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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3 다랑논이 100층, 자연과 인간의 동업예술 (9)

다랑논이 100층, 자연과 인간의 동업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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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100층, 자연과 인간의 동업예술



조선의 명필 김구 선생이 유배객의 신분으로 지은 <화전별곡>에서 ‘하늘 끝, 땅 끝, 한 점 신선의 섬’이라 불렀던 남해! 파릇파릇 봄물이 들어 있는 남녘 들판을 따라 남해로 간다. 남해란 땅은 참으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산으로서는 유일하게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산이 있고, 그 금산 꼭대기 쯤에는 바위 절벽 한켠에 보리암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남해에는 상주 해수욕장을 비롯해 사촌, 월포, 송정, 모상개까지 모두 다섯 곳의 해수욕장이 있으며,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 남해 본섬과 창선도 사이 지족해협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원시어업 죽방렴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면 가천마을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다랑논(계단식 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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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에서 내려다본 가천 다랭이마을 풍경.

남해에서 ‘다랭이마을’로 불리는 가천마을에 이르게 되면 누구나 ‘아!’ 하고 먼저 탄성을 지르게 된다. 다랑논의 아름다운 굴곡과 비탈에 촘촘이 들어선 집들, 옥빛 바다의 절묘한 어우러짐 때문이다. 사실 가천리의 다랑논은 지금에 와서는 다랑이밭이라 해야 옳다. 이른바 계단식 마늘밭인 셈인데, 이 곳의 계단식 마늘밭이 그려내는 굴곡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어떤 거대한, 자연의 예술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것을 층수로 계산하면 100여 층에 이른다고 한다. “경치 좋은데 사시네요.” 가천리 들머리에 이르러 돌투성이 비탈밭에서 지심을 매고 있는 유복심 씨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이 경사지고, 가파른데, 뭐가 좋십니꺼.”라며, 오히려 손사레를 친다. 하긴 매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그저 그런 평범한 풍경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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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 마늘 다랑밭둑에 앉아 봄쑥을 캐고 있는 할머니.

유복심 씨에 따르면 가천리에 사는 대부분의 농가가 마늘 농사에 매달린다고 한다. 이 곳에서 본격적으로 마늘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약 30여 년 전. “작년에는 마늘 농사가 그래도 잘 됐는데, 시세가 없어논께, 별 소득이 없어.” 그래도 그는 남해 마늘이 최고라며, 한동안 마늘 자랑을 늘어놓았다. 남해군의 기후는 비교적 따뜻한 해양성 기후를 띠는데, 그로 인해 한해에 한번 눈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그러한 기후 조건이 남해를 마늘의 최대 생산지로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다 남해 땅이 산이 많고 내가 별로 없어 예부터 논 농사보다는 밭 농사가 성했다. 남해에 계단식 밭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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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다랭이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부.

가천마을의 다랑논은 묵은 밭을 뺀다면 거의 전부가 마늘밭이지만, 다랑논이란 것이 농사 짓기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우선 농기계가 전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가천리에서는 농기계 대신 소가 아직도 유용하게 쓰이며, 거름을 져나를 때도 순전히 지게에 의존한다. “기계가 못들어 오니까. 아직도 소 가지구 밭 갈구 그래. 옛날에는 저 우에 밭도 다 갈아먹었는데, 지끔 웃고랑은 다 묵었어.” 마을에서 만난 이영태 씨의 얘기다. 그에 따르면 과거 이 마을에는 120여 가구 정도가 살았으나, 지금은 60여 가구 정도밖엔 안된다고 한다. “옛날에는 길 위쪽에도 집이 많았어. 그러다 젊은 사람덜 나가고, 그러니까 논두 묵고 이래 됐지. 그게 농촌의 현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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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 다랑이밭에 핀 유채꽃도 바다를 본다.

