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 보살과 조계사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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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맘 보살과 조계사 고양이

 

 

석가탄신일을 맞아 조계사에는 갖가지 빛깔의 연등이 내걸렸다. 셀 수 없이 많은 연등이 하늘을 뒤덮었고, 연등 사이로 얼핏 흐린 하늘이 드러났다. 여러 번 조계사 앞을 지나갔지만, 제대로 조계사를 구경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사실 불자도 아닌 내가 조계사에 온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고양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조계사에 고양이가 있다고? 물론 이곳의 고양이는 경내에 살지는 않는다.

 

태어나 지금까지 지붕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딱한 고양이.

 

인근의 탑공원이 바로 조계사 고양이가 머무는 곳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이 조계사 고양이의 급식소이다. 때마침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급식소의 물을 갈아주고 있었다. 꽤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세 군데 돌아가며 물을 갈고 나자 이번에는 소나무 위 받침대에 쌀을 한 움큼씩 여러 번 얹어 놓았다. 그러자 곧바로 어디서 날아왔는지 참새가 여남은 마리 내려앉았다. 고양이 물을 갈아주고 새 밥을 주는 남자.

 

조계사 탑보살님이 생선을 얻어다 먹이고, 사료를 주면서 조계사 고양이를 보살펴오고 있다.

 

“매일 고양이밥을 주시나요?” “새 밥도 주고, 고양이밥도 주고 그럽니다. 여기 고양이를 돌보는 보살님은 따로 있어요. 저는 도와주는 거죠.” 어쨌든 이 분도 캣대디 어르신인 거다. 젖이 축 늘어진 노랑이 한 마리는 물을 마시러 와서 흘끔흘끔 나를 쳐다본다. 삼색이 한 마리는 벌써 물을 마시고 나무덩굴 사이로 들어가 낮잠을 청한다. 고등어 한 마리는 낯선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설치는 게 꼴사나운지 급식소로 오던 걸음을 바꿔 조계사 쪽으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나는 탑 앞에서 방향 없이 머뭇거렸다.

 

 

 

점심시간이 다 지나서야 이곳의 고양이를 돌본다는 캣맘 보살이 나타났다. 보살님이 나타난 걸 어떻게 알고 여기저기서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기껏해야 서너 마리였던 탑 주변의 고양이가 어느 새 열 마리가 넘었다. 보살님은 나무 아래 비닐포대를 열더니 생선을 몇 마리 꺼내 정성껏 살을 발랐다. 살을 발라 내놓는 생선을 우르르 몰려든 고양이들이 저마다 한 입씩 물고 주변으로 흩어졌다. 녀석들은 다시 와서 한 입 물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생선이 제법 많네요.” “저기 청진동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남은 생선을 가져와 먹이고 있어요.”

 

조계사 고양이를 보살피는 캣맘 보살과 캣대디 어르신.

 

보아하니 사료그릇 안에는 이미 사료가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고양이들은 생선을 먹기 위해 줄까지 섰다. “사료값이 만만치 않아서 이렇게 식당에서 생선까지 날라다 먹여야 해요. 다른 사람은 보니까 사료도 어디서 지원받고 그런다는데, 한달에 사료값만 해도 몇 십만원이 들어가요. 그래도 어떡해요. 여기 있는 애들을 굶길 수는 없잖아요.” 여기서 돌보는 고양이가 20마리 남짓 되는데다 사료는 늘 떨어지지 않게 자율급식을 하고 있어 충분히 그럴만했다. 사실 요즘에야 나도 외부의 후원이 끊겨 사료를 대량구매하고 있지만, 한창 70여 마리 고양이에게 사료배달을 다닐 때만 해도 절반 이상의 사료를 독자들로부터 후원받곤 했다. 어쩌면 그 후원의 힘으로 나는 세권의 고양이책을 쓸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어떤 후원도 없이 보살님은 20여 마리의 고양이를 보살펴왔으니, 그 고충이 오죽할까. “사료야 어떡하든 내가 해본다지만, 고양이한테 해코지하는 것은 정말 어찌할 수가 없어요. 밤낮으로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저기 걸어가는 고등어 있죠. 잘 보면 눈이 한쪽 없어요. 애꾸눈이에요. 쟤가 원래는 사람을 잘 따랐어요. 여기가 절이다보니 근처에 노숙자가 많아요. 한번은 노숙자가 먹을 걸 가지고 저 녀석을 꼬셨나봐요. 고양이가 가까이 오니까 젓가락으로 눈을 찔러서…… 그래 저 녀석이 실명이 됐잖아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저기 지붕 위 있죠. 거기 보면 고양이 두 마리가 있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붕 위에서 산 녀석들이에요. 어떻게 된 녀석들이 고양이가 지붕을 못내려와요. 근데 요 앞에 사는 남자가 있어요. 이 사람이 툭하면 지붕 위의 고양이가 시끄럽다고, 돌을 던져요. 저기 잘 보면 기왓장이 많이 깨져 있죠? 그게 다 그 남자가 돌을 던져서 그렇게 된 거예요. 아이고, 왜들 그렇게 고양이를 못살게 구는지 참.”

