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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9 언니에게 신세 좀 질게요 (19)

언니에게 신세 좀 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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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에게 신세 질게요




올해 초 어미를 잃고 한동안 두려움 속에서 살았던
당돌이와 순둥이는 이제 어엿한 성묘가 되었다.
수줍음 많고 경계심이 심했던 순둥이도 지난 초여름에 아기고양이를 낳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녀석이 낳은 아기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어디에 꽁꽁 숨겨둔 것인지,
아니면 어미를 닮아 아기고양이들도 겁이 많아 한낮에 나오는 것을 꺼리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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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네 둥지 앞에 앉아 있는 당돌이. 여울이네 아기고양이들에게 당돌이는 삼촌냥이가 된다. 커갈수록 어미인 까뮈를 너무 닮았다.

순둥이는 요즘 예전과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 순둥이는 대범하고 용감했던 당돌이에 비해 소심하고 경계심이 심해서
언제나 뒷전에 앉아 눈치만 보던 녀석이었다.
하지만 어미가 된 뒤로는
당돌이 못지않게 씩씩해졌다.
내가 사료 배달을 가면 혼자서는 절대로 앞에 나서지 못했던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스스럼없이 내 앞으로 나와서 밥을 내놓으라고 가장 먼저 으냐앙거리는 것이다.
새끼를 거느린 어미로 살자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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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여일 전, 골목의 공터 급식소 차 밑에 앉아 있던 당돌이와 순둥이 남매. 이곳은 바로 앞에 개 두 마리를 묶어놓는 바람에 잠시 휴업 상태다. 과거 당순 남매와 여울이, 승냥이가 치열한 영역다툼을 벌이던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반대로 당돌이는 세상이 무섭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 당돌한 기세가 한풀 꺾였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바로 1미터 앞에서 밥 달라고 하던 녀석이
이제는 멀찌감치 떨어져 눈치를 본다.
도대체 남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 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지난 초여름 여울이가 새끼를 낳고 얼마 뒤 순둥이도 출산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순둥이는 안전한 산실을 마련하기 위해 둥지를 옮겼다.
매일같이 당돌이와 붙어다니다가 당돌이 곁에서 잠시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순둥이가 당돌이 관할 영역을 아주 떠난 것은 아니어서
늘 밥을 먹던 급식소에는 빠짐없이 나타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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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달 전 까뮈가 물려준 영역에서 만났던 당돌이와 순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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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과거에는 사료 배달을 가면 둘이 동시에 나타났지만,
순둥이가 둥지를 옮긴 뒤로는 당돌이가 먼저 모습을 보이고,
한참 후에야 순둥이가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런데 약 한달 전쯤 이 골목의 급식소에 문제가 생겼다.
텃밭에 쥐약을 놓겠다고 협박했던 아줌마가
이 급식소 앞에 두 마리의 커다란 개를 묶어놓은 것이다.
묶여 있을지언정 으르렁거리는 개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밥을 먹는
강심장 고양이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곳에 내가 사료 배달을 오고
그로 인해 고양이가 꼬인다고 여긴 아줌마가 무언의 경고를 보내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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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이와 순둥이의 영역은 아직 온전하지만, 무슨 일인지 당돌이와 순둥이는 최근에 여울이네 둥지에서 임시 기거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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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이 공터 급식소에는 순둥이도 당돌이도 오지 않고,
여울이와 승냥이, 왕초고양이조차 오지 않는 황량한 곳이 되었다.
한동안 나는 당돌이와 순둥이를 만날 수가 없었다.
녀석들을 다시 만난 건 약 열흘 전 쯤이다.
여울이가 새끼를 낳아 기르던 판잣집 둥지에서 두 녀석이 함께 걸어나왔다.
여울이네가 잠시 거처를 주황대문집 인근으로 옮기긴 했으나,
밤중에는 이곳을 여전히 보금자리로 삼고 있었다.
보아하니 여울이와 아기고양이들도 당돌이와 순둥이를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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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영역인 골목을 당당하게 걸어 여울이네 둥지 앞 차 밑에 눈치 보며 앉아 있는 당돌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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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순둥이와 당돌이, 여울이는 모두 까뮈의 자식들이다.
여울이가 윗배에서 태어난 언니인 셈이다.
하지만 당돌이는 여울이가 임신을 하고 있을 때
한 핏줄인 누나를 경계하고 쫓아내기까지 했었다.
길고양이의 세계에서는 윗배 아랫배 형제들이 둥지를 옮겨 낳는 탓에
몰라보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그러나 당돌이와 순둥이는 아기고양이 시절 여울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무척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당돌이는 여울이를 쫓아내곤 했었는데,
여울이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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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에 앉아서 여울이가 낳은 조카냥이들을 바라보는 당돌이.

당돌이와 순둥이, 두 동생이 둥지로 찾아오자 기꺼이 녀석들을 이곳에 머물게 했다.
거의 열흘 전부터 지금까지도 당순 남매는 이곳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기고만장하던 당돌이가 여울이 누나의 눈치를 살살 보는 형편이다.
여울이는 별로 신경도 안쓰는 것 같은데...
새끼를 낳아본, 같은 입장이 된 순둥이를 여울이는 더 안쓰러워했던 것같다.
내가 캔밥이라도 배달하면
순둥이와 아기고양이들이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것을
여울이는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만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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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둥이는 지난 초여름에 아기고양이를 낳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까지 순둥이의 아가들을 만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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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이만이 이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당돌이와 순둥이는 왜 이곳으로 다시 왔을까?
두 녀석이 다시 떠돌이 고양이가 된 걸까?
아니면 공터 급식소가 문을 닫아 임시로 이곳에 머무는 것일까?
지난 해 가을 자신들이 태어난 폐가는 철거가 되어
지금은 옥수수와 고구마와 고추가 넘실대는 밭이 되었다.
그 밭을 오가며 당돌이와 순둥이는 열흘째 여울이에게 의지하고 있다.
아기고양이 여섯 마리에다 동생들 두 마리까지
이래저래 여울이의 어깨만 더욱 무거워졌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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