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교육에 똥침을 먹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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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교육에 똥침을 먹여라
- 한동원 <삐릿>(실천문학사)



황인뢰 PD의 첫 사극 연출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MBC 미니시리즈 <돌아온 일지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드라마의 내레이션을 담당하는 ‘책녀’였다. ‘책녀’ 내레이션은 놀랍게도 원작과 같은 부분이 단 한 마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녀’ 내레이션은 원작 만화가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풍자성과 해학성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 ‘책녀’를 창조해낸 장본인, 한동원이 첫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한동원은 이미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의 <결정적 장면>,『씨네21』의「투덜군 투덜양」, KBS <문화지대>의 <무규칙 문화칼럼>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우리 시대 문화계의 독창적인 스타일리스트다. 영화평론, 드라마 및 문화 소개 프로그램, 쇼프로 대본, 인터넷 칼럼 등 장르를 불문하는 종횡무진 글쓰기로 우리를 매혹해온 그는 시청각을 자극하는 문체와 분야를 막론하는 무한 조합의 상상력, 풍자적 시선으로 무장한 특유의 내공을 이번 소설에서도 아낌없이 발휘하며 80년대, 고교생 록 밴드-딴따라들의 행보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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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이데아> 풍자판, 명랑 남고쾌담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Beat It>에서 제목을 따온 소설은, 화자인 백동광이 1987년 상명하복의 학풍으로 악명 높은 정도고등학교에 배정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동광은 “다소곳하지 못함을 넘어서 껄렁하기까지 했으며, 패션은 상하의 공히 볼륨감 넘치는 디스코패션”을 구가하는 배짱을 보이지만 입학과 동시에 ‘80년 전통의 사학 명문’을 지켜내온 선도부의 제1타깃이 되어 몰매를 맞고 빡빡머리 신세가 된다. 연이은 두발 단속을 거치면서 친해진 같은 반 ‘함주석’을 통해 전자악기부의 존재를 알게 된, 동광은 좋아하는 여학생 ‘정아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전자악기부’에 들어가 오디션에서 만난 ‘실력파 베이시스트’ 양수은과 2인조 밴드 ‘소리나’를 결성하게 된다.

명랑 남고쾌담, 『삐릿』의 주인공들은 주류 범생이도 못 되고 빽을 가진 비주류 속에도 못 끼는, 못난이들이다. 그들의 길 찾기는 영영 막막해 보인다. “똥광”의 시각으로 윤곽을 드러내는 학교 내 이전투구, 혹은 제도권 교육현실은 가히 풍자판 <교실 이데아>라 할 만하다.

‘소리나 밴드’의 첫 공연을 정점으로 하여 소설은 대반전을 이끌어내며 막을 내린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찾아내는 ‘음악’이라는 해방구 역시 또 다른 세계의 그늘을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다. ‘남고쾌담’의 겉옷 안에 숨겨진 추악한 내막들은, 록 음악 내지는 록 밴드가 ‘젊음의 반항’, ‘기성 질서에 대한 도전’, ‘자유로운 정신의 해방구’라는 기존의 도식적인 설정을 뿌리부터 뒤흔든다. 바로 여기에서 이 작품이 단순한 ‘학원물’로 읽혀서는 안 되는 이유가 드러난다. 이 소설은 학교와 록 밴드라는 소재를 통해, 흑과 백, 순수와 세속, 진짜와 가짜, 참말과 거짓말, 반상업주의와 상업주의 등의 대결구도가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나 편의적이고, 심지어 허구적인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노출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새로운 세계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넘지 않으면 안 될 거대한 산맥이나, 그 너머에 있다는 약속의 땅 같은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꿈꾸는 약속의 땅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해 있으리라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은 그곳의 이름을 빌려 천국의 꿈을 꾸는 자신들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되었던 것이다.”(369쪽)


일렉 기타를 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본래 이 소설은『딴, 따라』라는 제목으로 투고되었다고 하며, 1500매 가까운 분량 속에 들어 있는 거침없는 입담에 편집자들은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런 장편소설이 단편습작 한 편 없이 써 낸 처녀작이라는 점에서 무서운 신인의 탄생을 예감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출간이 결정되자마자 연락을 취해 직접 대면하게 된 작가는 놀랍게도 ‘한동원’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였다. ‘마니아 메이커’라는 별칭과 더불어 이미 수년 전부터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 독보적인 아이디어와 아이템으로 드라마와 쇼프로를 비롯한 방송과 신문, 잡지 등의 매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 활동을 해온 그가 이제 그 자신, 언제나 꿈꿔왔던 ‘소설가’로 도약하기 시작한 것이다.

록 밴드 크라잉 넛은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어린 시절과 닮아 있다. 학교와 풍경과 버스번호까지. 세상의 부조리를 알기도 전에 무언가에 반항하고 방황하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과 불안,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소년 시절과 그 시절의 음악들과 함께 녹아 있고 그 모습은 현재 오늘의 한국과도 너무나 닮아 있다.  일렉 기타를 들고 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보는 내내 깔깔대다가 흠칫흠칫 놀라기를 반복하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오버드라이브 소설.
외치자, Like Hell!"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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