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유목민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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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유목민이 여기에 있다
[매거진 Esc] 이용한의 몽골기행1
초원이 아닌 원시림, 몽골에서 가장 몽골답지 않은 홉스굴의 차탄족 이야기
한겨레
» 홉스굴에서 만난 차탄족이 오르츠 앞에 서 있다. 몽골 전통천막인 게리와 달리 오르츠의 지붕은 원추형이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몽골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은 원초적인 느낌에서 온다. 이를테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사막. 길 없는 길과 원시적인 구름들. 1년에 260일은 맑고, 1년에 7개월은 겨울이며, 두 달여의 봄날은 모래폭풍이 휩쓸고 가는 몽골은 혹독하고 혹독해서 더욱 아름답다. 그렇다면 몽골에서 가장 신성한 곳은 어디인가? 몽골인들은 주저없이 말한다. 홉스굴이라고. 홉스굴은 중앙아시아의 호수 가운데 가장 깊고, 세계에서 14번째로 크며, 세계 담수량의 2%를 차지하는 곳으로 경탄할 만한 96개의 강이 이곳으로 흘러들어 단 한 개의 강(에진 강)만이 러시아의 바이칼로 흘러간다.

» 전통의상 ‘델’을 입은 여인.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호수와 타이가숲은 러시아까지 펼쳐지고…

누군가는 홉스굴을 ‘몽골의 푸른 보석’이라거나 ‘몽골의 알프스’로 일컫는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몽골에서 가장 몽골답지 않은 곳. 홉스굴의 관문인 무릉에서부터 홉스굴까지는 몽골 특유의 완만한 초원지대가 펼쳐지지만, 홉스굴에 가까워질수록 타이가 삼림지대가 빽빽한 원시림을 이룬다. 북쪽은 해발 3500여m의 산맥지대이며 러시아와의 국경이고, 불가사의한 종족으로 손꼽히는 차탄족(Tsaatan)이 여기에 살고 있다. 수심은 속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지만, 물은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다. 이곳에 민물연어가 살고, 주변에는 순록과 사향노루, 무스와 큰곰이 산다. 몽골에서 가장 뛰어난 동식물의 보고 역시 홉스굴이다.

홉스굴을 가자면 무릉을 거쳐야 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무릉까지는 무려 692㎞. 비행기를 타면 두어 시간이 걸리지만, 차를 타면 며칠이 걸린다. 홉스굴에 가는 사람들은 무슨 통과의례처럼 무릉을 거쳐 가지만, 아무도 무릉을 기억하지 않는다. 꿈속에 스쳐간 마을이거나 기시감 속에나 존재하는 마을처럼 무릉은 그렇게 기억되고, 그렇게 존재한다. 여기에는 어떤 도시의 느낌도, 훌륭한 숙소와 유흥시설도, 구경할 만한 시장도 없다. 여기를 벗어나면 홉스굴까지 내내 지루한 초원만이 계속될 뿐이다. 그러나 유목민에게 초원은 ‘모든 것’이다. 가축과 우유와 집과 길이 다 거기에 있다. 그들에겐 초원만이 무궁하고, 초원만이 무진하다. 야크나 염소에게도, 독수리나 두루미에게도 초원은 곳간이고 둥지다.

아침 먹고 초원, 점심 먹고 초원. 이곳에서 유목민의 삶이란, 초원에서 나서 초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심심하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설령 힘들다고 해서 이들은 초원을 떠날 생각이 없다. 길고 지루한 초원을 건너면 이제 지금까지의 몽골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웅장한 호수와 울창한 타이가숲. 바로 홉스굴이다. 호수는 하트갈 마을에서부터 장카이, 타일럭트 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러시아의 국경 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홉스굴은 평화롭다 못해 이런 풍경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는 심심함을 느낄 지경이다. 아침에 게르(몽골의 전통 천막주택)에서 일어나 문을 열면 호수의 맑은 바람이 곧바로 들이닥치는 곳. 앞에는 눈 시린 호수가 초원처럼 펼쳐지고, 뒤로는 타이가숲이 원시림을 이룬 곳. 말을 타도 호수, 보트를 타도 호수, 트레킹을 해도 호수와 만나야 하는 곳. 여름밤에도 날씨가 쌀쌀해서 밤새 난로를 피워놓고 잠들어야 하는 곳. 밤에는 달과 별밖에는 보이지 않고, 호숫가를 지나는 말 탄 유목민의 노랫소리만이 애잔하게 들려오는 곳. 지극히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생각들이 교차하는 곳.


