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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1 사라져가는 우리 방앗간 풍경들 (8)

사라져가는 우리 방앗간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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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우리 방앗간 풍경들



덕항산 자락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그 병풍 속에 폭 잠긴 삼척 땅 대이리를 따라 오르다보면, 개천가에 굴피옷을 해입은 고깔 모양의 통방앗간을 한 채 만나게 된다.

물방아, 물통방아, 벼락방아라고도 불리는 이 통방아는 100여 년 전 마을의 공동 방앗간으로 만들어진 것
이란다. 통방아의 주요 시설은 확(곡식을 찧는 돌통)과 공이, 물받이로 되어 있는데, 물받이(물통)에 물이 담기면 그 무게로 공이가 올라가고 물이 쏟아지면 공이가 떨어져 방아를 찧게 되는 원리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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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대이리에 남아 있는 굴피 통방아.

이런 통방아는 삼척 신리에서도 만날 수가 있었다. 대이리 통방아와 모양과 원리는 같지만, 지붕이 겨릅(삼대)으로 되어 있는 점이 달랐다. 이 곳 방아의 길이는 5미터, 무게는 2톤 정도, 3분에 약 일곱 번 정도 공이가 오르내릴 수 있어 수량이 많으면 하루 벼 두 가마니는 찧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형이 잘 보존되었던 이 겨릅 통방아는 수년 전 사라지고 말았다. 통방아가 물받이에 물을 받아 그것이 쏟아지는 힘으로 방아를 찧는 것이라면, 물레방아는 말 그대로 물레바퀴가 도는 힘(물레에 굴대를 끼우고 방아채와 연결해 물레가 돌 때마다 자동으로 공이가 들렸다 떨어지게 만들었다)을 이용해 방아를 찧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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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신리에서 볼 수 있는 너와집 물레방아.

정선군 동면 백전리에 아직도 이 물레방아가 남아 있는데, 이 곳의 물레방아 역시 100여 년 전 이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방아를 찧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이 물레방아는 단지 전시용이 아니라 실제로 마을 사람들이 쌀이며 보리를 찧어 먹고, 고추와 메밀까지 빻아 먹던 것이었다. 그러나 사용이 뜸해지고 고장까지 나면서 지금과 같은 전시용 물레방아가 되고 말았다. 삼척 신리에 있는 너와집 물레방아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있지만, 지금은 전시용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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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문화재단지에 전시된 연자맷간.

한편 물의 힘을 이용하는 통방아와 물레방아와는 달리 연자방아는 소나 말의 힘을 빌어 방아를 찧었다. 정미소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웬만한 마을마다 하나씩은 두었던 것이 연자방아였다. 지금은 사용을 하지 않지만, 서울에서 가까운 하남시 상사창동에도 과거 연자방아를 두고 마소를 이용해 방아를 찧던 연자맷간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사실 전시용 연자방아는 흔해도 연자맷간이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 곳의 맷간은 8각형의 초가 정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1930년대에 마을 공동 방앗간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연자방아는 연자매, 또는 돌매방아, 말방아(제주도)라고도 불렀으며, 그 구조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원형의 윗돌(숫돌)과 둥글고 판판한 받침돌(암돌), 사각의 나무로 된 방아틀로 되어 있다. 연자방아 또한 다른 방아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눈요기로나 거들떠보는 신세가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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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안도전 마을에서는 아직도 디딜방아로 방아를 찧는다.

그나마 요즘에도 더러 사용하는 방아가 디딜방아다. 발로 밟아 방아를 찧기 때문에 발방아라고도 불리는 디딜방아는 쌀과 보리 등의 곡물을 찧는 것은 물론 메주와 고추도 찧고, 도토리 껍질을 벗기는 데까지 썼지만, 반드시 두 명 이상의 힘을 부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옛날에는 방아다리가 하나인 외다리방아도 더러 있었다고 하는데, 근래까지 남아 있는 디딜방아는 대부분 양다리방아이다. 이 양다리방아는 디딜방아가 분포하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만이 썼던 유일한 방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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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마을의 초가 디딜방앗간 풍경.

디딜방아는 크게 방아채와 공이, 확으로 구분되며, 공이는 나무공이와 돌공이, 우둘투둘한 쇠통을 단 쇠공이가 있었다. 그리고 방앗간 천장에는 줄을 매달아 놓았는데, 이 줄은 방아를 디딜 때 발힘을 한 곳으로 모으고, 좀더 쉽게 디딤질을 하도록 돕는 노릇을 했다. 오랜 옛날 방아는 절구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곡물을 찧는 도구만은 아니었다. 민간에서는 방아가 사방의 잡귀를 쫓는 주력의 상징으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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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양지한덤 마을의 쓸모 다한 디딜방아.

또 음식을 주관하는 여인네의 방아찧기는 곧 출산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방아가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특히 사방의 잡귀를 쫓는다는 디딜방아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 전염병이 돌거나 가뭄이 들었을 때 이웃에서 훔쳐온 디딜방아를 마을 어귀에 세워놓고 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토록 신성한 것이 방아였건만, 이제는 그 소용이 다하면서 방아의 신성성도 함께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렸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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