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자갈치 시장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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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시장의 통 큰 인심

 

 

자갈치 시장의 통 큰 인심. 누군가 고양이만한 생선을 고양이에게 던져주었다.

 

자갈치 시장 입구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다. 수레에 목줄을 매어놓은 노랑이 한 마리. 시장 사람들은 무심하게 고양이를 지나치고, 고양이는 심심하게 수레 그늘에 들어가 낮잠을 잔다. 수레 앞에 쪼그려 앉아 내가 아는 척을 하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수레 그늘을 빠져나와 내 앞에 선다. 아구처럼 하품도 하고, 가오리처럼 기지개도 켠다. 짧은 탐색의 시간이 끝나자 녀석은 스스럼없이 내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며 몸을 부벼대기 시작한다. 목덜미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나한테 몸을 맡긴다. 뒤집뒤집 발라당도 한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듯 녀석은 ‘수줍은 아가씨’ 자세도 취한다.

 

 

 

이 녀석 시장에서 잔뼈가 굵어서인지, 사람 대하는 게 보통이 아니다. 사람을 밀고 당기는 재주가 ‘고수’에 이르렀다. 그러니 녀석의 꼬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성의 있는 유혹에는 넘어가주는 게 예의다. 바닥에 생선궤짝을 동여매던 끈이 있어서 고양이 낚싯대처럼 살살 흔들어주니, 이 녀석 물 만난 고기처럼 잘도 논다. 그 커다란 덩치로 풀쩍, 점프까지 한다. 저만치서 구경만 하던 생선장수 아저씨는 나보고 한마디 한다. “새끼 때만 잘 노는 줄 알았더니 나이가 들어도 잘 노네.” 하면서 생선을 뒤적거린다.

 

 

가만 보니 이 녀석 자갈치 고양이답지 않게 꼬박꼬박 사료를 급식 받고 있었다. 생선대신 고양이 캔이 간식이었다. 자갈치 시장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목적은 한가지다. 어물전을 탐하는 쥐를 쫓기 위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이다. 특별히 녀석은 쥐를 잡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고양이가 있는 것만으로 쥐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못한다. 나는 한참이나 녀석과 끈 하나로 놀아주었다. 생각해보면 녀석이 도리어 심심해하는 나와 놀아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자갈치시장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꽤 많은 편이다. 자갈치 시장과 충무시장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과일가게가 있는데, 거기에는 어여쁜 삼색이가 창고의 건어물과 좌판의 과일을 지키며 산다. 두어 집 건너 위쪽의 쌀집에도 노랑이 한 마리를 키운다. 지난겨울 이곳에 들렀을 때 쌀집 고양이는 주인 할머니가 덮고 있는 담요 속에서 꼬리만 내놓고 자고 있었다. 이불에 덮인 채로 녀석을 주무르자 녀석은 귀찮은 듯 기어 나왔다. 활어센터 앞 횟집에도 고양이(고등어) 한 마리가 있는데, 녀석은 횟집 아주머니를 귀찮을 정도로 졸졸 따라다녔다.

 

 

낯선 사람이 근처에라도 가면 녀석은 아주머니의 발 뒤에 숨곤 했다. 낯선 사람은 무서워해도 아주머니는 어찌나 잘 따르는지 연신 얼굴을 들이밀고, 장화에 볼을 부비고, 어깨를 아주머니 품에 기대는 것이었다. 자갈치 시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양이는 소금장수 할머니가 밥을 주던 두 마리의 고양이다. 두 마리 다 검은 고양이. 할머니에게 고양이 이름을 묻자, ‘깜장이’라고 했다. “두 마리 다 깜장이에요?” “응, 둘 다 깜장이!” 할머니는 자갈치에서 어렵게 소금과 생선을 팔며 살지만, 고양이에게 기꺼이 밥을 주고 있었다. 그래봐야 팔다 남은 생선이지만, 녀석들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 두 녀석은 할머니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고양이다. 어느 봄인가, 바다로 나가는 길목의 쓰레기장에 웬 까만 게 보이더란다. 거기 검은색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버려져 있더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가여워서 죽어가는 새끼들을 데리고 와 밥을 주기 시작했다. 결국 할머니는 자신이 소금을 파는 좌판 수레 아래 녀석들이 머물 보금자리를 마련해줬고, 녀석들은 이곳을 집 삼아 이제까지 살아오고 있는 거였다. 때마침 내가 갔을 때, 두 녀석 중 한 녀석이 좌판 앞에 앉아서 커다란 생선을 뜯어먹고 있었다. 누군가 통 큰 인심으로 고양이만한 생선을 녀석에게 던져준 것이었다.

 

 

내가 잠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녀석의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근처에 있던 생선장수들이 십시일반 한 마리씩 녀석에게 생선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자, 어차피 들어갈 시간이라 떨이로 남은 거라며 고양이에게 인심을 썼다. 고양이 앞에 점점 쌓여가는 생선. ‘뭉클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으로 올라왔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풍경,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이 이런 거였다. 없이 살아도, 더 없는 사람들, 더 불쌍한 동물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는 아름다운 풍경. 나도 가방에 숨겨두었던 고양이 간식을 몇 개 꺼내 할머니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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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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