» 홉스굴까지 지루한 초원이 계속됐다. 그 주음에 말과 놀던 소년을 만났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북방의 무지개와 야크떼, 그리고 적막

홉스굴에서 나는 오로라처럼 번지는 북방의 무지개를 보았고, 호숫가를 느릿느릿 배회하는 야크떼를 만났으며,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꽃들과 차탄족의 순박함과 길 없는 적막과 외로움을 경험했다. 특히 순록과 함께 사는 종족인 차탄족과의 만남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신비로운 종족이다. 영하 40도의 날씨에도 순록의 등에서 아랑곳없이 잠을 자는 사람들. 순록을 타고 그들은 순록이 가지 않는 곳까지 이동해서는 순록이 머물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러다 다시 순록이 이동하는 시기가 되면 순록이 가는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애당초 그들에게는 ‘고향’이나 ‘정착’이라는 말이 없으며, 지금도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을 오고 가며 진정한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 남은 순수한 차탄족은 겨우 200여명 정도(또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80여명)이다.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차탄족을 일러 전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부족이자 믿을 수 없는 부족이며, 원시적인 인류의 원형을 간직한 부족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그들은 몽골계 인종 가운데서도 가장 희박하고, 가장 알 수 없는 소수민족임은 분명하다.

내가 홉스굴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다 차탄족 천막인 오르츠를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여긴 건, 오래전 동화책처럼 읽었던 차탄족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아마도 아메리카 인디언의 원주민일지도 모릅니다. 무속과 양육, 생김새까지도 인디언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순록을 가축으로 길들여 그것을 말처럼 타고 다닐 뿐만 아니라 그것의 젖을 짜 먹고, 고기도 먹고, 사냥도 합니다.” 뭐 이런 내용인 듯하다. 실제로 내가 만난 차탄족도 순록이 말보다 훨씬 온순하고, 길들이기도 쉽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차탄’이란 말도 몽골어로 ‘순록 유목민’이란 뜻이다. 그러나 본래 야생동물인 순록은 길이 들면 순하지만, 몇 달만 그냥 두면 도로 야생으로 돌아간다.

몽골 정부에서는 1960년대 소수민족 보호를 위해 차탄족을 위한 집을 지어주고 땅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록과 천막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가 있는데, 답답하게 한곳에 머물러 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몽골 인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할흐족이 유목민에서 점차 정착민이 되어가는 현실도 이들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차탄족이 말을 듣지 않자 몽골 정부에서는 차탄족에게 모든 사냥을 전면 금지했다. 평생을 유목과 사냥으로 살아온 그들의 앞날에 빨간 불이 켜졌고, 점차 이들은 믿을 수 없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 저녁 무렵의 홉스굴. 이 호수는 길게 뻗어 있어서, 말을 타도 호수, 보트를 타도 호수, 트레킹을 해도 호수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헬기 타고 날아오는 관광객들의 침략

