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과 낮잠과 위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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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낮잠위로에 대하여
- 최갑수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예담)



루앙프라방에 처음 왔을 때를 기억해요. 일주일 동안 머물렀어요. 다른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국수를 먹고 맥주를 마시고 거리를 걷고 시장을 구경했죠. 차를 마시고 책을 잃고 음악을 듣고, 여행자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죠. 그게 다였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 도시가 자꾸만 내 옆구리를 툭 툭 치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그들이 내게 건네던 미소가 자꾸만 마음 한켠을 일렁이게 하는 거예요. 그것은 음악 같기도 했고, 손가락에 남은 옛 애인의 반지 자국 같기도 했어요. 마음을 슬슬 문지르는 그런……. - 본문 160

여행은 여행 그 자체로 충분하다.

달리 여행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누군가를 구원하거나 혁명할 수 있을까. 개인의 철학적 반성이나 인문학적 진보를 가져올 수 있을까. 여행은 그저 여행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사적인 것이다. 똑같은 여행지에서 모든 여행자는 저마다 다른 생각과 느낌으로 그것을 받아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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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여행자가 있다. 그는 시인이며 사진가이고 여행가이자 한 아이의 아빠다. 그의 여행은 언제나 센티멘털하고 멜랑콜리하다. 그는 2년 전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이라는 감성여행서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작가다. 그가 이번에는 낭만여행 에세이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을 출간했다. 그는 여기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을 배경으로 꿈과 사랑,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좇는 여행자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편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이 시니컬하고 고독한 개인적 일탈의 탐색이었다면, 이 책의 주제는 사랑과 화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선택한 삶과 화해하고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임을 예고한다.

사실 루앙프라방은 화려한 휴양지도 아니고, 카오산 로드처럼 트렌디한 배낭여행객들의 필수코스와도 거리가 멀다. 라오스 제2의 도시지만 상주인구가 8천 명밖에 되지 않는 한적한 시골마을과 다름없는 곳이다. 하지만 루앙프라방은 동남아시아 전통유산과 프랑스 식민시대의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1995년 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프랑스 식민지풍의 건물과 수많은 사원들 사이마다 승려와 아이들, 그리고 배낭여행자들이 돌아다니며 만들어내는 경건함과 순진함, 자유로움... 그리고 그곳은 언제나 고요하고 아늑하다. 그 매력적인 공간에서 가난하지만 낙천적이고, 욕망의 집착 없이 자유로운 루앙프라방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며 작가는 범상 속의 감동과 위로, 나아가 가슴을 치는 작은 인생의 교훈까지 느끼고 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잊고 있었지만, 사실 언젠가 우리의 이마와 눈썹과 입술을 타고 흘렀을 따뜻한 미소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여행가의 카메라는 더욱 웅숭깊어지고, 시인의 그리움은 마음의 끝자락까지 닿을 듯 촉촉하고 간절해서 당장에라도 그의 몽상적 여행에 동참하고픈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에서 그토록 원했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구는 목요일,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작가는 천천히 걷고 충분히 자고, 맘껏 웃고 즐길 수 있는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부제 ‘산책과 낮잠과 위로’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그런 자연스런 삶의 모습이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서 별이 뜨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 별을 나침반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요. 그래요. 우리 인생의 복선과 암시는 어딘가에 분명 숨어 있어요. 해피엔딩이든,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으로 막을 내리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인생의 정면을 관통할 사랑과 의지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걸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거죠. 난 내 삶 자체가 바뀌기를 원하고 있었고 그건 아주 절실했죠. 새롭게 시작할 만한 이유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 본문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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