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우리집 고양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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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우리집 고양이유!"

 

 

얼마 전의 일이다.

산책이나 하려고 마을길을 따라 타박타박 내려가는데,

‘까만개집’(검은 개를 키운다고 그렇게 불렀다)에 웬 못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묶여 있는 검은 개와 천방지축 날뛰는 흰 강아지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선명한 삼색 고양이였다.

 

 "고양이 가져갈래유? 나중에 새끼 낳으면 가져가유!"

 

내가 “쯔쯔쯔쯔” 하고 고양이를 부르자

앞에 앉아 있던 똥강아지가 먼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삼색이 녀석은 강아지 뒤에서 성큼성큼 다가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냐~앙, 하고 울었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지난 3월에 한두 번 마주친 적이 있기는 한 것같다.

까만개집 앞을 지날 때 다릿목에 앉아 있다가

후다닥, 하고 도망을 치던 녀석.

 

 삼월이의 눈 속에 내가 있다. 삼월에 만났다고 삼월이다.

 

그랬다. 어쩐지 녀석이 집으로 도망을 친다 했는데,

녀석은 까만개집에서 키우는 마당고양이였던 것이다.

지난 3월과 달리 녀석은 이제 사람과 제법 친숙해 졌는지

나를 보고도 주저 없이 다가와 내 무릎 품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녀석은 똥강아지가 달려드는 바람에 툭하면 뒤로 달아나곤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녀석을 ‘삼월이’라고 이름붙였다.

삼월에 만났다고 삼월이다.

기생을 연상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아니다.

녀석은 타고난 접대냥인 관계로.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삼월이.

 

이틀 뒤 다시 까만개집을 찾았다가 나는 파밭가에 앉아 있는 녀석을 만나

한참이나 쓰다듬고 놀았다.

이 녀석 언제 봤다고 두 번 만에 발라당을 하고 무릎에 안겨서 가르릉거렸다.

그때였다.

마당에서 집주인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나를 잠시 훑어보았다.

“사진작가유?”

달리 할 말이 없고, 또 틀린 말도 아니어서 나는 ‘예’ 하면서 꾸벅 인사를 드렸다.

보아하니 장화를 신은 것으로 보아 논일을 나가는 것같은데,

할아버지는 갑자기 말동무라도 생겼다는 듯 내 앞에 앉았다.

 

 "메롱~!" "흐아암~!"

 

“어디 쏘주라두 한잔 하실라우?”

내가 손사래를 치자 할아버지는 무안한듯 내 뒤에 앉아 있는 삼월이를 불렀다.

따로 이름이 없는지

“나비야! 일루와봐!” 하니까

이 녀석 알아듣고는 할아버지에게 가 안겼다.

“얘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인가요?”

할아버지는 녀석을 한참이나 쓰다듬더니 허허 웃으며

갑자기 목덜미를 잡아올렸다.

“이게 우리집 고양이유, 그냥 그래유!”

 

 "아저씨 사료 가진 거 있음 좀 내나봐!"

 

“어디 밖에서 사온건가요?”

“아니유, 뭐할라 고양이를 사와유. 그냥 있는 놈이유.”

“아직 어린 것같은데, 얼마나 됐나요?”

“어리다구유? 벌써 발정이 나서 이게 밤이면 을매나 울어대는대유.”

“고양이가 어르신을 잘 따르네요?”

“고냥이가 그래유. 개하구는 달라서 이렇게 자꾸 만지고 쓰다듬어야 되지. 그냥 두면 금방 나가유.”

“쥐 잡으려고 키우나 보죠?”

“이 눔이 쥐를 잡어유? 아이구 쥐도 못잡어유. 저기 밭에다 씨 뿌려 놓으면 죄 파내서 똥이나 싸구.”

“그런데 왜 키우세요?”

“그게 그래유. 있으니까 키우는 거유.”

 

 할아버지 품에 안긴 삼월이.

 

밭을 파헤치고 똥을 싸댄다고 고양이를 욕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손길은 고양이 목덜미를 잡고 입가엔 웃음이 묻어났다.

미운 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있다.

할아버지에겐 삼월이가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한 마리 줄까유?”

“어휴, 괜찮아요.”

“이 놈 새끼 나면 한 마리 가져가유.”

아기고양이만 보면 환장하는 나이지만, 사실 아기를 키우는 집에서

다섯 마리의 고양이도 벅찬데, 한 마리를 더 들일 수는 없는 처지였다.

 

 "이게 우리집 고양이유!"

 

“근데 일 나가시는 길 아니었어요?”

“가야쥬. 저 우에 우리 밭이 쫌 있어유. 혹시 몽양 여운형 선생을 아슈?”

“네 존경하는 분인 걸요.”

“저 아래 도곡리라는 데 그 분 생가가 있어유. 우리가 여운형 선생 친척이유. 그래 이승만 시절에 있던 땅두 다 뺏기구. 참 어렵게 살았지유. 사는 게 그래유. 누굴 탓하겠어유. 시대가 그랬는 걸유.”

“... ...”

고양이로 시작해서 갑자기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지고 있었다.

나는 화제를 다시 고양이로 돌렸다.

 

 "고양이는 자꾸 만지고 쓰다듬어야 집을 안나가유!"

 

“얘는 강아지하구도 잘 노네요.”

“놀기는유. 허구헌날 강아지한테 쫓겨댕기는데유. 땅두 다 뺏기구 어렵게 살면서두 지끔은 이래 땅두 마련하구. 시골에 살면 그래유. 밭이구 논이구 땅이 있어야지.”

할아버지는 다시 화제를 되돌렸다.

이러다간 ‘인간극장’ 한편을 다 들어야 할 것만 같아서

나는 슬슬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

“근데 쑥꽃 봤어유. 여기 이래 쑥이 많잖어유. 쑥두 꽃이 피유. 사진작가니까 담에 오면 그걸 찍어유.”

할아버지는 또 다른 이야기로 나를 잡아끌었다.

“이게 우리집 똥강아지유. 개두 고양이처럼 이렇게 뒷목을 잡고 들어올리면 편해유.”

 

 "이건 우리집 똥강아지유!"

 

할아버지는 누군가라도 붙잡고 어떤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은 거였다.

고양이에게만 눈길이 가 있던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예 할아버지와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성씨는 뭐냐, 집은 어디냐, 고향은 어디냐, 몇 살이냐, 농사는 안짓느냐와 같은 뻔한 이야기여서 여기에 적을 것까진 없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참이나 묻고 털어놓은 할아버지는 그만 가야겠다며 일어서서

타박타박 마을길을 걸어갔다.

가다가 만난 웬 아주머니와 또 한참이나 길에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나는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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