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양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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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겨진 고양이 마을

 

 

목과마을은 욕지도의 작은 포구마을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속력을 내고 해안도로를 달리다가는 놓치기 십상인 마을. 최근 들어 해안도로 위쪽에 펜션이 여러 채 들어서긴 했지만, 실제 거주는 고작 10여 가구에 불과한 마을. 이 작은 마을에서 나는 마음이 달달해지는 풍경을 만났다. 마을 앞 선착장에 나와 바다를 바라보는 고양이들. 느긋하게 방파제를 거닐거나 썰물 난 바닷가를 가만히 거니는 고양이들. 민박집 마당을 자기네 앞마당으로 여기는 고양이들.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많은 마을. 방파제 쪽으로 수시로 낚시꾼이 오가고, 이따금 선착장에 어부들이 드나들어도 이곳의 고양이들은 도망을 치거나 숨는 법이 없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 결코 경계심을 발동하지 않는 고양이들. 처음 마을로 들어섰을 때, 포구와 맞닿은 진입로에 세 마리의 고양이가 바다를 향해 앉아 있었다. 두 마리의 노랑이와 삼색이. 내가 근처를 지나가도 녀석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검은 고양이 두 마리와 턱시도 한 마리는 물이 빠진 자갈밭에서 무언가를 수색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마도 파도에 떠밀려온 물고기 사체라도 찾는 모양이다.

 

 

주차장 맞은편 민박집 마당에도 또 다른 노랑이 두 마리와 턱시도, 검은 고양이가 마치 제집 마당인 양 서성거린다. 어린 삼색이는 동백나무와 진달래가 활짝 핀 화단에 앉아 낯선 여행자의 동선을 예의주시한다. 주차장 왼편으로 두 척의 배가 매어져 있었는데, 뱃머리 쪽에는 고등어 한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다. 주차장 컨테이너 아래 폐그물에도 노랑이가 한 마리, 포구 건너편 방파제에도 낚시꾼들 사이에 검은 고양이와 얼룩이가 얌전하게 앉아 있다. 반경 5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무려 15마리의 고양이를 만난 것이다. 이후에도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더 만나 목과마을에서 내가 만난 고양이는 모두 21마리에 이르렀다. 게다가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계심이 심하지 않은 고양이들이어서 사진을 찍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대다수의 고양이가 경계심이 심하지 않다는 것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수시로 찾아오는 낚시꾼들조차 녀석들에게 꽤 우호적이었다는 반증이다. 사람의 태도에 따라 고양이의 행동은 달라지게 마련이므로.

 

 

여느 섬과 마찬가지로 욕지도 또한 전반적으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욕지도라도 목과마을은 달랐다. 마을에서 고양이를 위해 밥을 내놓거나 특별히 예뻐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무심했다. 고양이가 선착장에 앉아 있거나 말거나, 화단에 누워 잠을 자거나 말거나, 수돗가에 와서 물을 마시거나 말거나. 이렇게 무심한 것만으로도 고양이는 저렇게 자유롭고 저렇게 평화롭다. 어쩌면 사람과 고양이의 진정한 공존의 모습은 저런 무심함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인정한 바 없지만, 나는 내 맘대로 목과마을을 <고양이 마을>로 지정했다. 남이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다. 이제부터 나에게는 목과마을이 고양이 마을이다. 보물처럼 숨겨진 고양이 마을.

 

 

목과마을에서 만난 결정적인 순간은 저녁 무렵에 찾아왔다. 한 여성(외국에서 시집 온 여성으로 보이는)이 오토바이를 타고 주차장에 나타나자 주변에 있던 고양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모자를 눌러쓴 그녀는 출렁다리를 건너 포구에 매어놓은 배로 풀쩍 건너뛰더니 밑창에 보관하던 물고기를 여러 마리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았다. 무슨 일인지 노랑이와 고등어 녀석은 그녀의 뒤를 좇아 뱃머리까지 따라갔다. 드디어 그녀가 물고기를 절반쯤 담은 플라스틱 통을 들고 올라왔다. 주차장에 여기저기 앉아있던 고양이들이 익숙하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벽돌 위에 도마를 올려놓고 앉은뱅이 의자에 앉은 그녀. 양동이에 담아온 물고기를 한 마리씩 꺼내 손질을 시작한다. 그녀의 주변으로 고양이들도 몰려든다.

