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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9 가장 외딴 오지마을 봉산리의 겨울 (6)

가장 외딴 오지마을 봉산리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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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외딴 오지마을 봉산리의 겨울



발왕재에서 바라본 주변 산자락의 눈꽃과 골격이 드러난 골짜기 풍경.

 

폭설 그친 산중에 새소리 그득하다. 귓속에 새소리 그득 담고, 푹푹 빠지는 눈길을 달려 발왕재를 넘는다. 눈이 내리고 나면, 산중에 푹 파묻힌 봉산리 사람 말고는 아무도 이 고갯길을 넘지 않는다. 약 60여 리에 이르는 발왕재 고갯길은 여전히 포장이 안된 천연한 두메길인데다 겨울에는 길의 우묵한 곳마다 잔설이 수북히 쌓여 승용차가 넘기에는 대책없이 벅찬 길이다. 오랜 옛날에는 정선의 구절리 사람들도 팍팍하게 이 길을 넘어 평창의 진부장을 보러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봉산리 주민 아니면 웬만해선 발왕재를 넘지 않는다.



오소리인지 너구리인지 알 수 없는 발자취가 발왕재 눈밭에 찍혀 있다. 

 

구불구불 발왕재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계곡에 드문드문 집이 들어앉아 있다. 어떤 집에서는 구름같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떤 집에서는 장작 패는 소리가 들려온다. 봉산리는 박지산(1391)과 발왕산(1458), 두루봉(1226) 등의 고봉에 둘러싸인 그야말로 첩첩산중 두메골짝이다. 내가 만난 가장 외딴 오지마을. 10여 년 전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와 지금의 봉산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워낙에 깊은 산중이어서 애당초 달라질만한 것이 있지도 않다. 다만 빈집은 더욱 늘어서 조금 더 쓸쓸해졌고, 조금 더 적막해졌다.



발왕재 넘어가 만난 오지마을 봉산리의 눈을 푹 뒤집어쓴 투방집.

 

봉산리에서 들리는 소음이라고는 개 짖는 소리가 유일하다. 이따금 꿩이 마을로 내려왔다 개 짖는 소리에 놀라 꿩꿩거리며 날아간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도 도대체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본래 봉산리의 집은 10여 채도 되지 않지만, 그마저 절반쯤은 빈집으로 남았고, 나머지 집마저 농사철에 들어와 살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간 터라 겨울에는 고작해야 서너 가구만이 봉산리를 지킨다. 이들이 겨울에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폭설이 내릴 때마다 봉산리가 고립마을이 되기 때문이고, 워낙에 높은 곳이라 겨울 혹한이 제법 가혹하기 때문이다.

 


봉산리에서 만난 권분하 할머니가 장작을 옮기고 있다(위). 할머니가 사는 집 위에 빼곡하게 들어선 토종벌통의 겨울나기(아래).

 

무엇보다 이제는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 외로움을 견디기도 어렵다. 덩달아 그런 마을을 둘러보는 내 마음도 편치는 않다. 마을을 한 바퀴 다 돌고서야 겨우 노인 내외분을 만났다. 권분하 할머니(74)와 최양순 할아버지(80)다. 노부부는 쓸쓸하고 적막해도 그냥 여기에 산다. 봄에는 토종벌을 치고, 여름에는 당귀밭을 가꾸며 그냥 그렇게 산다. 겨울이면 장작을 패고 군불을 때면서 치지직거리는 TV 연속극을 보며 산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 왔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몸이 불편한 최양순 할아버지가 땔감용 장작을 옮기기 위해 지게를 지고 나선다.

 

예전과 다름없이 봉산리의 집들은 여전히 함석을 얹어놓은 ‘흙집’ 아니면 ‘투방집’(귀틀집)이지만, 어떤 집은 돌보지 않아서 벽체가 무너지고 서까래가 내려앉았다. 첩첩산중 두메마을에서 이런 풍경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고향은 늙었고, 어딘가 한 군데씩은 무너져 있다. 함석으로 대충 속내를 가린 당집도 이제는 볼품이 없다. 그래도 당집 안에는 여전히 명주실 두 타래와 창호지를 여러 묶음 늘어뜨려 서낭신의 신체를 꾸며놓았다. 수령 수백 년이 넘는다는 전나무 서낭도 변함없이 강건하게 신령한 기운을 품고 있다.

 


발왕재 고갯마루에 두텁게 쌓인 눈더미를 세찬 바람이 쓸어가고 있다. 바람에 쓸려가는 눈 알갱이가 다 보인다.

 

이 곳의 전나무 서낭은 평창 신기리 쪽에서 오자면 봉산리의 끝이고, 정선 구절리 쪽에서 오자면 봉산리의 처음이다. 서낭당을 지나면 곧바로 구절리로 내려가는 은밀한 길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한여름 장마철이면 계곡물이 불어나 이 길은 수시로 끊기지만, 다행히 지금은 겨울이어서 음지에 쌓인 눈더미만 조심하면 된다. 처음 고갯마루를 오를 때와 지금 계곡을 내려갈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올라오는 길은 산 아래 풍경이 내려다보이고 훤히 하늘이 트인 곳이지만, 내려가는 길은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이 하늘을 가로막고 있어 한낮에도 어둑하고 으슥하다. 이따금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만 계곡에 가득하다.

 


발왕재에서 봉산리 가는 길에 만난 눈밭 위의 토끼 한 마리.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해가 떨어져서 벌써 계곡의 숲은 컴컴한 밤중이다. 한참을 내려가도 정선쪽 구절리가 보이지 않는다. 상자개에서 두어 채의 집을 만나고, 하자개에 이르러서야 길은 산을 거의 내려와 포장도로를 만났다. 진부읍 신기리에서 봉산리까지가 30리요, 봉산리에서 하자개까지가 다시 30리다. 아침에 봉산리에 올랐다가 구절리에 내려오니 저녁이 다 되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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