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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22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고양이 (52)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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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고양이

 

 

 

이웃마을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순둥이는

오늘도 유일한 피붙이 아기고양이와 함께

담장에 앉아 짧은 겨울 햇살을 쐬고 있다.

 

 

내가 인근에 나타나자

녀석은 무슨 구세주라도 나타난 것처럼

반가운 얼굴로 담장에서 뛰어내려온다.

하지만 멀리 골목을 돌아오는 사람의 인기척에

녀석들은 혼비백산 달아나

컨테이너 밑으로 몸을 숨긴다.

이 녀석들의 사람에 대한 공포는 요즘 더한 편이다.

 

 

아마도 이 마을에서 주변의 고양이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최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안보이는 구석으로 녀석들을 유인해

푸짐하게 사료를 내려놓는다.

나는 언젠가 고양이들에게 했던 주문을 다시금 중얼거린다.

"살아 있으라.

부디, 죽을 때까지는 죽지 말아라."

 

 

 

언젠가 우리 동네에서 약 4km정도 떨어진

이웃마을을 일러 나는

‘고양이가 사라지는 마을’(일명 킬링필드)이라 부른 적이 있다.

지난 2년 넘게 그곳에선

열댓 마리의 고양이가 변을 당해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인다.

확실하게 증언을 통해 밝혀진,

쥐약을 먹고 죽은 고양이만 해도 10여 마리에 이른다.

 

 

 

<나쁜 고양이는 없다>라는 책에서도 나는 여러 차례

쥐약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들을 이야기하면서

몇몇 시골 사람들의 몰인정을 비판했는데,

어떤 분들은 그런 비판이 너무하다는 의견을 밝힌 분들도 있다.

시골에 살면서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쥐약을 통해 고양이의 유입을 막는 게 불가피한 조치인데,

그것을 비판하는 건 좀 억지스럽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사실 고양이를 알지 못했을 때는 나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골에서도 대규모 농사를 짓는 진짜 농부는

고양이에 대해 무심하거나 그냥 외면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웃마을에서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텃밭농사를 짓는 아주머니 한 분만

고양이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 동네에서도 집 앞 마당에 소규모로 텃밭농사를 짓는

두어 분 정도가 고양이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정작 소규모로 텃밭 농사를 짓는 분들일수록 고양이에 대한 적대감이 더했다.

나 또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랄 것도 없는 텃밭농사를 짓고 있지만,

그래서 우리집 텃밭에도 고양이가 피해를 주긴 하지만,

이제껏 그것 때문에 우리 식구가 못먹을 정도로 피해를 입은 적이 없다.

상추밭을 고양이가 파헤쳤지만, 나중에 상추는 오히려 남아돌아서

여기저기 인심까지 썼다.

고추와 오이도 남아서 밭에 묵혀둔 것이 많다.

 

 

 

내가 알기로는 쥐약을 놓아 고양이 일가족을 몰살한 이웃집에서도

작년에 아삭이 고추며 오이가 남아돈다며 나에게 두세 바가지나 선물로 가져온 적이 있다.

당시에도 고양이는 텃밭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남아서 나에게까지 인심을 베푼 것이다.

(난 사실 비료와 농약으로 키운 이웃집의 채소 선물이 달갑지 않다.

잘고 못생겨도 난 내가 키운 유기농 채소가 좋다.)

그렇게 남아서 남에게 인심을 베풀 거라면

그 인심을 조금만 고양이에게 베푸는 게 어떨까.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엄연히 동물보호법에

동물을 죽이기 위해 쥐약 및 독극물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라 규정하고 있으며,

벌금도 과거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강화되었다.

법을 떠나서 함부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가 없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한 블로거가 말하기를

한국에서 텃밭을 파헤친다는 이유로 쥐약을 놓아 고양이를 죽인다고 하자

캐나다 현지인들이 경악과 함께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여행가로 15년을 살면서 내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봤어도

텃밭을 파헤쳤다는 이유로 쥐약을 놓아 고양이를 죽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고양이는 엄연히 법적인 보호동물은 아닐지라도 법적 관리동물이다.

이는 다시 말해 개인이 함부로 고양이를 죽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법을 어기고 고양이를 함부로 죽인 그 사람을 비판하면

도리어 비판한 사람이 욕을 먹는다.

언젠가 블로그에서 내가 그에 관한 포스팅을 올리자

몇몇 사람들은 나에 대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과 협박으로 댓글 테러를 가했다.

 

 

그동안 쥐약을 놓아서 10마리 넘게 고양이를 죽인 이웃마을의 그 사람은

죄책감이나 반성은커녕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잘만 살아간다.

동물보호법이 아무리 강화된다 해도 소용이 없다.

문제는 법의 강화가 아니라 실효성이다.

아무리 벌금과 징역을 늘려도 일선 경찰서에서는 ‘고양이 사건’ 정도는 수사할 의지가 없다.

아니, 신고한 사람이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동물보호단체가 작심하고 나서야 못이기는 척 수사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이제는 법의 강화에 방점을 둘 것이 아니라

그것의 실효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고양이의 킬링필드에서 겨우 살아남은 순둥이는

오늘도 유일한 피붙이 새끼를 데리고

골목 담장에 올라가 있다.

녀석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까뮈가 낳은 새끼 중에 유일한 생존묘!

순해빠진 녀석이라서 늘 걱정스럽던 이 녀석이

그래도 끝까지 남아 나의 시름을 달래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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