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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9 길고양이가 가져온 선물, 놀라운 반전 (77)

길고양이가 가져온 선물, 놀라운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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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산 채로 잡아온 , 날아가다




고양이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종종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기특한 구석이 있는데,
그것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힘들게 사냥한 것들을 선물하곤 하는데,
그것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난감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 선물이란 것이 쥐라던가 새, 혹은 나방이나 벌레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딴에는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잡아온 선물이니만큼
그 선물이 징그럽다고 그 자리에서 집어던지거나 버리게 되면
고양이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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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가 산 채로 잡아온 동고비, 죽다 살아난 녀석이 테라스에 '죽을 똥'까지 쌌다.

지구상의 어떤 동물이 자신을 돌봐주는 이에게 선물을 가져오겠는가.
고양이가 유일하다.
올 봄부터 지금까지 우리집을 찾아오는 길고양이 ‘바람이’는
그동안 꾸준히 내게 급식을 받아온 보답으로
두 번이나 내게 박새 선물을 가져온 적이 있다.
그리고 어제 녀석은 동고비 선물을 가져왔다.
그것도 이번에는 죽이지 않고 산 채로 말이다.
어제 점심 무렵이었다.
갑자기 집안의 고양이 랭보와 랭이가 시끄럽게 캬르르거리고 냥냥거려서
거실로 나가보니
테라스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바람이가 부리나케 도망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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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야, 이번에는 마음에 들길 바래!" 테라스 끝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는 바람이 녀석.

“저 녀석이 또 왜 저러지...”
바람이가 사라진 뒤에도 랭보와 랭이의 울음소리는 계속되었다.
녀석들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실 창문 아래 테라스를 보니 동고비 한 마리가 놓여 있는 것이었다.
“아, 이 녀석 또 새를 잡아왔네....!”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잠시 기절했던 동고비가 고개를 털고 슬금슬금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한동안 정신을 못차리겠다는듯
동공이 풀린 채로 한참이나 거실 창문 안쪽의 고양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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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 앉아서 어리둥절,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동고비. 그것을 거실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랭보와 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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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실 창문을 열고 나가 카메라를 바짝 대고 찰칵거리는데도
녀석은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멀뚱멀뚱 좌우만 두리번거리는 거였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바람이는 새를 산 채로 잡아온 걸까?
내 추측은 이렇다.
그동안 두 번이나 녀석은 내게 박새를 선물했는데,
두 번 다 나는 녀석이 준 선물을 마당 옆 야산에 파묻어주었다.
물론 내 딴에는 바람이가 보이지 않을 때 몰래 파묻어준다고 신경을 썼는데,
아마도 바람이는 어디선가 이 모습을 지켜보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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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못차린 동고비, 바로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찰칵거리는데도 녀석은 한동안 좌우만 두리번거릴 뿐, 날아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바람이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저 사람은 죽은 새는 별로 안좋아하나봐!”
그래서 이번에는 명줄을 끊지 않고, 잠시 기절시켜 산 채로 선물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고양이에게 쥐를 여러 번 선물받은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죽여서, 두 번째는 기절만 시켜서 산 채로, 세 번째는 꼬리만 잘라가지고...
하는 식으로 각각 다르게 가져오더라는 것이다.
가져온 선물을 징그럽다고 그냥 버리니까
고양이는 주인의 취향을 고려해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했던 셈이다.
그러니까 바람이도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강구한 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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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녀석을 날려보내기 위해 손 위에 올려놓자 녀석은 푸드덕 날개를 털고 마당가 소나무 가지로 날아갔다.

그러나 이건 내 생각일 뿐,
바람이는 이 녀석을 죽였다고 여기고 이곳에 던져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잠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동고비가 살아난 게 아닌가.
이쪽이든 저쪽이든 녀석의 마음이 가상하기는 하나
고양이의 이런 선물이 마음 편치만은 않다.
나는 우선 바람이가 있는지 없는지, 테라스 아래를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바람이는 그곳에 없었다.
이제 바람이 몰래 선물을 처리해야 할 순간이다.
나는 새를 살려보내기 위해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손으로 그것을 잡아 다른 손에 올려놓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녀석이 푸드덕 날개를 털더니 마당가 소나무 위로 날아가는 게 아닌가.
이제야 녀석은 정신이 번쩍 든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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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볏단을 깔고 앉아 조는 바람이(위). 어디로 갔나 안보인다 했더니 이 녀석 논배미로 내려가 짚단을 깔고 앉아 있었다. 슬금슬금 다시 우리집을 향해 올라오는 바람이 녀석(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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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가지로 날아간 동고비는 그래도 몸이 온전치가 않은지
한동안 가지 위를 왔다갔다 하며 몸을 추스렸다.
그리고 이내 포릉포릉 야산의 단풍나무 위로 날아갔다.
어쩌면 이 장면을 바람이가 어디선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녀석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저런 바보! 산 채로 잡아다줘도 그걸 마다하네...쩝!”
“바람아! 이런 선물은 필요없단다.
이런 선물 없어도 언제든지 너의 밥은 내가 책임질 테니
앞으로는 절대로 그러지 말아라, 알았지?“
바람이가 나타나면 나는 그렇게 말해줄 작정이다.
이래저래 바람이에게 잡혀온 동고비는 천신만고 살아서 돌아갔다.
다행이다.
“새들아, 앞으로는 고양이 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그나저나 바람이는 왜 자꾸 새 선물을 가져오는 걸까?

* 위 사진 속의 새는 박새가 아니라 동고비이므로 '동고비'로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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