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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10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37)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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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함께 사는

 

 

지난 초봄 이웃 할머니들이 우리집을 찾아와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엄포를 놓고 간 뒤부터 나는 우리집 마당에 고양이 밥을 주면서도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이 녀석들이 또 옆집의 텃밭을 파헤쳐 이웃 할머니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게 아닌가, 언제나 전전긍긍 노심초사였다. 고양이가 선물한 쥐를 부러 할머니에게 보여주면서 쥐약을 놓겠다던 할머니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언제 다시 마음이 돌변해 쥐약을 놓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으냐앙~ 소란 피우기 전에 밥을 내놔라!"

 

고양이를 유해한 것으로 여기는 분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설득하거나 이해를 바라는 건 한계가 분명했다. 봄이 지나면 채소와 농작물이 어느 정도 자랄 테니까 그 때까지만이라도 고양이의 안전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었다. 고양이가 나에게 뇌물을 바쳤듯 나도 어르신들에게 뇌물이라도 바쳐야 하는 건가. 때마침 시골에서 장인어른이 손수 재배한 무공해 표고버섯을 한 박스 보내주었다. 나는 그 중 최고로 좋은 것들을 선별해서 세 봉지로 나눠 담았다. 두 봉지는 옆집 할머니들에게 선물하려는 것이고, 나머지 한 봉지는 전원주택 할머니에게 선물할 생각이었다.

 

모내기가 끝난 무논을 배경으로 마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몽당이.

 

표고를 선물 받은 이웃집 할머니들의 반응은 괜찮은 편이었다. 표고가 동글동글하니 너무 좋다며 흐뭇해 하셨다. 고양이의 안전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고양이가 무탈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컸다. 뇌물의 효과는 있었다. 이웃집에서는 쥐약을 놓는 대신 텃밭에 고양이의 출입을 막기 위한 그물을 둘러쳤다. 그 그물은 작물이 어느 정도 자란 뒤 걷어냈지만, 난 그분들의 아름다운 타협이 고마웠다. 고양이가 밭에 나타나면 여전히 돌멩이를 던지고 고성을 질러 쫓아내기는 했지만,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쓰지 않았던 것이다. 때로는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뇌물이 강한 법인가. 어찌됐든 그렇게 우리집에 오는 고양이는 무탈하게 봄을 났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이란 어쩌면 인간이 배려심을 통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시골고양이에게 가장 위험한 계절은 겨울이 아니라 봄이다. 무사히 봄을 났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한해의 고비를 넘겼다는 얘기다.

 

다리가 유난히 짧은 몽당이 녀석. 밥을 먹고 마당을 가로질러 테라스로 가고 있다.

 

요즘 우리집에 자주 들락거리는 고양이는 세 마리다. 어미 삼색이와 새끼 턱시도 가족과 새로 출현한 고등어 한 마리. 이따금 턱시도 ‘게걸 조로’와 깜찍이 소생인 고등어도 오긴 하지만, 빈도가 낮다. 나는 자주 오는 어미 삼색이에게 ‘몽당’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다리가 짧아서 마치 몽당연필처럼 짜리몽땅하다고 몽당이다. 새끼인 턱시도 녀석은 몽롱이다. 이 녀석은 언제나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약삭빠르게 행동하지만, 아주 가끔 넋을 놓고 먼 산을 구경하거나 몽롱하게 앉아서 꿈을 꾸는 듯한 자세를 취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걸 보는 나조차 몽롱한 꿈을 꾸는 듯하다. 그래서 몽롱이다(몽룡이라고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물이 쳐진 옆집 텃밭 쪽으로 걸어가는 몽당이.

 

한번은 몽당이를 반딧불이로 착각한 적도 있다. 그날의 상황은 이랬다. 멀리 모내기가 끝난 논두렁길에 웬 반딧불이 두 마리가 날아서 우리집 쪽으로 오는 거였다. 그런데 반디치고는 두 불빛이 너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반디치고는 너무 낮게 날고 있었다. 불빛이 우리집에 다 이르러서야 나는 그것이 고양이의 눈빛 광선이란 걸 알았다. 풀쩍 마당 바위로 올라서는 몽당이 녀석. 몽당이가 마당으로 올라오자 언제부터 있었는지 테라스 아래서 냐앙거리며 몽롱이가 뛰쳐나왔다. 몽당이 소생인 몽롱이는 어느 새 제 어미보다 키가 컸지만, 여전히 어미에게는 응석받이를 못벗어났다.

 

옆집과 그 옆집의 아름다운 타협. 고양이에게 쥐약을 놓는 대신 그물로 고양이의 출입을 막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초봄까지만 해도 두 녀석은 항상 같이 와서 밥을 먹고, 같이 떠나곤 했지만, 어느 날부턴가 따로 다니기 시작했다. 몽롱이를 독립시킨 듯 보였다. 한동안 몽롱이는 예전 우리집을 찾아오던 바람이란 고양이가 그랬듯 밥을 먹고 나면 테라스 아래 한참을 앉았다가 낮잠을 자곤 했다. 녀석은 우리집을 아예 자신의 영역으로 삼기로 했는지, 우리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많았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녀석의 모습이 뜸해졌다. 주로 다 저물고 나서야 찾아오곤 했다.

 

어두운 저녁 밥을 먹고 앉아 있는 몽당이와 몽롱이.

 

사실 지난 달 말부터 우리집에는 새로운 손님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낯선 고등어였는데, 녀석은 한밤중이면 집 앞에서 크고 작은 소란을 일으키곤 했다. 내가 볼 때는 턱시도 몽롱이와 영역싸움을 벌이는 듯했다. 결국 지루한 싸움 끝에 녀석은 몽롱이를 물리치고 우리집을 차지한 듯하다. 몽롱이 대신 요즘 이 녀석이 우리집에서 부쩍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어 보인다. 새로 우리집을 접수한 고등어 녀석은 ‘너굴’이다. 너구리처럼 산에서 내려와 떠날 때에도 다시 너구리처럼 산으로 올라가는 녀석. 정말 야생의 산에서 산고양이로 자란 녀석 같았다.

 

요즘 발길이 뜸해진 게걸 조로.

 

다행히도 녀석은 몽당이와 몽롱이를 완전히 쫓아내 얼씬도 못하게 굴지는 않았다. 너굴이의 눈을 피해 몽당이와 몽롱이가 수시로 다녀가는 것을 보면. 그리고 아직도 몽당이 녀석은 너굴이와 마주칠 때면 으르렁거리며 기싸움을 한다. 몽롱이와 너굴이의 싸움은 끝났지만, 몽당이와 너굴이의 밥그릇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다만 밤중이면 이렇게 우리집에서 고양이 싸우는 소리가 나고, 그 때문에 또 다시 옆집 할머니가 뭐라고 한 말씀 하실까봐 그게 걱정이다. 눈치도 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안 싸우는 게 신상에 좋지만, 싸우더라도 좀 살살 싸워라. 옆집 할머니 밤잠 깨우면 골치 아프다. 너희들 싸울 때마다 내가 더 가슴이 조린다. 나도 두발 편히 뻗고 잠 좀 자자꾸나, 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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