 

근처 노숙자의 해코지로 눈 한쪽을 잃은 고양이. 

 

보살님은 고양이에게 밥만 주는 것이 아니라 구석에다 고양이를 위한 집까지 만들어주었다. 그곳에는 젖이 늘어진 노랑이가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새끼 세 마린가는 가끔 찾아와 자원봉사를 하는 캣맘이 데려다 분양을 시켰다고 한다. 안에 한두 마리가 더 있는데, 마저 캣맘이 데려갈 거라고 한다. 그렇잖아도 오늘 오기로 했단다. 우연히 그 캣맘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세상이 좁은 건지, 나도 아는 캣맘이었다. 우리동네 전원주택 고양이들 중성화수술을 할 때 포획틀을 빌려주고 동물병원까지 소개했던 바로 그 캣맘이었던 것이다.

 

보살을 기다리는 고양이(위). 조계사 고양이 무리의 왕초고양이. 이제는 늙어서 이빨도 성하지 않다고 한다(아래).

 

보살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내고는 마지막으로 보여줄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혼자 외떨어진 외톨이 고양이. 일명 왕따 고양이였다. 누가 따돌린 것도 아닌데, 스스로 무리에서 벗어나 외톨이가 된 고양이. 알고 보니 녀석은 몸이 아파서 병을 옮길까봐 스스로 무리에서 벗어난 거였다. 보살님이 부르자 녀석은 화단 구석에서 맥없이 걸어나왔다. 입에서는 연신 침같은 것이 흘러내렸다. 단순한 구내염인지 허피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녀석은 힘겹게 사료를 몇 알 씹어보다가 도로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보살님은 어떡하면 좋으냐고, 잡혀야 병원에도 데리고 가는데, 잡을 수가 없다고 푸념을 했다. 나는 아쉬운 대로 ‘라이신’을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몸이 아파서 무리에서 이탈해 혼자 은신하고 있는 고양이. 허피스인지 입에서 계속 진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집으로 가려고 탑을 지나는데, 고양이를 살피는 캣대디 어르신에게 노숙자 한 분이 다가왔다. 캣대디 어르신과는 잘 아는 사이로 보였다. “혹시 생선 남은 거 있나? 있으면 좀 나눠주시게. 고양이도 먹고, 사람도 먹고 그러는 거지 뭐.” “저기 가서 뒤져봐. 온전한 놈이 좀 있을 거야.” 그 분은 조금 전 고양이에게 나눠주었던 생선 포대를 열어 한 마리 온전한 놈을 가지고 돌아갔다. “아이구, 이렇게 자꾸 신세를 지네. 고양이 먹는 거를 갖다가…….” 그러자 캣대디 어르신도 똑같은 말을 했다. “고양이도 먹고, 사람도 먹고 그러는 거지 뭐.” 나도 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고양이도 먹고, 사람도 먹고, 고양이도 살고, 사람도 살고.”

 

* 조계사 고양이 자원봉사 및 사료후원을 기다립니다.

사료 후원할 주소: (110-170)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45번지 조계사 신도회관 반야회 탑보살 님께.

 

* 길고양이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 트위터:: http://twtkr.olleh.com/dal_lee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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