤우엔은 우리에게 별로 친숙한 지명이 아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이곳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힐링 플레이스’로 유명하다. 론리 플래닛은 쉐프샤우엔을 일러 모로코에서 가장 매력적인(사랑스러운) 여행지로 꼽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곳에 다양한 수식어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스머프 마을, 동화 속 마을,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마을, 파란마을, 시간이 멈춘 마을. 쉐프샤우엔의 가장 큰 특징은 메디나(구시가)의 모든 집들이 파란색(인디고 블루, 터키 블루, 스모키 블루 등 다양한 푸른색이 공존한다)으로 칠해져 있다는 것이다.

 

 

모로코에서는 지역과 인종에 따라 자신들을 상징하는 빛깔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가령 마라케시는 붉은 계통, 페스는 황토색, 쉐프샤우엔과 라바트는 파란색, 물론 탕헤르처럼 다양한 빛깔이 한 도시에 혼재하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다. 사실 쉐프샤우엔이 나에게 특별했던 건 다른 데 있다. 바로 고양이. 이곳의 고양이는 어디에 있건 그림과도 같았다. 바다색 벽면을 배경으로 계단에 앉아 있는 고양이 혹은 하늘색 대문 앞에 앉아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 젤라바를 입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다소곳이 앉아 먼산을 응시하는 고양이.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인 골목에서 파란집 창문을 향해 먹이를 달라고 냐앙냐앙 보채는 고양이. 고양이끼리 서로 어울려 장난을 치고, 서로 엉켜 잠을 자는 고양이.

흔히 모로코를 고양이의 천국이라 부르는데, 풍경만 놓고 보자면 쉐프샤우엔이야말로 그렇게 불러도 가장 어울리는 곳이다. 하늘색과 파란색이 어울린 풍경 속에서 새근새근 천사처럼 잠든 고양이를 상상해 보라. 무엇보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거다. 쉐프샤우엔에 도착한 첫날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비 오는 쉐프샤우엔 골목을 걷자니 이건 정말 바닷속을 천천히 유영하는 것만 같았다. 이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새벽에도 어떤 여행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자가 떠나는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골목의 고양이 한 마리. 이것이 내가 쉐프샤우엔에서 처음 만난 고양이의 풍경이다.

 

 

어느 골목이나 푸른색이 가득했고, 그 푸른색과 어울리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조차 파랗게 울려 퍼졌다. 한 골목을 지날 때 유난히 푸르게 울려 퍼지는 고양이 울음이 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잠시 후 골목 끝의 아치형 문을 넘어 중년의 아저씨와 젖소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칼을 든 아저씨의 손에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무슨 양고기인지 염소고기인지 모를 부속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쉐프샤우엔은 양가죽이나 양털, 캐시미어를 이용한 가죽과 직물공예로도 유명한 곳이다. 때문에 골목에 양가죽이 쌓여 있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고양이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달라며 계속해서 뒤따라오며 야옹거렸다. 아저씨는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고, 고양이는 여전히 대문 앞에서 냐앙냐앙 울었다. 잠시 후 대문이 열리고 다시 아저씨가 나왔다. 한줌의 고기를 손에 들고 나타난 그는 고양이에게 그것을 한 점씩 던져주었다. 고양이는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녀석은 이제 파란 골목 한복판에서 느긋하게 그루밍을 하는데, 사람이 지나가도 비켜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고양이를 비켜가곤 했다. 실제로 밑에서 올라오던 아주머니 한 분은 고양이 앞에서 당연하다는 듯 몸을 비켜 올라갔다.

 

 

 

 골목과 벽면의 파란색은 고양이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파란색으로 인해 고양이는 더 돋보였고, 고양이로 인해 파란 골목은 생기가 돌았다. 그루밍을 끝마친 녀석은 20~30미터쯤 경사진 골목을 내려와 또 다른 집에 이르러 주변을 기웃거렸다. 다른 집에서 동냥을 해보려는 심산인 거다. 녀석은 그것이 마치 정해진 일과라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때 외출을 나갔던 소녀가 고양이 앞을 지나쳐 동굴과도 같은 파란색 출입구로 들어섰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소녀와 흘끔 소녀의 눈치를 보는 고양이. 별것도 아닌 풍경인데, 내 눈에는 빗방울이 살짝 어렸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거의 그쳤지만, 하늘엔 여전히 구름이 가득했다. 지구 반대편 파란색으로 가득한 쉐프샤우엔의 골목에서 한 마리의 고양이와 대면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내 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파란 골목에 앉은 고양이 눈 속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온 앙상한 여행자의 모습이 살짝 담겨 있었다. -- 신작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에 실려 있습니다.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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