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고양이, 세상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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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고양이, 세상을 보는

 

전원주택 다롱이는 지난 4월에 두 마리의 아기고양이를 낳았다.

현관 앞 박스에 두 마리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오던 다롱이는

어느 날 할머니가 새끼를 만졌다는 이유로

두 마리 새끼를 물어다 마당 바깥에 숨긴 채 육아를 해왔다.

그러던 다롱이가 다시 두 마리 아기를 데리고 전원주택으로 돌아왔다.

 

다시 두 마리 새끼를 전원주택 테라스에 데려다 놓은 다롱이. 아기고양이의 두려운 눈빛.

 

내가 마당에 서서 아기고양이를 들여다보자

다롱이는 하악, 하고 경계음을 날렸다.

아기고양이 한 마리는 젖을 물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저 인간 누구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두려움과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

세상을 바라보는 아기고양이의 눈도 그럴까.

모든 게 두렵고 무섭기만 할까.

사실상 다롱이(아롱이)는 전원주택 마당냥이의 최고권력냥이다.

초봄에 임신을 하고부터 다롱이는 이곳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남용해 왔다.

고등어 식구들 네 마리를 전원주택에서 완전히 쫓아낸 데 이어

새끼를 배고 있던 산둥이(순둥이)와 고래마저 쫓아냈더랬다.

뒤늦게 고래는 다롱이의 눈치를 보다가 마당의 개집에 새끼를 낳았지만,

모두 사산을 했다.

올해 가장 먼저 출산한 할머니 금순이도 이곳에서 사산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전원주택을 찾았다가 산둥이마저 사산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팬더(꼬맹이)가 낳은 아기고양이 다섯 마리. 꼬물꼬물 박스 안을 기어다니고 있다.

 

“순둥이(할머니가 부르는 이름)가 낮에 집에 왔길래 내가 나가보니까

아롱이랑 여기 애들이 순둥이를 못들어오게 하드라구.

그래서 내가 사료하구 고기를 들고 가서 밖에서 멕였어.

다 먹구서 순둥이가 가는 길을 이래 쫓아가봤지.

가다가 벌러덩을 하구, 막 그러더니 저기 배밭 너머 빈 우사 쪽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래 내가 거길 들어가봤더니, 죽은 새끼가 세 마린가 막 널려 있드라구.

내가 고것들을 다 묻었어.

그런데 내가 밥을 주면서 순둥이 배를 만져봤거든.

근데 아직도 젖이 나오는거야.

한두 마리라도 살아 있는지, 그건 모르겠어.

우사 쪽으로 들어갔다가 또 저 아래쪽 빈집으로 내려가는 걸 보고 그냥 들어왔어.

아롱이 저 여우같은 년이 애들을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지...참!”

산둥이는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사실 전원주택에서 산둥이는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유일하게 할머니가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었던 고양이!

그런 고양이가 바깥을 헤매고 있으니, 할머니의 마음이 오죽할까?

 

내가 박스 속의 아기고양이를 구경하는 동안 팬더 녀석은 '어디 건드리기만 해봐' 하는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다.

 

할머니는 또 다른 소식도 전해주었다.

“꼬맹이(팬더)가 엊그제 새끼 다섯 마리를 저 창고에 데려다 놨어.

꼬맹인 방랑자라 그런지 새끼들 여기 데려다 놓고는,

저기 산으로 들로 만날 돌아다녀.

젤루 자유로운 거 같어, 꼬맹이가.”

할머니는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 문을 열고 팬더가 낳은 다섯 마리 아기고양이를 보여주었다.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아기고양이 다섯 마리.

낯선 이가 박스 앞에 나타나자

아기고양이들은 일제히 안절부절 못하고 박스 안을 기어다녔다.

창고문이 열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팬더 녀석이 마당 저쪽에서 우리를 쏘아보았다.

우리 새끼들 만지면 가만 안놔두겠어, 하는 눈빛으로.

전원주택 마당에는 이제 아홉 마리의 성묘가 남았고,

모두 일곱 마리의 아기고양이가 태어났다.

다롱이가 쫓아낸 고양이가 모두 여섯 마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새로 태어난 아기고양이 수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전원주택의 적정 묘구밀도는 15~16마리라는 얘긴가?

늘 이 수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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