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안녕, 후두둑 씨>(실천문학사, 2006)

|

 

 

  안녕, 후두둑 씨

 

   red00_next.gif저자 : 이용한
   red00_next.gif판형 : 시집류
   red00_next.gif출간일 : 2006-05-30
   red00_next.gif페이지 : 152쪽

   red00_next.gifISBN : 89-392-2161-3
   red00_next.gif가격 : 값 7,000원
   red00_next.gif독자서평 쓰기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용한 시인의 두번째 시집. 현대판 산해경(山海經)인 듯 기이한 변종과 변질된 사물로 가득한 이 시집은 문법과 기표의 교묘한 전위(轉位)로써, 혹은 시간과 공간이 뒤엉킨 불가능한 배경을 통해 자신만의 참호를 구축하고 있다.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그 자신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펼쳐온 이용한 시인의 두번째 시집 『안녕, 후두둑 씨』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1996년 첫 시집 『정신은 아프다』 이후 꼭 10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는 수상한 당나귀가 방 안을 접수하고, 긴수염고래가 술에 취한 후두둑 씨를 잡아당기는가 하면, 적멸한 달밤에 길짐승이 ‘모텔 맙소寺’를 찾아 헤맨다. 초승달 카페는 천 길 벼랑 끝에서 삐걱이고, 녹슨 지느러미를 터는 물고기 여인숙과 파인애플을 낳는 공룡이 등장한다.

현대판 산해경(山海經)인 듯 기이한 변종과 변질된 사물로 가득한 그의 시편은 문법과 기표의 교묘한 전위(轉位)로써, 혹은 시간과 공간이 뒤엉킨 불가능한 배경을 통해 다원화된 층위로 포진한 2000년대 시의 한 극단에 적절한 위장술로 자신만의 참호를 구축하고 있다.


기형적 변종이 판치는 마술적 리얼리즘

이 시집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불릴 만한 변신 모티프와 은유적 전이가 그득한 시로 채워져 있다. ‘변전(變轉)된 몸의 국가’에서 벌어진 일들, 방목하고 있는 생명체들은 저마다 탄생의 연원을 확실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없는 세계에 존재하는 실존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마르케스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 가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윤의섭 시인의 해설). 시인은 변화무쌍한 속도와 세상과 섞어지기 위해 끊임없이 유전학적 변형을 시도하며, 그 변종들은 시간과 공간과 문장을 건너는 동안 수없이 진화하거나 소멸해버린다.

후두둑 씨에게 인생은 앉아 있는 것이다
뒤꿈치가 닳아서 무표정한 의자가
매일같이 삐걱이는 후두둑 씨를 기다린다
사뿐히― 갈라진 여백을 중얼거리며
아들아 거의 다 왔다,
문이 닫힌 아내가
지붕 위에서 성큼성큼 쏟아져 내린다. (「안녕, 후두둑 씨」 부분)


후두둑 씨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가 이미 육체이탈한 후두둑 씨라는 것을, 해서 그의 변신은 표면적으론 그리 영악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표제작으로 삼은 ‘후두둑 씨’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빗소리에서 차용한 ‘후두둑’은 이제 곧 격렬한 폭우를 예고하는 전주곡에 다름 아니다. 폭우를 예감케 하는 빗소리와 숨죽인 발자국에 감도는 긴장을 눈치챌 때 우리는 비로소 시인이 곳곳에 꾸며놓은, 시인이 도처에서 보아야 했던, 우화적이고 신화적이며 블랙유머를 뒤집어쓴 알레고리적 종족과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만남은 기이한 체험이지만, 결코 낯설지가 않다. 아마도 우리가 이미 그 변종의 삶을 너무 오래 살아오고 있기 때문일 터.


떠도는 육체, 방황하는 정신

변전된 육체의 풍경은 그가 정신적 노마드의 경계를 넘어 몸의 유목을 실천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인의 몸은 현대 자본주의 생태계의 환경에 맞춰, 아니 스스로 변형을 시도하여 유전학적 변질을 모색 중이다. “눈 오는 후두둑 씨를 쓸어 넘”(「뒤뚱뒤뚱, 후두둑 씨」)기며, “이제 막 변신을 시작한 반인반수의 꼬리를 힘껏 흔들”(「12월의 곰사냥」)거나 “아, 조그맣게 녹슨 아가미를 내밀어”(「파리지옥」) 보다가 어느새 “신종 노새가 되어가”(「어느 날 당나귀 한 마리」)는 것이다.

