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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29 역전고양이가 사는 법 (24)

역전고양이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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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고양이사는



 


누가 뭐래도 우리는 역전고양이.
낮에는 헛간에서 자다가
가끔은 고추밭 이랑이나 벽돌 담장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지.
고추밭 이랑은 그늘이 있어 좋고,
벽돌담장은 바람이 불어 좋아.
역전에서 고작해야 40~50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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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시간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앞을 지나가지.
누군가는 와 고양이다, 귀여워 하지만
또 누군가는 말없이 돌멩이를 집어던지지.
그리고 딱 한 사람, 우리에게 사료를 배달하는 사람이 있지.
지난 장마철이었을 거야.
밤이 늦었는데, 플래시를 든 한 사람이 우리 앞을 지나치다 말고
차밑에 사료를 한 움큼 내려놓고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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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름내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매일같이 우리에게 사료를 배달했지.
우리는 날마다 그를 기다렸어.
어쩌면 사료를 기다렸는지도.
아무래도 좋아. 덕분에 우리 여섯 마리 역전고양이는 무사히 여름을 났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발길이 뜸해졌어.
이삼일 만에 나타날 때도 있었고,
사나흘 만에 나타날 때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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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가 그동안 그저 동정을 베푼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오던 그가
이렇게 뜸해질 리가 없잖아.
그동안 우리가 너무 그에게 의존해 온 것도 사실이야.
우리도 살 궁리를 해야 했지.
옛날에도 그랬듯 우리는 밤중에 가로등 밑으로 기어가
귀뚜라미며 풍뎅이를 잡아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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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돼지부속집을 기웃거렸고,
역마당의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어.
그래도 멀리서 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일제히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소리를 들었지.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속에서 들려오는 단 하나의 발자국 소리.
우리도 모르게 우린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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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너무 뜸한 발길이 미안했던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사료를 내려놓고 가더군.
물론 그것으로도 이틀을 넘기지는 못하지.
하지만 우리는 쓰레기봉투만 뒤지며 살아야 하는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서는 운이 좋다고 생각해.
며칠 전엔 이런 일도 있었지.
그는 담장에 올라앉은 우리들 사진을 찍고 있었어.
그런데 지나던 한 노인이 사진을 찍던 그에게
무슨 안 좋은 소리를 지껄이는 거 같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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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아랑곳없이 그는 노인이 사라진 뒤,
사료를 내려놓고 가는 거야.
우리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어.
우리에게 선심을 베푸는 많은 사람들이 정작 세상에서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이 동정이든 연민이든 그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지.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
아무튼 우리에게도 가을이란 게 찾아왔어.
폭염의 날들이 지나자 곧바로 서늘한 바람이 불더군.
하늘은 무청보다 파랗게 물들어 있고,
그 속으로 새털 같은 구름이 떠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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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엔 보도에 나와 달 구경을 해.
우리가 오랫동안 해왔던 취미생활이랄까.
보도에 앉아 달을 보며 꼬리를 쓰다듬는 거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달밤에 꼬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라야
우리는 좀더 고양이다웠어.
우리는 단지 고양이답게 살고 싶을 뿐이야.
우리를 이뻐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지 않아.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
며칠전 담배 피우며 지나가다 밭고랑에 앉아있는 우리한테 담뱃불 집어던진 아저씨!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잖아요.
다음부턴 제발 그러지 마세요.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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