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과 로맨틱 꽃밭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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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냥로맨틱 꽃밭 데이트

 


 

고양이의 사랑은 본능적인 짝짓기가 전부는 아니다.
내가 만났던 몇몇의 수컷은 짝짓기가 끝난 후에도
암컷의 주변에 머물거나 수시로 왕래하면서
임신한 암컷의 보호냥 노릇을 했다.
어쩌면 이것이 다른 수컷의 접근을 막으려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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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달타냥,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틱캣. 아님 말구.

더러 몇몇의 수컷은 사료가 있거나 먹을 것이 있을 때
임신중인 암컷을 불러 먼저 먹이곤 했다.
파란대문집 달타냥도 그랬다.
내가 나눠준 사료를 몇 입 맛본 후에는 어김없이
인근에 있는 여친냥을 불러오곤 했다.
수컷이 암컷의 주변에 머무는 것과 달리 달타냥의 여친냥은
늘 달타냥의 집 주변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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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데이트 장소로 나가 볼까나.

여친냥이 길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당고양이인 달타냥의 집에서 나올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긴 마당고양이의 경우 실내에서 키우는 집냥이보다 길고양이에 더 가까운 생활을 한다.
자유롭게 영역을 넘나들고
마음에 드는 길고양이를 만나 사랑도 한다.
그렇게 달타냥도 길고양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요즘 부쩍 둘이 함께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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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직 안 왔나. 내가 너무 일찍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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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친냥은 여전히 나에 대한 경계심이 심해서
여친냥을 사진에 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주말, 운좋게 나는 달타냥의 데이트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데이트 장소에서 기다리는 달타냥을 목격한 거나 다름없다.
나중에 여친냥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나에 대한 경계심으로 두 녀석은 만난 뒤 곧바로 함께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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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암코양이들은 만날 늦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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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보건대
달타냥은 마치 “꽃밭에서 기다릴게- 달타냥”이라고 연애편지라도 보낸 듯했다.
나는 녀석이 그렇게나 오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 물론 마실 나간 할머니를 기다린 것을 제외하면.
잠깐 그날로 되돌아가본다.
파란대문을 빠져나온 달타냥은 어슬렁어슬렁 걸어서 인근의 씀바귀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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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0분째야.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겠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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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밭에는 노란 씀바귀꽃이 지천으로 피어서
부신 햇살에 노란 가루를 뿌린듯 숨이 막혔다.
(이거 왠지 <메밀꽃 필 무렵> 분위기가...)
달타냥은 사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천천히 씀바귀꽃밭으로 걸어들어갔다.
아직 안 왔나, 달타냥이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더기꽃 너머를 기웃거려도 보았다.
여친냥은 아직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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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여친냥이다. 쿨하게...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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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타냥은 꽃그늘에 납작 엎드려 여친냥을 기다렸다.
씀바귀꽃밭 너머 묏등 위로 몇 번이나 뭉게구름이 지나갔다.
달타냥은 자세를 바꿔 또 기다렸다.
달타냥의 눈빛에 초조함이 떠다녔다.
얼마나 지났을까.
함석담장 사이로 야옹소리와 함께 드디어 여친냥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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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기는... 수컷이 좀 기다린 거 갖고 삐지기는...

그런데 정작 달타냥은 삐진 자세로 저쪽으로 돌아앉았다.
여친냥이 조심스럽게 달타냥 가까이 다가섰다.
여전히 달타냥은 돌아앉은 채 고개만 슬쩍 돌렸다.
마치 신촌의 어느 카페에서 만난 연인의 풍경처럼
하나는 늦었다고 삐져 있고,
또 하나는 미안하다고 애원하고 있다.
달타냥이 한참이나 눈도 마주치지 않자 여친냥은 여친냥대로
“나 그럼 가버린다” 하는 자세로 꽃밭 언저리에 가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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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도 그만 돌아가쇼... 그 카메라 좀 치우고...

그제서야 달타냥은 무더기꽃 뒤에서 일어나 여친냥에게로 살며시 다가갔다.
멀리서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달타냥은
나 때문에 데이트를 할 수가 없다며
불편한 눈빛을 쏘아보냈다.
그러고는 내 눈을 피해 여친냥과 함께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날씨는 뜨거웠고,
이따금 단풍나무 위에서 딱새가 우는 여름 오후였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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