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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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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놀러 오세요”-두미도


두미도 두남분교 3학년 설경이가 그린 "우리 마을에 놀러 오세요" 그림.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 두 번 운행하는 완행선을 타고 두미도로 간다. 통영에 숱하게 많은 섬이 있지만, 아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드문 섬이 바로 두미도다. 지도상으로는 뭍과의 거리가 욕지도와 비슷한데, 배는 욕지도 인근의 연화도, 우도, 납도, 노대도를 다 돌아 두미도에 도착하므로 때때로 완행선은 3시간씩이나 걸린다. 하지만 3시간 가까운 뱃길은 통영 앞바다의 새떼처럼 흩어진 섬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지루할 새가 없다.


두미도 구전마을 동백숲에서 바라본 동백꽃과 바다를 가르며 지나가는 여객선.

오랜 뱃길을 달려 도착한 두미도 구전마을 선착장은 심심할 정도로 한가했다. 사람도 없고 어선도 몇 척 보이지 않는다. 무서울 정도로 적막한 섬. 선착장에서 마을로 오르는 길목의 손바닥만한 뙈기밭엔 유채꽃이 한창이다. 마을로 올라서면 해풍을 막아주듯 들어선 동백숲이 길을 따라 펼쳐져 있다. 이 곳의 동백은 상당수가 수령 수백년은 족히 되는 묵은 동백들이다. 나무마다 검붉은 동백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고, 바닥에는 떨어진 동백꽃으로 눈이 부시다.


유난히 빛깔이 곱고 짙으며, 윤기가 자르르한 두미도 동백.

두미도의 동백은 빛깔이 유난히 곱고 진하며, 약간 검붉은색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특징이다. 두미도에서는 청석마을에서 수백년 된 흰동백도 만날 수 있는데, 사실 토종 흰동백은 거문도와 보길도를 비롯해 몇몇 곳에만 남아 있는 희귀한 수종이다. 더욱이 수령이 수백년 된 흰동백은 귀하디 귀한 것이지만, 이 동백은 아직까지 외부에 전혀 알려진 적이 없다.


두미도의 청정바다, 청정 갈매기.

두미남구 구전마을은 20가구가 조금 넘는 아담한 포구마을이다. 구전마을에서는 저녁이 너무 일찍 찾아온다. 마을이 동남쪽에 위치한데다 바로 뒷산이 경남의 섬에서는 가장 높은 해발 467미터의 가파른 천황봉이 솟아 있어 봄철인데도 오후 4시가 되면 해가 넘어간다. 두미도는 두미남구와 두미북구로 나뉘는데, 남구에는 구전, 청석, 대판마을이 있고, 북구에는 사동, 학리, 고운, 설풍마을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남구 구전마을과 북구 학리에 모여산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두미도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볼 때 용의 머리와 꼬리만 있는 형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섬의 어디가 꼬리고, 어디가 머리인지 몰라서 두미도라고 했다는 말도 전해온다.


여객선에서 바라본 두미도 구전마을 풍경.

섬치고는 제법 높은 봉우리 아래 마을이 있다 보니, 구전마을은 집이고 밭이고 모든 게 층층이 계단식으로 조성돼 있다. 해가 넘어가기 무섭게 구전마을에는 한집 두집 저녁 연기가 피어오른다. 저녁이 다 돼 찾아 들어간 김시매 할머니 댁도 마침 할머니가 부엌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 방금 들에 나갔다 왔는지 봉당마루에 내놓은 바구니에는 봄내 나는 쑥이 한가득이다. 부엌문 옆 벽에는 조리며 체, 생선발이 걸려 있고, 마루에는 오래 되어 낡았으나 살무늬가 선명한 떡살이 바가지에 담겨 있다.


김시매 할머니댁 부엌의 기름병과 촛병(위). 할머니가 저녁 불을 때고 있다(아래).

안방을 열어보니 방안에는 할머니가 시집올 때 해 왔다는 경첩장이 옛빛을 머금고 들어앉아 있다. 그리고 아랫목 벽에는 눈에 띄는 무언가가 걸려 있었는데, 성주였다. 누렇게 색이 바랬으나 한지 오라기로 꾸민 신체가 고스란히 남은 성주였다. 오라기의 모양은 중간중간 나뭇잎을 매단 듯 꾸몄고, 오라기를 들추자 안에는 잘 접은 한지묶음이 걸려 있었다. 불을 다 때고 나자 할머니는 마루에 걸터앉아 쑥을 다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쑥된장국이나 쑥버무리라도 하실 모양이다.

 
봄쑥을 담아놓은 쑥바구니(위)와 아직도 보관해오고 있는 성주 신체(아래).

