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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0 생명의 우포늪과 죽음의 언덕 (3)

생명의 우포늪과 죽음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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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의 과 가야 고분: 우포에서 교동까지



해 뜨기 직전, 살짝 안개가 드리운 우포늪 풍경.


새벽 우포늪에 안개가 자욱하다. 늪가의 미루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찰랑찰랑한 나뭇잎을 은전처럼 흔든다. 늪을 따라 난 에움길에는 온갖 날것들의 싱싱한 소리로 넘쳐난다. 새들은 짹짹, 꼬꼬거리고, 개구리는 갹갹거린다. 풀섶에서 흘러나오는 이름모를 갖은 풀벌레 소리에 귀가 따갑다. 늪을 뒤덮은 안개가 스멀스멀 건너편 산자락을 넘을 때쯤 구름 너머로 반짝 해가 뜬다. 생이가래, 물옥잠, 개구리밥, 창포, 마름, 자라풀. 온통 초록빛 수생식물로 뒤덮인 우포늪이 그 시원의 모습을 이제 막 햇살에 드러낸다.


우포 바로 옆에 자리한 목포늪에서 바라본 해뜰 무렵의 풍경. 구름 사이로 뜬 해가 물 속에 잠겨 있다.


이 때쯤 늪가 마을의 어부들은 삿대로 쪽배를 밀어 그물을 걷으러 나간다. 어부들은 이 늪에서 붕어와 매기도 잡고, 재수가 좋으면 잉어와 가물치도 잡는다. 때때로 아낙들도 배를 타고 나가 인적이 드문 곳에 배를 대고 늪 바닥을 훑어 살진 논우렁을 건져올린다. 논우렁이 한창인 여름철이면 한 사람이 수십 킬로그램씩 잡아 돌아올 때도 있다. 여기서 잡은 논우렁은 술안주감으로 장에 낸다. 모든 날것들의 생명마당인 우포늪은 이렇게 사람에게도 소중한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시원의 생명마당을 천천히 걸어 눈 속에 그득 날것들의 몸짓과 표정과 빛깔을 채곡채곡 담는다. 이 시원의 풍경은 이미 공룡이 살았던 쥐라기 시대(1억 4천만년 전)에 생겨나 오랜 세월과 풍상을 견딘 눈물겨운 풍경이다.


강렬한 아침햇살이 수생식물로 가득한 우포늪을 비추고 있다.


예부터 창녕은 ‘메기가 하품만 해도 물이 넘친다’는 고을로 불려왔다. 이 고을에 우포늪을 비롯해 여러 늪지가 자리해 있고, 장마나 집중호우가 나면 낙동강 하류가 지천을 통해 저지대인 이 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지대로 흘러든 물은 밖으로 나가지 못해 늪을 형성했고, 이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우포늪이 된 것이다. 우포늪은 알려져 있듯 나라에서 가장 큰 습지로 전체 면적이 70만 평에 이르며, 창녕군 유어면과 이방면, 대합면 등 3개 면, 14개 마을에 걸쳐 있는 원시의 늪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우포늪은 사실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에 뜬 구름과 구름 뜬 하늘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쪽지벌의 수면.


그 중 우포는 유어면 대대리와 세진리에 걸쳐 있고, 목포는 이방면 안리, 쪽지벌은 이방면 옥천리, 사지포는 대합면 주매리에 걸쳐 있다. 우포를 중심으로 쪽지벌과 목포, 사지포가 시계방향으로 자리해 있는 것이다. 우포와 폭포, 우포와 사지포 사이에는 현재 침수방지용 제방을 쌓아 놓았으며, 쪽지벌은 목포에 잇닿아 있다. 우포의 본래 이름은 소벌이다. 지형상 소의 목에 해당한다는 우항산을 끼고 있어 붙은 이름이다. 목포는 나무벌이라 불렀는데, 과거 이 곳에 소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사지포는 모래가 많은 벌이라 하여 모래벌이라 불렀으며, 쪽지벌은 다른 세 늪에 비해 크기가 작다고 붙은 이름이다. 이 이름들을 일제 때 한자로 바꾸면서 지금과 같은 지명이 생겨난 것이다.


우포늪 바닥에 가득한 논우렁 껍질.


그러므로 현재 우포와 목포, 사지포는 본래의 이름인 소벌, 나무벌, 모래벌로 바꿔야 함이 옳다. 일제는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다. 당시(1930년대) 대대리에 제방을 쌓으면서 본래의 우포는 전체 면적 가운데 3분의 1이나 줄어들고 말았다. 우포늪의 운명은 1970년대 들어 또 한번 수난을 겪게 되는데, 나라에서는 우포를 천연기념물에서 제외하고 우포늪 주변의 크고 작은 늪들을 농경지로 개간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오늘날 우포는 환경단체들의 보전 노력에 힘입어 1997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이어 1998년에는 람사협약에 의해 보존습지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연잎 위에 올라앉은 개구리와 우포늪을 가득 뒤덮은 생이가래.