절로 날이 저물어
모텔 맙소寺를 찾아가는 길짐승 한 마리
눈에 비친 雪經이 그렁하다
눈이 없으면 눈물도 없었겠지
입도 없고 아랫도리도 없는
죽어서 난 佛像한 나무가 될 거야 (「맙소寺」 부분)


함성호 시인은 이런 풍경을 “이용한의 시에는 떠도는 육체와 방황하는 정신이 각각 존재한다. 정신의 풍경(諷經)이 육체이고, 육체의 풍경(風景)이 정신인 이용한의 시에는 그래서 시적 화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의 고향으로 방황의 장소가 마땅하다면 떠도는 육체의 피곤함은 곧 이용한의 시의 장소다. 장소를 육체로 삼고 있는 자는 무수한 시를 쓰게 마련이다. 이 비극이 바로 이용한 시의 긴장이다”라고 진단한다. 결국 그의 기이한 형태는 분명히 존재하는 기형적인 세계가 가져온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존재와 세계의 불가능한 사랑에 다름 아닌.

초승달 카페는 한껏 붉은 입술을 벌린다
초승달 카페는 가끔 아프고,
헐거운 주인이 마호가니 바에 앉아서
물고기처럼 술을 마신다
어느 새처럼 울던 사내는 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새와 물고기가 사랑한 저녁은 없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구름이 벗겨진 천장과
강물이 흘러간 마룻바닥과
천둥과 번개만이 누렇게 얼룩진
초승달 카페는 천 길 벼랑 끝에서 삐걱이고,
아침이면 아가미 같은 문을 닫는다. (「초승달 카페」 전문)


시인이 보여주는 세계는 세상에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초승달 카페’ 같은 것이다. 그곳에서는 애당초 ‘새와 물고기의 사랑’이 불가능하다. 그것을 아는 “헐거운 주인”은 그럼에도 “천 길 벼랑 끝에서 삐걱이는” 위태로운 카페에서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은 사랑을 기다린다. 우리가 이용한의 시에서 기이한 정서적 체험과 함께 잔잔한 애수를 느끼는 까닭은 그 불가능한 기다림 때문이 아니다. 고통의 세계에서 변질된 존재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고독하게 키워서 사랑을 시키고 이별을 시키는 ‘사육사’인 시인의 기형적 운명 때문이다.

이용한 시인은 196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1996년 다니던 잡지사를 때려치우고 오랜 방랑과 방황의 길로 들어선 이래 이 세상에 뿌려진 순진한 풍경과 낡아빠진 삶의 자취를 따라 야금야금 부스러기 같은 길을 먹어치우고 있다. 체 게바라 식 여행을 추구하는 ‘붉은여행가동맹’의 지친 유목민. 그동안 시집 『정신은 아프다』 외에 문화기행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꾼』, 『장이』,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이색마을 이색기행』, 『솜씨마을 솜씨기행』, 『옛집기행』 등을 펴냈다.

제1부 초승달 카페

초승달 카페 ― 11
안녕, 후두둑 씨 ― 12
맙소사, 후두둑 씨 ― 13
후두둑 씨와 긴수염고래 ― 14
뒤뚱뒤뚱, 후두둑 씨 ― 16
늙은 달 ― 18
등푸른 자전거 ― 19
화이트 아웃 ― 22
어느 날 당나귀 한 마리 ― 24
12월의 곰사냥 ― 26
파리지옥 ― 29
관념적인 그녀 ― 32
비 오는 춘화 ― 34
무악재에서 공무도하가를 ― 36
흘러온 사내 ― 38
더스트 인 더 윈드 ― 41


제2부 가벼운 구름의 편두통

잠과 꿈 ― 47
비 맞는 여인숙 ― 48
떠도는 물고기 여인숙 ― 50
구멍, 오래된 ― 55
파인애플 사우루스 ― 58
가벼운 구름의 편두통 ― 60
맙소寺 ― 64
미궁역의 원효 ― 66
9시의 폭탄 투척자 ― 68
괴물 ― 70
고통사고 ― 72
갈매기 증후군 ― 74
지옥의 쉼표 ― 75
X&Y ― 78
귀거래사에 빠지다 ― 80


제3부 흑산도 서브마린

연어, 7번 국도 ― 85
길의 미식가 ― 88
흑산도 서브마린 ― 90
모서리 ― 92
한계령 ― 94
송계 1박 ― 96
통리행 ― 98
정암사 열목어 ― 99
자작나무 카페 ― 100
나무아미―정선 ― 102
서강에 들다 ― 104
명옥헌 배롱나무 ― 106
3번 국도 혹은 ― 108
12월의 정거장 ― 110



제4부 이상한 밥상

우체통 ― 113
목요일은 아프다 ― 114
우중야독 ― 116
후두둑, 그대 ― 117
약국 여자 ― 118
그녀의 영등포 ― 120
그녀의 비극적인 입술 ― 122
이상한 밥상 ― 124
지독한 안개 ― 125
지독한 늪 ― 126
민박합니다 ― 128
고장난 것들 ― 130
가지 못한 구름 ― 131

해설 | 윤의섭 ― 132
시인의 말 ― 151

* 출처: http://silcheon.com/ 에서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