본래 가천마을의 땅이름은 마을의 양쪽 계곡에서 내가 흐른다고 더할 가(加), 내 천(川)자를 써서 가천이 되었다. 이곳에는 각각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암수바위가 있는데, 마을의 주민들은 이 바위를 영험한 미륵으로 여겨 해마다 음력 시월 스무사흗날(조금 날)이면 암수바위 앞에 온갖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예부터 미륵바위로도 불리는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천재지변을 막고, 풍어를 이룰 수 있으며,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마을에서 바닷가쪽으로 내려가는 길 오른편에 자리한 이곳의 암수바위는 숫바위 높이가 5.8미터, 둘레만도 1.5미터, 암바위는 높이가 4.9미터, 둘레가 2.5미터에 이른다. 바위의 모양새는 숫바위가 남성의 성기 모양이라면, 암바위는 아기를 밴 여인의 모습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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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밭의 엄마 염소, 아기 염소.

가천마을 암수바위의 신령함은 알 길이 없지만, 마을에서 처음 만난 유복심 씨에 따르면, 한번은 마을에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 여 말께나 하는 김씨가 살았는데, 저 미륵을 미신이라꼬 불을 쳐질라논께, 그래 해를 입었능기라. 여기서는 저 가천미륵이 영검(영험)이 있어가꼬 저걸 모시능기라. 한번은 마을에 다리 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집이서 논을 부치면서 똥오줌을 거기 부렀다케요. 그래 그 집이 부정을 타서 아덜이 병신이 됐어요. 여기 암수 미륵이 보면 저 앞에 보이는 소치섬의 암수 미륵을 마주 보고 있능기라. 거기도 여기처럼 암수가 있어가꼬, 그래 영검이 있능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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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떨어지는 소리. 떨어진 동백의 처연한 아름다움.

유씨에 따르면 암수바위에 제를 지낼 때는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부정타지 않는 사람을 뽑아서 밤중에 제를 지내는데, 이 때 고기는 쓰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에서 만난 조막심 할머니도 유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옛날에는 저기에 손이라두 잘못 대면 해를 입고 그랬어. 애 못 낳는 사람이 고기를 끈에 끼가꼬 바위에 걸고 빌면 애두 낳구, 고기 잡는 사람도 그렇게 빌면 고기도 마이 잡아요. 마이 잡아도 빌고, 적게 잡아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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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 다랑이는 대부분 마늘밭이다.

가천마을에는 또 하나의 특이한 당산 풍습이 전해 오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밥구덕 당산’이란 것이 그것인데, 해마다 시월 보름에 이 곳에서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거기서 제를 지낼 때는 밥을, 쌀 서되 분량을 해서 밥구덕에 묻어놔요. 온동네 사람 밥 굶지 말라고, 밥을 담아서 놓는 기지.” 역시 조막심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다. 밥구덕 당산은 어린애 키높이만큼 돌탑을 쌓아올려 그 위에 거북등처럼 생긴 돌을 모신 것인데, 특이한 것은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뚫어놓고 그 안에 또 거북등처럼 생긴 돌을 들여놓았다. 그 안쪽을 ‘밥무덤’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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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에서 볼 수 있는 암수바위의 숫바위.

제를 지낼 때면 안쪽에 있는 밥무덤의 돌 뚜껑을 열고 밥을 묻은 뒤 다시 닫아 놓는다고 한다. 물론 현세의 사람들이 밥 굶지 말라고 비는 것이지만, 돌아가신 분들에게도 역시 밥 굶지 말라는 기원의 의미가 숨어 있다고 봐야 한다. 아름다운 다랑논과 더불어 암수바위와 밥구덕 당산이 있는 마을. 마을 앞에는 옥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마을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곳. 남해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 것만으로 남해는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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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밥구덕 당산.

<여행정보>
남해 가천마을에 가려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서 진주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바꿔탄 뒤, 사천 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3번 국도를 타고 내려간다. 삼천포에 이르면 사천과 남해 창선면을 잇는 삼천포대교를 만날 수 있다. 삼천포대교를 넘어 창선면 창선대교를 건너면 남해읍으로 이어진 길이 나온다. 이 1024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월포와 홍현리가 나오고, 이어 가천리가 나온다. 서울 남부 터미널에서 시외버스 운행(4시간 30분). 잘 곳은 남해읍과 상주, 지족면에서 만날 수 있다. 문의: 남해군청 055-864-2131.

* 길 위에서 받아적은 구름::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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