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웅박 팔자' 뒤웅박은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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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의 쓰임새: 바가지의 문화사


옛말에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어떤 남자를 만나 사느냐에 따라 팔자가 달라진다는 말인데, 이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를 괄시하는 말에 다름아니었다. 본래 뒤웅박이란 박을 반으로 쪼개어 만드는 다른 바가지와는 달리 꼭지 부분에 주먹만한 구멍을 뚫어 속을 비워내고, 그 안에 곡식 등을 담는 일종의 씨바가지다.

이 뒤웅박을 여자 팔자에 비유한 데에는, 어떤 집에서는 거기에 을 담고, 어떤 집에서는 보릿겨를 담는 등 집안에 따라 뒤웅박의 팔자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내년에 뿌릴 씨앗을 보관하는 씨오쟁이 노릇이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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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농가에서 씨앗을 주로 보관하던 뒤웅박이다.

그런 점에서 뒤웅박은 농가에서 결코 괄시의 대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오히려 씨앗이 담긴 뒤웅박은 바람이 잘 통하는 마루나 헛간 기둥에 끈을 매달아 소중히 보관했다. 이는 쥐나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인데, 애당초 구멍을 작게 만든 까닭도 그 때문이다. 우리 말에 ‘바가지 긁는다’, ‘바가지 썼다’처럼 바가지는 언어 습관에서 좋지 않은 뜻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으나, 농경사회였던 과거 우리네 생활에 있어서는 바가지가 매우 긴요하고도 쓰임이 많았던 생활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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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마을 부엌의 부뚜막에서 만난 성냥이 담긴 바가지.

씨앗을 저장했던 것은 기본이고, 밥이나 반찬을 담거나 술이나 물을 떠 마시고, 곡물을 퍼내거나 되질을 할 때에도 바가지를 썼다. 나락이 익어갈 때쯤에는 논두렁에 나가 시끄럽게 바가지를 두드려 새를 쫓았다. 또 민간에서는 사람이 죽어 관을 옮길 때 문 밖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깨뜨리고 나가는 풍습이 있었다.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잡귀를 물리친다고 여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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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항아리물에 바가지를 거꾸로 띄워놓고 물박장단을 치며 정선아라리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항아리물에 띄운 바가지는 오묘한 소리가 난다.

쓸모가 많았던 만큼 바가지는 그 종류도 다양했다. 뒤웅박이 씨오쟁이 노릇을 했다면, 조롱박(표주박)은 물을 떠 마시는 용도로 썼다. 또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릴 때는 나무와 대로 긴 자루를 매단 두레박을, 쇠죽이나 여물을 떠낼 때는 이른바 나무로 깎아만든 쇠죽바가지를 이용했다. 뒤웅박이나 물바가지, 쌀바가지, 표주박 등은 모두 박을 켜서 속을 드러낸 뒤 만든 것이고, 두레박이나 쇠죽바가지는 나무를 깎거나 송판을 짜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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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의 약수터나 우물가에서 물을 떠먹던 표주박. 주로 조롱박으로 표주박을 만들지만, 이렇게 나무를 깎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하고 긴요한 쓰임새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바가지가 깨져도 태우지 않는 금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쓸모가 많았던 바가지도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바가지와 1회용 그릇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바가지가 사라지기 시작하자 단출한 초가 지붕에 박넝쿨이 얹혀 있는 정겨운 모습도 덩달아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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