이튿날은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마을 뒷산에 올랐다. 멀리 옅은 해무를 헤치고 불덩이같은 아침 해가 솟아오르는데, 부지런한 어부들은 이미 어선을 부려 황금빛 아침바다를 가르며 출어에 나서고 있다. 포구에서 만난 한 어부에 따르면 두미도에서는 봄이면 가오리, 도다리, 광어, 돔이 많이 잡히고, 여름과 가을에는 서대, 갈치, 갑오징어, 겨울에는 물매기, 대구가 많이 올라온다고 한다. 문어는 1년 열두달이 흔하단다. 섬 주변이 온통 물고기밭이어서 바다 낚시꾼들에게는 두미도가 숨겨놓고 싶은 비밀장소라고 한다. 하지만 두미도의 어부는 많지가 않다. 젊은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두미분교 수요일 야외학습에서 만난 도롱뇽 알. 알 속에 새끼 도롱뇽이 가득 들어 있다.

구전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두남분교로 간다. 학생 2명에 선생님 한 분. 교실에는 “우리 마을에 놀러 오세요”란 제목의 그림이 쓸쓸하게 걸려 있다. 혼자 교무실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불쑥 나타난 손님에게 친절하게 모닝커피를 타다 내민다. 진해가 고향인 그는 일주일에 한번 집에 다녀온다고 한다. 올해로 도서지역 근무가 3년째란다. “섬에 아이들이 없으면 생기 없는 섬이 돼 버려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로 섬은 생동감이 넘치죠. 여기서는 토요일 오전까지는 내내 아이들하고 생활해요. 심심할 것같아도 가끔씩 아이들 데리고 야외학습도 하고, 수요일이면 야생화 탐사에 생태답사도 나갑니다. 오늘이 수요일이니 아이들 오면 같이 한번 둘러봅시다.”


두미분교 3학년생 설경이가 길가에 무리지어 핀 산자고 꽃을 가리키고 있다.

아이들이 등교하자 곧바로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생태답사에 나섰다. 구전마을에서 사동으로 이어진 길에서 만난 한 우물에는 도롱뇽 알이 그득했고, 벌써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몇 마리 헤엄치고 있었다. 동백꽃 터널을 지나자 길가 수풀과 비탈에 온통 햐얀 산자고꽃이 피었다. 한두 곳이 아니라 아예 군락을 이루어 산자고밭이나 다름없는 풍경이다.


빈집이 수두룩하게 남은 사동마을 풍경. 사람이 떠나 마을 전체가 텅텅 비었다. 이것의 섬마을의 현실이다.
 

산자고를 처음 보기도 했거니와 이렇게 대규모 군락지도 처음이다. 무려 100여 미터에 걸쳐 산자고 군락은 드문드문 밭을 이루고 있었다. 조금 더 산길을 타고 올라가자 이번에는 노루귀밭이 나왔다. 흰노루귀 군락 사이로 몇몇 송이는 분홍색 꽃이 피었다. 사동 인근에 이르러 선생님과 두 명의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고 나는 내친 김에 산길을 넘어 학리까지 넘어가기로 한다.


학리마을에서 만난 빨랫줄에 메주를 매달아놓은 풍경.

길 아래로는 이미 사람들이 다 떠난 빈집들이 수두룩하다. 주인이 버리고 간 복사꽃이며 살구꽃은 무너진 담벼락 틈새에서, 폐허가 된 장독대 옆에서 보란 듯이 꽃을 피우고 있다. 고요하고 외로운 길을 넘어가면 이제 학리마을이 보기좋게 펼쳐진다. 학리에는 두미도에서 가장 많은 30여 가구의 주민이 살고 있다. 포구도 구전마을보다 훨씬 크고, 마을의 터도 훨씬 넓다. 학리의 집들도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조성돼 있는데, 구전마을보다는 경사가 훨씬 완만하다.


학리마을 선착장. 물빛이 곱다.

민박집을 운영하며 낚시꾼을 실어나르는 곽창평 씨는 섬 곳곳에 비경이 숨어 있는 두미도를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두미도의 비경은 배를 타고 해안을 한 바퀴 돌아봐야만 알 수 있다는 말도 했다. 두미도에서는 고운, 설풍, 덕동, 대판마을과 같은 외딴 바닷가 마을로 가려면 배를 타는 게 가장 편하고 빠른 방법이다. 사실 이 마을들은 두미도의 비경처럼 꼭꼭 숨겨져 있다.


가마우지가 내려앉은 청석마을 인근의 얼굴바위.

두미도 해안을 배로 한 바퀴 돌다 보면, 곽씨의 말처럼 천혜의 풍경을 자랑하는 해식동굴과 기묘한 바위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고, 절경의 해벽을 차지한 가마우지 서식처도 덤으로 구경할 수 있다. 특히 청석마을 인근에서 만나는 얼굴바위는 아이가 입을 벌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신기한 모습이다. 하지만 웃고 있는 얼굴바위와는 다르게 두미도는 너무나 외롭고, 너무나 적막할 따름이다.


두미도의 아침. 아침 바다를 가로지르는 고깃배 한 척.

<여행정보>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1일 2회(06:30, 14:00) 완행선을 운항한다. 배편문의: 통영여객선터미널 055-642-0116, 641-0313, 645-3717, 민박집 구전마을 심태근 씨 642-6789, 010-6325-9721, 학리 곽창평 씨 011-554-3722, 두미도 어촌계 644-9273.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 스크랩은 여기서:: http://blog.daum.net/bink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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