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지에서 만난 한국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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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오지에서 만난 한국소주


알타이 여행 열흘을 넘기면서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행을 온 이상 여행하는 것만이 여행자의 위안이었다.
이제 사막의 작은 마을
붐브그르를 벗어난 차는
바얀홍고르를 향해 떠난다.

너무 오래 비포장길을 달려 덜컹거리는 리듬에 익숙해진 나는
도리어 덜컹이지 않는 포장도로에 들어서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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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길 너머로 보이는 바얀홍고르.

붐브그르를 출발해 3시간 만에 바얀홍고르에 도착했다.
그동안 들렀던 도시 가운데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다.
도심 입구부터 포장된 아스팔트는 오히려 낯설었다.
바얀홍고르는 꽤나 크고 번화한 도시이지만,
몽골에서는 여전히 오지에 속한다.
여기에서 울란바토르까지는 차를 타고 가도 이틀이 걸리니 그럴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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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오지의 도시 바얀홍고르에서 만난 한국식당 '서울센터'(위)와 그곳에서 만난 참이슬 소주(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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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오지의 도시에 한국식당이 있었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서울센터'.
실로 십 몇칠 만에 거기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겠구나, 라고 나는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말이 한국 음식이지 김치찌개도 된장찌개도 안된단다.
그냥 닭고기가 한국 음식으로 팔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한국식당 간판을 내걸어서인지
바에는 칭기스 보드카 옆에 참이슬 소주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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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공산주의 시절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간부급 휴양소였던 샤르갈조 온천으로 가는 길. 기막힌 초원의 연속.

오랜만에 한국소주 맛이나 보자고 그것을 한병 시켰다.
하지만 이제껏 독한 칭기스 보드카만 마셔오다 한국소주를 한잔 들이켜니
이건 숫제 맹물이다.
일행들도 다들 소주가 이렇게 싱거운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짓는다.
소주가 원래 이렇게 싱거운 술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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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최고의 휴양소 샤르갈조에서는 노천에서 흘러내린 온천물이 그대로 개천으로 흘러간다.

바얀홍고르를 떠난 차는 항가이 산맥 남쪽 기슭에 자리한 샤르갈조 온천을 향해 달린다.
샤르갈조 온천은 몽골에서 가장 큰 온천으로,
과거 공산주의 시절 가장 유명한 휴양소였다고 한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하루 정도는 사치를 하자고
길안내를 맡은 비지아 교수가 권한 곳이었다.
그러나 가는 길은 녹록치 않다.
길이 위험하다는 느낌표(!) 도로표지판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중간중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나 나올 법한 기막힌 초원의 언덕도 펼쳐진다.
거의 해가 떨어질 무렵 샤르갈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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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최고의 휴양소 샤르갈조는 노천 온천으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이곳이 공산당 간부에게만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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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좀 하자고 온건 분명한데,
온천물이 나온다는 샤워기는 찔끔찔끔 눈물 흘리는 수준이고,
온도 조절이 안돼 살갗이 익을 정도로 물이 뜨겁다.
손바닥으로 물을 받아 겨우 몸을 씻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온천수로 샤워를 했더니 그동안의 경직된 몸이 풀리면서 정신이 나른해진다.
한시도 떠난 적 없던 카메라도 집어치우고 수첩도 집어던지고
나는 옛날 이곳에서 쉬었을 공산당 간부 흉내를 내본다.
창문을 열어놓고 침대에 드러누워 바깥의 새소리를 지겹도록 듣는다.
그러다 까무룩 꿈결처럼 잠이 들었다.

* 바람의 여행자::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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