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도 숨바꼭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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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숨바꼭질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기는 고양이는
주변의 모든 사물과 지형지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동물이다.
은폐와 엄폐, 놀이와 싸움에서도 녀석들은 그것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안다.

집냥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위해
고양이 낚시에서부터 쥐돌이, 스크래처, 캣타워 등
고양이의 심심함과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한 거의 모든 것을 사다가 바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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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이네 보모냥인 이옹이가 텃밭 이랑에 씌워놓았던 검은 비닐을 발견하고, 그리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당연히 길고양이는 이런 모든 혜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집냥이의 집사들이 아무리 많은 장난감을 사다 날라도
길고양이가 가지고 노는 놀잇감에는 따라갈 수가 없다.
길고양이는 길거리의 거의 모든 사물과 지형지물이 놀이도구나 다름없다.
내가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이 녀석들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으로 놀이하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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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옹이가 하는 모양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까만코와 코점이.

길에 떨어진 비닐봉지 하나만 있어도 이 녀석들은 그것을 가지고 노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골목의 높고 낮은 담장은 녀석들에게 높이뛰기와 평균대 노릇을 하고
정원의 고목이나 집앞에 세워둔 자동차 타이어는 훌륭한 스크래처 노릇을 한다.
날이 추울 땐 가끔 이 녀석들이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가 있곤 하는데,
반드시 방금 운행을 했던 엔진이 따뜻한 차만을 골라서 올라간다.
누군가 둘둘 뭉쳐 내버린 목장갑은 녀석들에게 쥐돌이나 다름없고,
텃밭에 매어놓은 줄이나 나무에 늘어진 나뭇가지는 고양이 낚싯대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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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찾아봐라~!" 이옹이 녀석 텃밭 이랑의 나풀거리는 검은 비닐을 헤집고 들어가 몸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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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녀석들 가끔 사람과 똑같이 숨바꼭질을 한다.
설마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길고양이의 숨바꼭질은 내가 수차례나 목격한 바다.
과거 집앞을 찾아오던 희봉이와 깜냥이도 연립에 살던 얌이와 멍이도
이따금 숨바꼭질을 하곤 했다.
숨바꼭질을 좋아하기로는 그냥이네 식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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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술래가 된 코점이가 이랑의 비닐 속에 숨은 이옹이를 찾기 위해 다가서고 있다.

특히 보모냥으로 가족을 떠나지 않고 있는 이옹이와
그냥이네 새끼들은 텃밭과 자동차 하체의 빈틈을 오가며 숨바꼭질을 한다.
한번은 이옹이와 코점이, 까만코가 숨바꼭질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배꼽 잡는 줄 알았다.
이옹이는 자기 맘대로 코점이와 까만코에게 술래를 시켜놓고
숨을 곳을 찾았다.
바로 텃밭 이랑에 씌워놓았던 검은 비닐 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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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 숨었지?" 검은 비닐 속에 몸을 숨긴 이옹이와 그 앞에서 이옹이를 찾고 있는 코점이(위). "나 여깄지롱~ 놀랐지?" "아이 깜딱이야!" 이옹이와 코점이는 숨바꼭질이 재미있는지 똑같은 행동을 서너번 반복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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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코점이와 까만코가 다 보고 있는데도 그 안에 숨어 몸을 납작 엎드렸다.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거의 완벽하게 몸을 숨긴 상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옆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이옹이가 몸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옹이가 검은 비닐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자
코점이와 까만코는 한발한발 검은 비닐을 향해 다가왔다.
앞장서 다가온 코점이는 이옹이가 숨어 있는 비닐 앞까지 다가와 코를 킁킁거리며
알고도 모르는 척 주위를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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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장난치기 좋아하고, 동생들을 돌보며 놀기를 좋아하는 보모냥 이옹이.

그러자 이옹이가 갑자기 비닐을 와락 제치며 코점이를 놀라게 했다.
코점이 또한 화들짝 놀라며(놀라는 척하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둘은 숨바꼭질이 재미있는지 서너번이나 똑같은 숨고 찾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꼭 이옹이는 숨기만 하고, 코점이는 찾기만 하는 술래 노릇을 하는 거였다.
아직은 짬밥이 모자라 그러는 모양인지
단순히 이옹이의 욕심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 녀석들 텃밭 이랑의 비닐 하나로 이렇게나 재미있게 논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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