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물고기 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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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물고기 여인숙


                                                                                                                  이용한


                            누각,


       떠도는 물고기 여인숙은 비루하고 이따금

       녹슨 지느러미를 턴다

       문을 열 때마다 모래바람이 들이치는 자정을 껴안고

       너는 지난 시절의 물고기를 중얼거린다

       대추야자나무가 한 그루 간신히 드리웠고,

       낙타가 한 마리 초승달을 업고 간다

       여긴 초원도 없고, 술집도 없으며, 당신도 없는

       무미한 건조가 시간을 갉아먹는 사막의 누각이다

       발목은 희미해서--,

       떠밀려온 것들은 모두 화석처럼 늙었다

       골목마다 첩첩한 숨결만이 깊고,

       휘영청 달밤은 글썽인다.


                             그리고 이 녀석들,


       떠도는 물고기 여인숙에서는 사막이 곧 복도이며, 사막만이 유일한 밀실이다 섭씨 48도의 날씨에 냉방이 전혀 되지 않는 문제는 이 곳에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허구헌날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같이 쓸모 없는 자들이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자들이다 시인(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신기루같은 환상뿐이다), 기타리스트(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수전증 걸린 손가락뿐이다), 의사(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주방용 칼과 망치가 전부다), 청소부(그는 하루종일 움막으로 들이치는 모래를 쓸어낸다, 쓸데없는 짓이다), 야구선수(그는 녹색의 그라운드를 잃었다 그라운드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녀석들--,


       모래장수: 그는 밤중에 사막 깊숙이 들어가 등짐 가득 모래를 싣고 나와서는 아침 일찍 대추야자나무 그늘에 앉아 모래를 판다 세상이 온통 사막인데, 모래를 사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그는 사막에서 왔고, 그가 파는 모래는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팔려 나간다 모래가 다 팔리면, 그는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담배장수: 담배장수인 그는 유효기간이 15년이나 지난 콘돔을 내밀었다 담배 가게에서 콘돔을 팔다니! 세상이 망했어도 콘돔이 팔리는 것처럼 세상이 다 망해도 담배 가게는 망하지 않는다 그는 손님이 올 때마다 어린시절에 보았던 영화 대사를 인사하듯 읊어주곤 했다 “사막에선 종종 물새 뼈가 발견되곤 하지. 바다처럼 보이는 사막의 신기루를 보고 천리를 날아온 물새들이야.” 그의 기억력은 정확했지만, 정작 담배를 팔 때면 거스름돈을 더 내줄 때가 많아서 하루종일 담배를 팔아도 언제나 돈이 모자라곤 했다.


       문지기: 그는 사막의 입구에서 사막을 통과하려는 자들에게 통행세를 받는 문지기다 그러나 통행세를 바친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그가 있는 곳은 문도 아니고, 통행세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 때마다 그는 주먹 아니면 몽둥이로 한 대씩 얻어맞았다 그렇게 맞아서 온몸에 멍이 들었어도 그는 문지기를 때려치우지 않고 있다 “망할 놈의 세상!” 이미 망한 세상에서도 그에게 세상은 한번 더 망해야 할 모양이었다.

 

       가수: 그는 가수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바친 대가로 목소리를 잃었다 어차피 할말도 없는 세상에서 그의 말할 수 없는 업보는 말없이 저물었다 꼭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이 세상을 망쳐놓았는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 많은 입들은 다 어디로 갔었는지 그는 딱 한번만 말하고 싶다 “입이 있으면 한번 말해보라. 말할 수 없다면 다들 입 다물어라.”


       구두수선공: 그는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구두수선공이었다 사막에 가는 자들이 구두를 신고 올 리가 없었으니, 사막의 입구에 자리한 그의 수선집은 곧 문을 닫았다 대체 누가 이제 신지도 않는 구두 따위를 수선한단 말인가.


                             가혹한,


       신념은 적막하고

       환멸은 얼룩진다

       너는 가혹한 대추야자나무 그늘을 천천히 건너서

       물고기처럼 훌쩍거렸다.



                                          * 시집 <안녕, 후두둑 씨>(실천문학사, 20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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