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고양이, 골목을 접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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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고양이, 골목을 접수하다


 


철거고양이에서 떠돌이 고양이 신세로 전락했던 까뮈네 일가족이
드디어 새 영역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과거 녀석들이 둥지로 삼았던 빈집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뒷골목이 바로 녀석들이 새로 접수한 영역이다.
새끼를 낳아 기르던 둥지가 철거된 지 약 달포 만에
그러니까 철거냥이가 되어서 떠돌이 생활을 해온 지 달포 만에
새 보금자리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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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이제 일루다 사료 배달 부탁해요!"

그걸 어떻게 아냐고?
지난 일주일 정도 녀석들을 나는 한 장소에서 계속 만났다.
일부러 찾아다녀도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그동안의 상황과는 딴판이 된 것이다.
새 보금자리가 생기면서 까뮈네 일가족은 안정을 되찾았다.
우선 일정한 장소에서 녀석들은 안정적으로 사료를 공급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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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구한 우리 집이에요. 멋지죠? 곳곳에 캣타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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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네 일가족은 새로 접수한 영역의 어떤 집 서까래와 나무더미가 쌓인 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녀석들은 해바라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쉬다가
침입자가 나타나면 벽체에 뚫린 구멍 속으로 숨곤 한다.
가끔은 새끼인 당돌이와 순둥이가 은신하는 곳이 달라서
나란히 붙은 두 채의 집을 은신처로 사용하기도 한다.
일가족이 늘 모여 있는 나무더미가 있는 집은 주로 순둥이가,
바로 옆집 항아리 많은 집의 은신처는 당돌이가 사용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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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인 몰래 저 마당에도 수시로 드나들어요. 닭장 앞에서 낮잠도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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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까뮈네 일가족이 접수한 영역은
본래 나이가 두세 살은 넘을 듯한 고등어무늬 고양이의 영역이었다.
이 고양이는 마을의 중심인 이 골목에서부터
축사고양이가 사는 축사 도로까지 차지하고 있던 터주대감이나 다름없는 고양이였다.
지난 폭설이 내렸을 때
녀석은 여러 번 축사를 습격해 축사냥이의 사료를 강탈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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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가 와도 안전해요. 이렇게 올라와 있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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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녀석은 까뮈네 가족에게 쫓겨나
이 골목의 맨 끝자락 이동통신 기지 쪽으로 밀려났다.
그곳은 봉달이의 영역이기도 한데,
영역 싸움이 완전히 끝나서 새로운 영역지도가 완성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까뮈네 일가족이 이 골목을 차지하기까지는 무려 한달 반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2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나머지 가족도 엄청난 배고픔과 추운 잠자리를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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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우리 영역이나 한번 돌아볼까나..."

길고양이 세계에서 영역이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부풀기도 하고,
잘게 쪼개지기도 한다.
없던 영역이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있던 영역이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영역은 ‘공동구역’처럼 중립지대가 설정되기도 한다.
때로는 평화적으로 영역이 분배되기도 하지만,
혈투 끝에 영역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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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럼 이 항아리도 다 우리 꺼예요?" "음, 그건...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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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네 가족이 이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어떤 혈투나 협상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지금의 영역 차지가 7일 천하로 끝날 수도 있다.
그것은 자연계의 순리와도 같아서
힘의 논리가 지배할 때도 있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상존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길고양이 세계에서는
새끼를 낳은 어미고양이에게 영역이나 둥지에 대한 우선권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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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내 은신처에요. 아무도 모르겠죠?"

또한 버려진 새끼 고양이에게 주변의 고양이들이 영역을 만들어주거나
공동으로 육아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폭력적인 어떤 고양이를 쫓아내기 위해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연합하는 경우도 있다.
길고양이 세계에도 엄연히 ‘사회’라는 게 존재한다.
아무쪼록 새로운 영역에 안착한 까뮈네 일가족의 무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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