우포늪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원시적인 생태계를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가시연, 생이가래, 물옥잠, 자라풀을 비롯한 수생식물과 부들, 골풀, 줄풀과 같은 습지식물이 400종 이상 분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우포에는 논병아리와 쇠물닭, 큰고니, 백로 등 철새와 텃새가 60여 종, 물방개, 소금쟁이, 왕잠자리와 같은 수서곤충이 50여 종, 논우렁, 물달팽이, 말조개같은 패각류가 5종, 물고기 20여 종, 양서류 5종, 파충류 7종, 포유류가 12종 정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식물을 모두 포함해 약 1천여 종이 넘는 생명체가 우포를 비롯한 네 개의 늪에서 터살이를 해오고 있다.


노랑어리연꽃과 가시연의 어린 잎.


우포가 단지 날것들과 물풀들의 생명마당 노릇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늪은 그 자체로 자연댐 기능을 담당해 홍수를 조절하고, 지천을 통해 들어온 물을 가두어 저수지 기능을 동시에 담당한다. 또한 우포는 늪의 또다른 기능인 거대한 정화조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물속식물과 물밖식물, 물위식물이 한데 합쳐 고인 물을 정화하고, 밖에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것이다. 우포늪이 날것들에게는 행복한 생태공원이요, 사람에게는 소중한 자연유산인 동시에 삶의 유산인 셈이다.


물옥잠과에 드는 물달개비의 보라색 꽃.


창녕은 고대 부족국가였던 가야시대에는 불사국(不斯國)으로 불리웠으며, 신라에 병합된 뒤 비사벌(比斯伐)로 불리다 주변의 여러 고을을 합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창녕에는 가야시대의 고분군이 남아 있는데, 창녕읍 교리 일대에 펼쳐진 교동 고분군과 화왕산 서쪽 기슭인 목마산성 아래서 볼 수 있는 송현동 고분군이 바로 그것이다. 두 고분군은 도로를 사이로 나란히 마주보고 있으며, 교동에 21기, 송현동에 17기가 남아 있다. 이 고분군은 일제 때 발굴된 탓에 대부분의 유물이 일본으로 건너간 상태이다. 당시 발굴된 유물로는 금봉관을 비롯해 각종 귀금속으로 만든 장신구, 토기와 철제 무구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는 창녕에서 우포를 망치고 고분까지 도굴해 간 것이다. 


교동 고분에서 바라본 송현동 고분군. 가야시대의 고분으로, 고대국가 시대에 창녕은 '불사국'의 핵심지역이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교동 고분군과 송현동 고분군 주변에는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 있고, 송현동 고분군 뒤편으로는 멋진 미루나무가 여러 그루 솟아 있어 봉긋봉긋한 고분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고분 사이로 구불구불 에돌아나간 길도 운치를 더해 준다. 교동 고분군에서는 창녕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주변에 펼쳐진 녹색 들판도 덤으로 볼 수가 있다. 여기서 읍내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또 하나의 고분처럼 펼쳐진 창녕 석빙고를 만나게 된다.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이 석빙고는 경주나 안동의 석빙고와 비슷한 구조양식을 보이지만, 그 크기는 약간 작은 편이다. 창녕 읍내로 들어가 시장통이 있는 술정리에 이르면 멋진 동3층석탑(국보 제34호)을 볼 수가 있다. 통일신라 때 쌓았다는 이 석탑은 불국사의 석가탑에 비견될 만큼 장중하고, 기품이 느껴지는 탑이다. 여기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도 서3층석탑을 볼 수 있는데, 두 탑이 한쌍은 아니다.


창녕읍 술정리에 있는 하병수 가옥. 이 땅에서 가장 멋진 샛집으로 손꼽힌다.


3층석탑이 있는 술정리에는 이 땅에서 가장 멋진 샛집도 만날 수가 있다. 하병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0호)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시대의 가옥구조(1760)를 따르고 있는 이 가옥은 네 칸 남향집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손바닥만한 텃밭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는 온갖 꽃을 심은 화분이 놓여 있다. 샛집 앞에는 기와집이 한 채 있는데, 이 기와집이 사랑채이고, 샛집이 안채라고 한다. 안채를 둘러싼 돌담은 마치 성곽을 연상시키듯 폭넓게 쌓았는데, 마당에서 담으로 올라가기 좋게 계단식 오름도 만들어 놓았다. 집채에 비해 지붕은 제법 우람해 한눈에 격식 있는 집으로 보이게 한다. 옛 사람의 멋과 슬기가 고스란히 배어나오는 집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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