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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31 어느 떠돌이 길고양이 이야기 (25)

어느 떠돌이 길고양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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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떠돌이 길고양이 이야기

 

 

과거 축사고양이의 일원이었던 가만이는 축사가 철거될 당시

가장 먼저 축사를 떠나 돌담집으로 영역을 옮긴 녀석이다.

이후 녀석은 돌담집을 영역으로 삼아 6개월 이상을 살았다.

거기서 네 마리의 새끼도 낳아 알콩달콩 살았더랬다.

 

 "배수구가 이 정도는 돼야 살만 하죠."

 

하지만 무슨 일인지 새끼 네 마리 중 세 마리는 3~4개월쯤 지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무렵 함께 의지하며 살던 동생 여리도 고양이별로 떠났다.

언제부턴가 돌담집 앞에는 이상한 밥이 놓여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나는 그 이상한 밥 근처에서

그것을 먹고 죽은 쥐 한 마리를 목격한 적이 있다.

 

 "그나저나 아저씨는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거참 신기하네..."

 

새끼들과 동생 여리가 세상을 떠나자

그곳을 영역으로 삼았던 가만이도 더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가만이조차 하나 남은 카오스 새끼를 데리고

새로운 영역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녀석이 다시 옮겨온 곳은 돌담집에서 50~60미터쯤 떨어진 폐차장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노을이와 무럭이 남매가 차지한 영역이었다.

 

대모네 식구들이 사용하는 배수구에 놀러온 가만이. 

 

무럭이네 남매는 착하게도 가만이와 카오스를 따뜻하게 맞이했지만,

노을이는 툭하면 폐차장에서 가만이를 쫓아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만이는 개울로 쫓겨내려가 건너편 비탈길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함께 데려온 카오스에 대해서는 노을이도 관대한 편이었다.

결국 카오스는 그곳에 정착했고,

가만이는 하루하루 노을이의 눈치를 보며 드난살이를 했다.

툭하면 쫓겨나긴 했어도 가만이는 폐차장에서 추운 겨울을 났다.

 

 봄이 오면 뭐하나. 봄이 와서 더 많은 고양이가 사라졌으니...

 

그런데 이른 봄 사고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무럭이네 3남매가 보이지 않았다.

노을이도 사라졌고, 가끔씩 폐차장에서 와서 밥을 먹고 가던 당돌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쯤 새끼를 배고 있던 카오스 녀석은 안전한 출산을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폐차장 인근 텃밭에 놓아둔 수상한 밥을 먹고

그동안 여울이와 여울이가 낳은 세 마리의 새끼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적이 있다.

 

 "그래도 이 느티나무처럼 굳건하게 살아야죠."

 

마당고양이 봉달이와 까뮈도 그 수상한 밥의 희생묘였다.

무럭이 3남매도 그렇게 떠난 것이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돌담집에서 이미 똑같은 경험을 했던 가만이는

계속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해서 녀석은 다시 영역을 옮겼다.

이번에는 아예 폐차장에서 가까운 개울로 내려와

배수구와 개울 건너편 덤불숲을 오가는 묘생을 살았다.

 

 하천공사로 어수선한 개울가 바위에 앉아 공사 현장을 지켜보는 가만이.

 

때마침 봄이 되면서 개울에는 대모네 가족이 두 개의 배수구를 오가며

개울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가만이 또한 대모의 자식으로 여전히 대모는 가만이가 오면 밥 먹을 자리를 내주곤 했다.

대모네 가족이 임시거처로 사용하는 배수구에서

100여 미터 남짓한 곳에 가만이의 은신처가 있었다.

가만이는 내가 대모네가 머무는 배수구 근처로 사료배달을 갈 때마다

위쪽의 배수구를 나와 이쪽으로 내려오곤 했다.

 

 애기똥풀 사이를 빠져나오는 가만이(위). 가시덤불에 걸려 굴욕적인 표정이 된 가만이(아래).

 

그렇게 가만이는 개울에서 봄을 보냈다.

하지만 최근에 몇 차례 비가 내리면서 가만이가 머물던 배수구에는 물이 넘쳐흘렀다.

아래쪽 대모네가 머무는 배수구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큰 이곳의 배수구에는 비가 조금만 와도 물이 흘러넘쳤다.

가만이는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폐차장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개울 건너편 덤불숲을 헤매기도 했다.

 

 다시 돌담집으로 돌아와 예전에 그랬듯 같은 포즈로 담장 위에 앉아 있는 가만이.

 

그리하여 얼마 전 가만이는 다시 예전에 살던 돌담집으로 돌아왔다.

이 시골 구석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고 느낀 가만이는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면서 돌담집으로 돌아와 닥쳐올 여름을 준비했다.

다만 올해는 작년 여름과 같지 않기를,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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