 

 

어떤 녀석은 바로 앞에서 얼쩡거리고, 어떤 녀석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주위를 배회한다. 가만 보니 대여섯 마리의 용감한 녀석들은 가까이에서, 예닐곱 마리의 소심한 녀석들은 간이횟집 나무의자 아래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고양이들이 몰려들어도 아랑곳없이 그녀는 물고기 손질을 한다. 특별히 녀석들에게 인심을 쓰지도 않는다. 다만 물고기 손질을 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진 내장이며 생선머리 따위는 고양이 몫으로 남긴다. 고양이들이 그녀를 졸졸 따라다닌 이유가 그거였다. 물고기를 손질하고 남은 부산물을 얻어먹기 위해서.

 

 

가장 먼저 용감한 턱시도가 생선머리를 획득했다. 제법 큰 물고기여서 녀석도 흡족한 표정이다. 이어서 노랑이 녀석도 껍질이 붙은 지느러미를 물고 달아났다. 뒤늦게 합류한 삼색이도 머리를 하나 얻어 은신처로 사라졌다. 작업은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다. 손질이 끝난 생선은 다시 나무의자에 올려놓고 회를 뜨기 시작한다. 여전히 고양이들은 그녀의 곁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녀석들은 더 적극적으로 달라붙어 야르릉거리며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회를 뜰 때 생기는 뼈(살점이 제법 붙어 있는)를 기다리는 거였다. 그녀는 한 마리씩 작업이 끝날 때마다 살점이 붙은 뼈를 고양이에게 던져주었다. 고양이들끼리 쟁탈전은 치열했다. 심지어 노랑이와 검은 고양이, 또 다른 노랑이와 삼색이는 위에서 던져준 뼈째회를 동시에 물고 서로 소유권 싸움을 벌였다.

 

 

간이횟집에는 모두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모였지만,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얻지는 못했다. 어떤 고양이는 의기양양했지만, 어떤 고양이는 의기소침했다. 해가 질 무렵에야 작업은 끝이 났다. 고양이들도 뿔뿔이 해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고양이들은 미련이 남아 한 번 더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녀석들을 위해 비상식량을 풀었다. 두 그룹으로 나눠 컨테이너 쪽에 10묘분 정도, 주차장 끝 쪽에 3묘분 정도 사료 인심을 썼다. 그러자 컨테이너 쪽에 열한 마리, 주차장 끝 쪽에 세 마리의 고양이가 몰려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밥을 먹는 동안 뉘엿뉘엿 해가 졌다.

 

 

고양이에 반해, 마을에 취해 나는 목과에서 이틀을 보냈다. 목과마을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고, 오히려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난 김에 이 이야기도 적어야겠다. 이튿날 방파제에서 고양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물었다. “오늘도 안 나가셨네. 어제부터 무슨 사진을 그렇게 열심히 찍어요?” 뻔히 고양이 사진 찍는 모습을 들킨 터라 나는 사실대로 고양이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잠시 후 소리 없이 사라진 아주머니는 커피를 한잔 들고 나타났다. “이거라도 마시고 해요.” 비록 커피 한잔이지만, 그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흐리고 가끔 고양이> 책 작업을 위해 고양이 여행을 다니며 우연이라도 내가 고양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역정을 내거나 한심하다며 혀를 끌끌 차고 갔다. 그래서 더욱 아주머니가 건넨 커피 한잔을 잊을 수가 없다.

 

* 위 내용은 <흐리고 가끔 고양이>에도 실려 있으며, 아래 뷰추천을 누르면 고양이에게도 응원이 됩니다.

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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