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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2.31 걷고 싶은 눈길 여행 추천 5 (22)

걷고 싶은 눈길 여행 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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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눈길 여행 추천 5

 

눈 내린 겨울에 눈길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과 모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가,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지난 10년 넘게 나는 ‘야매’와 ‘무대뽀’ 정신으로 대책없이 산골과 낙도를 떠돌았고, 지금껏 이렇게 멀쩡한 것을 보면, 대책없는 여행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같다. 순전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뽑은 나만의 눈길 여행지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그곳에 가도 좋고, 가지 않고 눈으로 보아도 썩 나쁘진 않을 것이다.


1. 주천강과 평창강 섶다리길: 사륵사륵 추억의 화면 속으로



주천강에 내리는 눈발을 헤치고 연인이 나란히 쌍섶다리를 건너고 있다. 


굽이굽이 주천강(영월)을 따라가면 잊혀진 추억, 섶다리가 나온다. 마치 그것은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시간의 다리처럼 놓여 있다. 이쪽의 현실에서 다리를 건너면 저쪽의 과거로 사라질 것만 같은. 누군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텔레비전에서 보았다고, 어떤 할머니가 여기서 저기까지 사뿐사뿐 걸어가더라고, 자신이 지금 TV에라도 나오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는 종종 TV나 사진이 보여주는 미화된 추억과 만나곤 한다. 섶다리도 그렇다. 한동안 현실에서 사라졌던 추억의 재생같은 것. 추억의 화면 위로 오늘은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주천강을 가로지르는 주천리 섶다리는 그냥 섶다리가 아니다. 섶다리를 쌍으로 질러놓은 쌍섶다리다. 주천의 쌍섶다리는 그 유례가 깊다. 300여 년 전 주천 사람들은 단종이 묻힌 장릉을 참배하러 가는 관찰사 일행을 위해 이곳에 쌍섶다리를 놓았다.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영월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쌍섶다리 놓기는 통행의 목적보다 단종을 기리는 의식에 가까웠다. 주천에서 고갯마루를 넘어가 만나는 판운리(평창)에도 섶다리가 있다. 이 곳의 섶다리는 하나만 질러놓은 외섶다리다. 사실 주천리의 쌍섶다리도 판운리 장정들이 원정 가서 놓은 것이다.



눈이 내린 판운리 섶다리 풍경.


판운리의 섶다리는 주천리의 그것보다 훨씬 길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만도 한참 걸린다. 섶다리를 둘러싼 풍경도 주천리보다 제법 운치가 있다. 과거 판운리에서는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마을 장정들이 품앗이로 모여 버드나무를 베어나 다릿목을 세운 뒤, 솔가지를 위에 얹고, 뗏장을 덮어 섶다리를 놓았다. 마을 위쪽에 시멘트 다리가 생기면서 한동안 섶다리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몇 년 전 다시금 부활하였다. 이후 판운리 섶다리는 평창강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추억의 상품’ 노릇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2. 내소사 가는 길: 선계로 가는 비현실적인 길



눈이 수북하게 쌓인 내소사 들어가는 길.


부안 변산반도에 있는 내소사는 흔히 절로 가는 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특히 눈이 무릎까지 쌓인 이런 날이면 내소사 가는 길은 선계로 가는 길처럼 비현실적이다. 세찬 바람이라도 불면 수백 그루의 전나무는 일제히 눈더미를 털어 선계로 가는 나그네를 골탕먹인다. 길을 비켜난 계곡은 땅의 생김대로 울룩불룩하게 눈을 뒤집어쓴 엠보싱 표면을 다 드러내놓고 있다. 그 위에 방금 앉았다 간 새 발자국이 선명하고, 꿩의 깃털이 하나 발자취의 주인을 말해 주고 있다.



꽃살문으로 유명한 내소사 대웅전도 눈에 뒤덮여 있다.


눈길이 끝난 곳에서 내소사는 온통 폭설을 뒤집어쓰고 있다. 대웅전도 삼층석탑도 설선당도 제각기 묵직한 눈의 업보를 지고 있다. 내소사의 아름다움은 대웅전 꽃살문에서 두드러진다. 이 곳의 꽃살문은 마치 하나하나의 꽃잎이 살아움직이듯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색이 바래 나뭇결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천연한 꽃잎들. 연꽃은 연꽃대로, 모란은 모란대로 여기서 사철 꽃을 피운다. 꽃살문에 기대어 나는 내소사에 그득한 눈꽃을 본다.


3. 무주 점말 가는 길: 삼도봉 눈꽃 보며 걷는 길



외롭고 깊은 오지마을 점말로 오르는 눈길.


