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나무다리, 섶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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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나무다리, 섶다리



남대천 어성전 가는 길의 멋진 나무다리. 다리가 끝나는 우묵한 곳에 집 한채 있다.


몇 며칠 폭설 내려 오던 길 다 끊겼다. 산간에 들이박힌 집들도 저마다 눈을 한 키만큼 이고는 납작하게 짜부러졌다. 아랑곳없이 눈발은 자꾸 날려 산도, 마을도, 하늘도 저리 분간 없이 하얗다. 폭설로 뒤덮인 양양 남대천을 따라 어성전 가는 길. 어성전을 코앞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나무다리가 한 채 눈 내리고 얼음 덮인 남대천을 가로지른다. 이 멋진 나무다리는 개울에 자연적으로 솟은 바위와 바위 사이에 여러 개의 통나무를 지그재그로 놓아 여러 개의 나무다리를 하나의 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그리고 나무다리가 끝나는 곳에서 조금 더 우묵하게 들어가면 외딴 집이 한 채 계곡에 들어앉아 있다. 그곳으로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이 다리는 저 외딴 집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인 셈이다. 나는 갑자기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추억의 나무다리를 몇 번이나 오가며 때늦은 외로움과 소통해본다.



평창 뇌운계곡 뇌운리에 있는 아름다운 나무다리.


여기서 남대천을 따라 더 올라가면 법수치 계곡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곳에서도 해마다 겨울이면 질러놓는 외나무다리를 만날 수 있다. 이 외나무다리는 계곡의 중간쯤에 버팀돌을 쌓아놓고 양쪽에 깎아서 만든 두 개의 통나무를 질러놓은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통나무가 끝나는 곳에는 다시 징검다리를 몇 개 놓아 외나무다리를 연결해 놓았다. 물론 비가 많이 올 때면 떠내려가기 십상이어서 해마다 서너번씩 다리 놓는 일을 반복할 때가 많다. 내가 만난 또 하나 아름다운 나무다리는 평창강 상류에서 만난 뇌운계곡의 나무다리다. 뇌운계곡 뇌운리에서 볼 수 있는 이 나무다리는 외지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의 다리처럼 계곡의 상류를 가로지른다. 뇌운리 나무다리는 통나무를 여러 개 잇대어 놓은 다리로, 그 길이가 약 30여 미터에 이른다. 그러나 하루종일 다릿목에서 기다려보아도 이 나무다리를 건너는 이 아무도 없다. 너무 적막해서 쓸쓸하고, 쓸쓸해서 더 아름다운 나무다리에 나는 외로운 발자국 몇 개를 보태고 왔다.



 판운리에서 볼 수 있는 섶다리 풍경.


그 옛날 물폭이 그리 넓지 않은 하천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다리가 바로 나무다리와 섶다리였다. 현재 섶다리는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에 있는 섶다리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볼만하다. 판운리에서는 과거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버드나무를 베어다 다릿목을 세운 뒤, 솔가지를 위에 얹고, 뗏장을 떼다 흙과 함께 덮어 해마다 섶다리를 놓았다. 본래 섶다리는 이듬해 장마가 지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마련이지만, 판운리에서는 장마 이전에 다릿목과 발판을 거두었다가 날이 추워지면 다시 내어다 썼다. 그러나 강 위쪽에 새로 시멘트다리가 생겨나면서 섶다리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몇 년 전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시금 부활하게 된 것이다.



지네발처럼 얼금설금 다릿목을 세운 판운리 섶다리.


사실 오래 전 강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 섶다리는 이웃 세상을 넘나드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섶다리라는 것이 여기저기 세운 버팀목에다 얼기설기 나무와 솔가지를 얹은 뒤, 뗏장을 덮은 것이라 그리 튼튼하거나 폭이 넓지 못했으니, 장날 술 한잔 걸치고 오는 날이면 누군가는 어김없이 다리에서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기곤 하였다. 시멘트 다리가 생겨나기 이전까지 섶다리는 강마을 사람들의 통로 노릇을 해온 대표적인 다리였다. 이런 섶다리는 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선의 동강과 곡성의 섬진강 등에서도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영월의 판운리와 주천리 등에만 겨우 남아 있다. 추억의 풍경으로 남은 나무다리와 섶다리! 한번 놓으면 끄덕도 없는 시멘트 다리의 뻣뻣함이 어찌 나무다리와 섶다리의 곰살가움에 비길 것인가.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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