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 <무가당 담배 클럽의 기타연주자들>

|
 
              무가당 담배 클럽의 기타연주자들    
                     
                                                                                                         
박정대




그녀가 깊은 숲속의 길을 헤치고 처음 무가당 담배 클럽을 찾아와 기타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돌아가라고 말했지, 그러나 그녀는 이곳에서 기타를 치고 싶다고 한사코 버티었네, 이곳엔 한 대의 기타밖에 없고, 그 기타의 연주자는 바로 나란 말이야, 하고 나는 소리쳤지만 그녀는 가방 속에서 소리 없이 한 대의 기타를 꺼냈지, 저는 밥 딜런이 너무 좋아 매일 그의 노래와 함께 잠자리에 든답니다, 자 들어보세요, 이건 밥 딜런의 노래 「북쪽 지방의 소녀」예요, <바람이 국경선에 세차게 불어대는 아름다운 북쪽 지방을 여행중이라면 그 곳에 사는 누군가에게 내 안부를 전해 주세요, 그녀는 한때 나의 진정한 사랑이었죠, 눈보라가 치고 강이 얼어붙는 바람으로부터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줄 외투를 걸치고 있는지 보아주세요, 부디 날 위해 그녀가 긴 머리칼을 가졌는지, 부디 날 위해 봐주세요, 그것이 내가 그녀를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랍니다, 그녀가 나를 잘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해요, 어두운 밤에도 그리고 밝은 낮에도 아주 많이 기도해 왔어요, 그녀가 날 기억해 주기를, 그러니 바람이 국경선에 세차게 불어대는 아름다운 북쪽 지방을 여행중이라면 그곳에 사는 누군가에게 내 안부를 전해 주세요>, 그녀의 노래가 끝났을 때 무가당 담배 클럽을 둘러싸고 있던 나무들은 모두 슬프고도 애절한 마음이 되어 있었고, 나도 긴장된 침묵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지, 그녀는 북쪽 지방의 소녀처럼 아주 긴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네, 마치 그녀가 노래에 나오던 북쪽 지방의 소녀 같았네, 당신의 노래는 너무나 아름답고 애절하군, 그런데 밥 딜런의 노래 「북쪽 지방의 소녀」와 무가당 담배 클럽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전 밥 딜런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다만 이곳에서 그의 노래를 기타로 연주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무가당 담배 클럽의 규정에는 <무가당 담배 클럽의 기타 연주자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단 한 명으로 족하다>라고 이미 못 박혀 있는 걸,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얼음이 물이 되어 흐르는 봄은 이 무가당 담배 클럽에도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아름다움 앞에서는 그 어떤 얼음으로 된 겨울도 이처럼 쉽게 녹아내리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나는 그녀에게 이곳의 기타 연주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겠지, 그러면 얼음으로 만들어졌던 나의 기타는 물이 되겠지, 물이 되어서 무가당 담배 클럽을 떠나 깊은 계곡들을 지나 저 세상의 바다로 흘러갈 거야, 그런데 나의 기타와 나의 음악이 사라지면 그때 나는 또 무엇을 해야 하지



-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중에서

'그리운 詩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영민 <계란 한 판>  (1) 2008.07.23
이준규 <나무는 젖는다>  (0) 2008.07.23
조영관 <시를 겁나게 잘 아는 친구 얘기>  (1) 2008.05.28
연어, 7번 국도  (0) 2008.04.28
길의 미식가  (3) 2008.02.11
박정대 <무가당 담배 클럽의 기타연주자들>  (0) 2008.01.21
정병근 <유리의 기술>  (0) 2007.12.27
흘러온 사내  (0) 2007.12.22
내 워크맨 속 갠지스  (0) 2007.11.24
비 오는 창밖의 시  (0) 2007.08.10
떠도는 물고기 여인숙  (0) 2007.01.19
Trackback 0 And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