간밤에 눈이 내려 멀리 보이는 민주지산과 삼도봉이 눈꽃으로 새하얗다. 무주 미천리 장자터에서 점말로 가는 길(2킬로미터)은 눈이 내린 뒤에는 지프차로도 오르기 힘든 길이지만, 청량한 공기냄새를 맡으며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산길이다. 걸어서 30분이면 족한 길. 점말에는 오두막으로 지은 샛집을 한 채 만날 수 있는데, 내가 아는 한 이 샛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운치 있는 샛집이다. 그러나 얼마 전 이곳에 사는 샛집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점말 샛집은 외로운 빈집으로 남았다.



점말에 오르며 만난 삼도봉의 눈부신 눈꽃.


외롭고 깊은 산중의 오지마을에서 집이 비고, 빈집이 쓰러져 무너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점말에 올라 바라보는 삼도봉 눈꽃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그것은 아침 햇빛을 받아 수정처럼 맑게 빛난다. 코끝이 시린 겨울 바람도 삼도봉을 미끄러져 점말 언덕 소나무에 얹힌 눈더미를 잠깐 털어낸다.


4. 발왕재 60리길: 외롭고 높고 쓸쓸한 눈길



발왕재 60리를 오르는 고갯길 초입 풍경.


평창 진부에서 구절리로 넘어가는 약 60여 리에 이르는 발왕재 고갯길은 여전히 포장이 안된 천연한 두메길이다. 겨울에는 길의 우묵한 곳마다 잔설이 수북히 쌓여 승용차가 넘기에는 대책없이 벅찬 길이다. 오랜 옛날에는 정선의 구절리 사람들도 팍팍하게 이 길을 넘어 평창의 진부장을 보러 다녔다. 길이란 더 빠르고 편한 길이 생기고 나면 수명을 다하고 말지만, 발왕재 고갯길은 봉산리 주민과 몇몇 ‘길의 미식가’들로 인해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발왕재 눈밭에서 만난 토끼 한 마리.


봉산리 사람들이야 어차피 이 길을 넘어야 진부도 가고, 정선도 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길을 음미하고자 이 길을 넘는다. 지프차를 타고 혹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더러는 걸어서 넘기도 한다. 나 또한 이 길을 초가을에도 넘었고, 한겨울에도 넘었다. 한겨울에 넘는 발왕재는 유난이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고갯마루에 올라 눈 덮인 산천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공연히 눈이 시리고 마음이 아리다. 바람과 눈보라에 시달리는 자작나무의 눈부신 고투는 경건하고, 서리꽃을 뒤집어쓴 봉우리들의 겨울나기는 더없이 숙연하다.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계곡에 드문드문 집이 들어앉아 있다. 어떤 집에서는 구름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떤 집에서는 장작 패는 소리가 들려온다.


5. 도마령 눈길: 구불구불 아득한 눈길



도마령 정상에서 바라본 구불구불한 길 풍경과 산자락 풍경.


도마령은(刀馬嶺)은 그 옛날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도마령 북쪽은 영동군 상촌면 고자리, 남쪽은 영동군 용화면 불당골이다. 도마령을 친친 감고 있는 각호산은 멀리서 보면 두 개의 커다란 봉우리가 마치 낙타 등처럼 생겼는데, 절창으로 구부러진 에움길이 이 낙타의 배 밑으로 타래실처럼 풀어져 있다. 도마령은 얼마 전까지 비포장으로 남은 가장 아름다운 길 중에 하나로 손꼽혔지만, 이제는 포장공사로 그 옛날의 운치를 느낄 수가 없다. 내가 아는 어떤 건설사 직원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풍부한 자원이 시멘트이고, 건설업자의 눈에는 이 땅의 모든 맨땅이 쳐발라야할 공사장으로 보인다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비포장길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어느 선진국보다 앞서는 세계 최고의 도로포장율이 그것을 말해 준다.



도마령 아랫자락에 자리한 불당골의 눈 내리는 저녁.


그동안 여러 번 나는 도마령을 넘었고, 지난 겨울에도 도마령을 넘고자 폭설 내린 안정리를 거쳐 조동리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정확히 기억하건대 그날은 온도계가 영하 17도를 가리켰고, 설날을 며칠 앞둔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은 30센티미터 넘게 쌓여 있었다. 눈에 파묻힌 도마령 아랫마을 불당골을 지나 비탈진 산길로 들어서자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겨우겨우 도마령에 올라 올라온 길을 보니 구불구불 아득하고 아련하다. 첩첩한 산자락이 온통 은세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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