차탄족은 현재 몽골 최북단 홉스굴 인근에 살고 있다. 홉스굴 인근의 차탄족은 호수 주변의 타이가숲이 삶의 근거지인데, 여름이면 관광객을 상대로 호숫가까지 내려와 차탄족의 전통 천막인 오르츠를 세워놓고 장사를 한다. 차탄족의 전통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팔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대가로 돈을 받아 생활한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차탄족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전시용 박물관 대접을 받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점점 더 세상이 순록을 타고 이동해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이들은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원시적인 유목의 삶을 보기 위해 어떤 서구의 관광객들은 수십명씩 헬기를 빌려 타고 차탄족의 거주지까지 여행을 오는 경우도 요즘엔 늘고 있다. 차탄족들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천막촌을 일방적으로 침략해서는 우리 손에 돈 몇 푼 쥐여주고 갑니다.” 서구인들의 차탄족 관광은 차탄족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뤄진다. 물론 그 돈을 벌기 위해 손을 내미는 차탄족이 이제는 점점 많아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홉스굴에서 만난 차탄족은 때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 천막 앞에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잔뜩 펼쳐놓고 있었다. 이들의 천막은 할흐족의 게르와는 그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게르가 지붕이 둥그런 천막이라면, 차탄족의 오르츠는 우리나라의 김치움막처럼 뾰족한 원추형이다. 천막 가운데는 난로가 있고, 바닥에는 동물 가죽을 깔아놓았는데, 천막 구석에는 젖먹이 아기가 이불에 싸여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원래 이 가족도 여기서 좀더 떨어진 침엽수숲에 살고 있으나, 관광객을 위해 잠시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몽골의 할흐족이 말이나 양·소의 젖으로 우유와 치즈를 생산한다면, 이들은 순전히 순록의 젖으로 모든 유제품을 만들어낸다. 순록의 가죽으로는 옷과 천막을 만들고 밧줄도 꼰다. 이들의 생활은 순록과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차탄족의 천막 주위에는 언제나 순록이 있다. 차탄족끼리는 얼마나 많은 순록을 가졌느냐가 부의 척도나 다름없다. 내가 찾아간 차탄족은 약 20여 마리의 순록을 가축으로 키우고 있었는데, 많을 경우 50마리 이상의 순록을 거느린 차탄족도 있다고 한다.

» 홉스굴 주변의 게르 숙소. 대부분 여행자들이 묵는 곳이다.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름이면 북쪽으로, 겨울이면 남쪽으로

지금도 홉스굴 인근의 차탄족은 순록과 함께 여름이면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고, 겨울이면 좀더 남쪽으로 내려와 생활하는 오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옛날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들의 행동 반경이 정치적 목적과 환경적 제약에 따라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냥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목과 사냥을 동시에 하면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부족에서 이제는 유목만을 하며 제한적으로 이동하는 부족이 된 셈이다. 현재 이들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하다. 겨우 200여명에 불과한 소수민족의 핏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들이 대대로 살아온 홉스굴이 있는 한, 이들은 결코 홉스굴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용한/시인·여행작가

» 홉스굴 지도
홉스굴 여행쪽지

울란바토르에서 무릉으로

⊙ 몽골을 여행하려면 우선 몽골 비자가 있어야 한다. 몽골 대사관(02-794-1951)에서 비자를 받는다. 보통 사흘이 걸리며 비자 수수료는 3만8천원이다.

⊙ 인천에서 몽골의 서울인 울란바토르까지 몽골항공과 대한항공이 운항한다. 매일 한 차례 정도 비행편이 있다. 왕복 항공료는 60만~75만원 선으로 다섯 시간 걸린다. 울란바토르에서 무릉까지는 250달러 정도다. 1시간30분~2시간 걸린다. 보통 차를 빌려 홉스굴 일대를 돌아다닌다. 하루 차량 대여료는 80달러 정도.

⊙ 숙소는 울란바토르의 게스트하우스급 기준으로 도미토리 5달러, 트윈 14달러 정도다. 홉스굴의 게르에 숙박할 경우 15~30달러 정도. 보통 식사는 3천~5천투그릭(3천~5천원) 선에서 먹을 수 있다. 울란바토르 엠케이(MK)마트에서 라면·김치 등 한국 식료품을 살 수 있다. 울란바토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용카드를 쓸 수 없으니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2008.01.16 한겨레에 실었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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