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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9 어장관리 고양이 (31)

어장관리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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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장관리 고양이

 

 

거문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직업 고양이가 있다. 어장관리 고양이다. 말 그대로 어장을 관리하기 때문에 어장관리 고양이다. 이곳에서 어장관리 고양이는 다시 두 개의 직업군으로 나뉜다. 1. 바다 한가운데 띄워놓은 어장을 관리하는 고양이. 2. 선창에 줄을 매놓은 바지선에서 어구를 관리하는 고양이. 녀석들의 임무는 어장과 바지선에서 쥐나 수달의 습격을 막고 어구와 물고기 사료를 지키는 일이다. 쥐는 그렇다 치고 수달까지? “여기 수달이 많아요. 해달 말고 수달. 수달이 어장에 들어가면 양식중인 물고기 작살나는 거예요. 양식 그물에 흠집을 내기도 하고.” 구멍가게에서 만난 주인의 귀띔이다.

 

 

“그래서 큰 어장에는 고양이 한두 마리씩은 다 있어요.” 말로만 듣던 어장관리 고양이였다. 어장관리 고양이를 만나려면 어쩔 수 없이 어장에 나가는 배를 얻어 타야 하는데, 낯선 외지인을 그들이 태워줄 리 만무했다. 더구나 고양이에 대한 반감이 지독한 사람들이 아닌가. 선창에 나가 두 번이나 어장에 나가는 어부에게 부탁해 보았지만, 둘 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멍가게로 되돌아가 생수를 한 병 사서 목을 축이는데, 가게 주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소?” “서울에서 왔습니다.” “뭐 하러 왔소?” 사실 거문도에서는 ‘고양이’이란 단어가 금기어에 가깝기 때문에 나는 에둘러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참 멀리서 왔다면서 그는 한 시간 후에 선창으로 나오란다. 그렇잖아도 한 시간 뒤에 어장에 사료를 주러 간단다.

 

 

한 시간이나 시간이 남았건만, 나는 곧바로 선창으로 향했다. 잠시 그쳤던 가랑비가 다시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 어디선가 이야옹, 이야옹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희한하게도 그 소리는 바다 쪽에서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선창에 매어놓은 바지선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비가 내려서 미끄러운 선창 아래로는 내려가지 못하고 위에서 망원렌즈를 통해 바라보니 노랑이 한 마리가 바지선 위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녀석은 줄에 묶여 있었는데, 멀리서 나를 보자 꼬리를 치켜세우고 보다 앙칼지게 울어댔다. 녀석의 앙칼진 울음이 바다로 퍼져나갔을까. 저쪽 바지선에서도 그리고 건너편 바지선에서도 고양이가 울기 시작했다. 모두 세 마리였고, 노랑이였다.

 

 

선창에서 가까운 바지선에서 어구를 관리하는 고양이들이었다. 선창에서 가깝다보니 혹시라도 녀석들이 탈출할까봐 바지선 주인은 고양이에게 목줄을 해놓은 것이다. 고양이 옆에는 밥그릇과 물그릇, 화장실이 갖춰져 있었지만, 마음대로 돌아다닐 자유는 없었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녀석들은 감금생활을 하고 있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지는데, 고양이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바다 위를 떠돌았다. 그런데 세 마리의 고양이 중 한 마리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컸다. 망원렌즈로 최대한 당겨서 녀석을 살펴보니, 아, 오른쪽 뒷다리가 다쳤는지 발목이 없다. 아예 잘려나간 것이다. 어느 정도 상처는 아물었지만, 다친 마음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듯했다. 녀석은 계속해서 울어댔고,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차라리 보지 말자. 나는 카메라를 거두고, 애써 녀석을 외면했다.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가뜩이나 거문도는 고양이와 관련된 외지인에게 적대감을 가진 어민들이 많아서 섣불리 어떤 행동을 했다가는 그들의 반감을 자극할 수도, 그것이 다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 발목이 잘린 고양이를 어구관리 고양이로 들인 바지선의 주인이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일부러 고개를 돌려 멀거니 바다를 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어장에 나가자는 가게 주인의 부름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는 뱃전에 올랐다.

 

 

 

선창에서 어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고작해야 물길로 5분 정도의 거리. 어장에 도착했지만, 어디에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장에 물고기 사료를 주는 데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시간을 넘겨서야 주인은 배에 시동을 걸었다. 바다에 즐비하게 떠 있는 어장들을 여러 개 지나쳐 거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다. 어장에 잇댄 창고 바지선에서 두 마리의 고양이가 배를 향해 이야옹거렸다. 녀석들은 사람이 근처에 온 것이 반가운지, 물목을 도는 배의 방향을 따라 바지선 위를 거의 한 바퀴나 돌았다. 다행히 녀석들은 목줄을 매지 않아 행동에 제약이 없었다. 어차피 바다 한가운데이므로 녀석들이 갈 곳은 없었다.

 

 

 

두 녀석 모두 노랑이였다. 녀석들은 바다가 떠나갈듯 울어댔지만, 이내 울음소리는 어선의 엔진소리에 묻혔다. 배는 고양이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결국 두 마리의 고양이는 아주 희미한 두 개의 점으로 남았다. 선창에서 가까운 마지막 어장에서도 한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어장을 어슬렁거리는 고등어 한 마리. 가만 보니 녀석은 어장의 테두리를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녀석의 걸음걸이는 제법 능숙해서 어장관리에 관한 한 베테랑처럼 보였다. 배가 지나가도 아예 본체만체였다. 심지어 녀석은 어장의 귀퉁이에 앉아 느긋하게 그루밍을 하더니 사지를 뻗고 잠을 청했다. 외로움을 넘어 녀석은 거의 절대고독의 경지에 이른 고양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어장관리를 위해 고양이를 이용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 넘겨야 할까. 고양이에게 이런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들은 왜 고양이 살처분을 주장하는 걸까. 어민의 입장에서 고양이가 그토록 필요한 존재라면 그들의 존재를 이제는 인정하고, 좀 더 너그럽게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느덧 비는 그쳤지만, 거문도는 여전히 먹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 위 글과 사진은 <흐리고 가끔 고양이>에 실려 있으며, 불법 복제나 펌을 금합니다. 

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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