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찍었다 하수구 길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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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들여다본 하수구 길고양이들

 

궁금했다.

하수구 속의 길고양이 모습이.

그래서 찍었다.

하수구 속의 길고양이들.

무려 1개월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기원하는 길고양이 프로젝트.

 

 달 속에 고양이가 산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건 배수구 속의 고양이다. 어두운 터널의 끝에 앉아 있는 꼬미.

 

하수구 앞에 엎드려 그 안의 고양이를 찍느라

내 옷은 흙투성이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필이면 내가 작업한 곳이 논고랑에서 하천으로 빠지는,

엄밀히 말하자면 배수구여서

그것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질척한 논흙바닥에 엎드려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배수구 중간쯤에 앉아 상념에 빠진 고양이. 소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아무도 하수구 속의 길고양이를 찍으려 하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찍는 하수구 길고양이는

그 자체로 최초가 될 테니까.

문제는 노출이었다.

배수구 속이 캄캄하다보니 카메라 노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감도를 1/2500이나 1/3200로 높이고

셔터 스피드는 낮추고, 조리개를 한껏 열고 나서야

희미하게 피사체가 잡혔다.

 

 흑과 백, 어둠과 밝음. 렌즈의 빛샘 효과가 오히려 흑백의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수도 없이 초점이 나갔다.

지난 1개월 동안 약 300여 컷의 하수구 길고양이를 찍었지만,

건질 수 있는 컷은 20여 컷에 불과했다.

한번은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논고랑에 엎드린 나를 보더니

“뭐하슈?” 그러는 거였다.

뭐 둘러댈 말이 없어서 그냥 나는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 왈 “거 참...!”

아마도 뒤엣말 “별 미친 놈 다 보겠네!”가 생략되었을 것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에 발을 디딘 꼬리 짧은 고양이 꼬미. 너의 묘생도 그러하기를.

 

할아버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지나갔다.

정작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싶은 건 나였다.

옷이 더러워지는 거야 빨면 되는 거지만,

녀석들이 영역 표시로 해둔 고양이 오줌 냄새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지난 1개월 동안 하수구 속에서 피사체 노릇을 해준 고양이는

꼬미와 재미, 소미, 가만이였다.

다행히 녀석들의 영역에는 이런 배수구가 두 개나 있었다.

논자락에서 밥을 먹고 나면 녀석들은 자주

이 배수구를 통과해 하천으로 내려갔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

 

어두운 배수구 속을 어두운 빛깔의 턱시도 가만이가 걸어간다. 건너편에 앉은 꼬미를 향해.

 

그게 아니더라도 녀석들은 그동안 이 배수구를 은신처로 사용해 왔다.

인근에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면

녀석들은 어김없이 이 배수구 속으로 숨어들곤 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도

녀석들은 이 배수구 속으로 몸을 피했다.

나는 녀석들이 밥을 먹고 개울로 내려가는 때를 기다려

이 장면을 찍곤 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시절이 있다. 가끔은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난한 시절의 행복한 기억들!

 

배수구를 통과하던 고양이들은

내가 밖에서 들여다보자 도리어 그런 나의 모습이 궁금한 지

한참을 배수구 속에 앉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중에는 저 인간 또 저러네,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배수구를 통과해 하천으로 내려갔다.

그야말로 지난 1개월 동안 나는 밑바닥 생활을 경험했다.

가장 낮게 엎드려 가장 어둡고 가장 낮은 묘생을 기다렸다.

가장 아프고 가장 민망한 자세로 가장 은밀한 묘생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뭐 누가 뭐래도 관음증 수준에 가까웠다.

 

 "내가 꿈꾸던 묘생은 이런 하수구가 아니었다."

 

그래도 그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다.

조금은 초점이 흔들리고,

조금은 노출이 미약해서 또렷한 사진을 얻을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꽤 값지고 특별한 결과물이다.

이렇게 힘들게 작업해서 블로그에 올려봐야

다음뷰나 뭐 이런 데서는 대수롭잖게 보아 넘기겠지만,

나중에 책을 내거나 길고양이 사진집을 작업한다면

이 사진들은 개인적으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그 끝이 어디든."

 

너무 힘들게 찍어서 다시는 찍고 싶지 않다.

하수구 길고양이.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 트위터:: @dal_lee

명랑하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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