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설경, 상원사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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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설경, 상원사에 가다



상원사 대웅전 앞을 지나 요사채로 가는 스님들.

 

수북하게 눈이 내린 길을 천천히 달려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로 간다.

월정사는 신라 때 자장율사가 세운 가람으로,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탄 것을 1964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운치 있는 숲길로 알려진 전나무 숲도

월정사에서 만날 수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내내 이어진 오대천의 눈 덮인 풍경.

 

일주문으로부터 사찰 북편까지 약 1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곳의 전나무숲은 그 크기와 수령에 있어서도 원시적인 장쾌함을 간직하고 있는데,

특히 눈이 내려 수묵화와 같은 여백의 미를 드러내는 전나무 숲길 풍경이야말로

오대산 숲의 백미라 할 만하다.

이런 전나무숲은 잠시 잡목숲에 가렸다가 월정사 부도밭으로 이어지며,

한참을 더 올라가면 절집을 수호하듯 상원사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 8각9층석탑(국보 제48호).

 

전나무숲은 아기자기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장쾌하고 간결하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상원사와 북대암으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나무껍질이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와 사스레나무가 겨울 운치를 더한다.

팔만대장경의 재료가 되기도 한 자작나무는

겨울의 흑갈색 잡목 사이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데,

능선의 양지바른 숲속에도 단연 돋보이는 빛깔로 그 우뚝한 자세를 곧추세우고 있다.

 


상원사 경내에서 바라본, 골격을 드러낸 오대산의 산자락 풍경.

 

눈 내린 오대산에서 만나는 진귀한 풍경이 하나 있다.

곤줄박이가 사람 손에 내려앉아 먹이를 먹는 풍경이다.

폭설이 내려 먹이가 부족해지면 곤줄박이는

오대산 국립공원 관리소 인근으로 찾아온다.

이 때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준다는 사실을

녀석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상원사 경내의 샘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다.

 

하여 등산객들조차 손에 먹이를 올려놓고 곤줄박이를 기다리는 모습도

눈 내린 오대산에서는 어렵잖게 만나는 풍경이다.

녀석들은 낯익은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아니면 쉽게 손바닥에 내려앉지 않지만,

잦은 폭설이 지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등산객의 손바닥에서 먹이를 가로채 재빨리 숲으로 사라지곤 한다.

이 밖에도 오대산 겨울숲에서는 동고비, 어치, 노랑턱멧새, 박새, 쇠박새 등이

터살이를 하고 있으며,

직박구리와 콩새, 붉은배새매, 황조롱이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오대산 기슭의 사스레나무(자작나무과).

 

오대산은 1563미터의 비로봉을 비롯해

1천 미터 이상의 봉우리를 여럿 거느린 제법 높은 산이지만,

그리 험하거나 날카롭지 않고 유순하며 유유하다.

거기에는 온갖 생명이 깃들어 있고,

온갖 자연의 신비와 조화가 존재한다.

 


눈을 뒤집어쓴 겨울 나뭇잎.

 

겨우내 얼음에 뒤덮인 오대천 계곡도

구멍이 숭숭한 숨구멍을 통해 오대산과 생명의 호흡을 같이 한다.

오대천을 둘러싼 순백의 겨울숲은

그 자체로 거추장스런 미사여구를 덜어낸 한편의 시이고,

신성하고 경외로운 종교이다.

뭇생명들은 이곳에서 가장 추운 겨울을 견디다가 기적같은 봄을 꽃피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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