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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6 로키산맥에서 만난 야생동물들 (11)

로키산맥에서 만난 야생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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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산맥에서 만난 야생동물


나는 로키산맥에 자리한 캐나다의 밴프와 재스퍼에서 실로 무수한 야생동물을 만났다. 인디언어로 ‘영혼의 호수’를 뜻하는 밴프의 미네완카(Minnewanka) 호수에서는 큰뿔산양을 만났는데, 녀석은 마치 영혼을 갈무리하는 수도승처럼 길가 바위에 앉아서 고요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녀석은 호숫가로 내려가 새로 돋은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었다. 10미터쯤 내가 접근해도 녀석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일찍이 동물이 사람을 봐도 본체만체 하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녀석에게는 사람이 그저 또 다른 동물일 뿐이었다. 얼마나 행복한 풍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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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프 인근 투잭 호수에서 만난 두 마리의 큰뿔산양. 내가 10미터까지 접근해 사진을 찍어도 경계하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는 길을 달리다보면 중간중간 비상등을 켜놓은 채 정차한 차들을 볼 수가 있는데, 이 차들은 십중팔구 도로에서 야생동물을 만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동물이 길을 비킬 때까지 이 차들은 마냥 기다린다. 누구도 동물에게 클랙션을 누르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탔던 버스도 도로가에 나온 큰뿔산양이 벗어날 때까지 15분쯤을 기다린 적이 있다. 재스퍼에서도 나는 다운타운의 집 앞을 서성이며 풀을 뜯고 있는 귀가 유난히 긴 뮬 사슴을 보았다. 녀석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에도 아랑곳없이 풀 뜯어먹는 일에만 열중했다. 내가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자 어디 찍어보라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재스퍼 외곽의 보베르 호수 가는 길에는 수십 마리의 엘크떼도 만났다. 내가 야생동물만 보면 흥분하니까 함께 한 가이드는 동물만 나타나면 이제는 알아서 차를 세워주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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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호수' 미네완카에서 만난 큰뿔산양. 마치 수도승처럼 앉아 있다.

그나저나 캐나다에 온 뒤로 닷새가 지나도록 나는 한번도 곰을 만난 적이 없다. 그렇게 흔하게 만나는 것이 곰이라면서 아직도 나는 곰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도대체 곰을 볼 수가 없군요!” 슬픈듯이 내가 말하자 가이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내가 지금 곰을 깨워서 데려올 테니까!" 물론 농담이다. 곰은 아직도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농담도 덧붙였다. “곰을 지금 깨우는 것은 11시에 잠든 나를 3시에 깨우는 것과 같아요!" 재치있는 비유였다. 사실 여름이나 가을이면 캐나다에서 회색곰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볼 수 있다고 꼭 좋아할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곰에게 사람이 희생당하는 불상사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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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보베르 호숫가에서 만난 엘크떼.

따라서 여름과 가을에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3명 이상 다녀야 하며, 반드시 ‘비어벨'을 들고 다녀야 한다. 만일 곰이 나타날 경우 벨을 흔들어 쫓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곰도 사람을 경계하여 멀리 사람이 보일 경우 어느 정도 일정한 거리를 두지만, 자칫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날 경우 곰 또한 놀라서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로키스에 인접한 다운타운에서는 집이나 도로에도 흔하게 곰이 나타난다. 마을에 곰이 나타난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로키의 작은 도시에서는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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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외곽에서 만난 뮬 사슴.

실제로 동행한 가이드는 이런 믿을 수 없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가든에서 바비큐를 구우며 잔뜩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어슬렁어슬렁 회색곰 한 마리가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고기 굽는 냄새가 회색곰의 식욕을 자극했던 것이다. 물론 빙 둘러앉아 바비큐가 익기를 기다리던 식객들은 집안으로 피신해버렸고, 회색곰은 오랜만에 인간이 차려준 바비큐 식사를 맛있게 해치운 뒤, 어슬렁어슬렁 가든을 떠났다는 것이다.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밴프나 재스퍼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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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프의 한 공원에서 만난 회색 다람쥐. 이곳의 다람쥐들은 3미터까지 접근해도 도망가지 않는다.

캐나디안 로키스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야생동물을 만났다. 밴프에서는 큰뿔산양을 열 댓 마리쯤 보았고, 다람쥐는 20여 마리가 넘었으며, 뱃가죽이 붉은 라빈이라는 새와 캐나다 거위와 핀치로 보이는 작은 새도 보았다. 레이크루이스에서는 차창을 통해 멀리 흰산염소를 보았고, 북방 까마귀와 뮬 사슴을 보았다. 재스퍼에서는 다운타운에서도 뮬 사슴을 보았고, 모두 10여 마리 이상의 뮬 사슴과 엘크떼와 코요테와 딱따구리를 보았다. 그러나 끝내 나는 회색곰은 만나지 못한 채 재스퍼에서 밴쿠버로 오는 대륙횡단열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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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프 인근 케이브&베이신 유황온천의 뜨뜻미지근한 이 온천수 속에는 캐나다에서 가장 희귀하다는 동굴 달팽이가 살고 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회색곰을 보고야 말았다. 횡단열차 속에서 무심히 창밖을 보고 있는데, 강 저편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회색곰이었다. 녀석은 강물에 발목을 담그고 열심히 물고기 사냥을 하는 중이었다. 누군가 새벽 3시에 일부러 회색곰의 잠을 깨운 것은 아닌지. 나는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이 곳에서 보았고, 심지어 심통이 났다. 도대체 이 대단한 대자연이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는가. 자연이란 손 대지 않았을 때만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부러 공원을 만들고, 동물원을 만들고, 식물원을 만드는 것은 순전히 이 땅의 주인 노릇을 하려는 인간의 욕심과 눈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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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인근 패트리샤 호숫가의 사시나무 군락. 인디언어로 사시나무는 '스퀄스텅' 즉 '인디언 여자의 혓바닥'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사시나무를 잘 보면 여기저기 발톱에 긁힌 자국이 보이는데, 이것들이 모두 회색곰의 발톱자국이다.

지구상 생명체의 대부분은 산업혁명 이후인 최근 100여 년 동안에 사라졌다. 이제껏 인간이 지구에서 한 일이라고는 화석연료를 불태우거나 전쟁을 일으켜 이 땅의 날것들을 죽이고,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켜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킨 것밖엔 없다. 대량생산에 대량소비를 함으로써 이 땅을 대량폐기장으로 만들어놓은 것밖엔 없다. 최근 영국의 한 과학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2100년 이후에는 지구에서 인간이 살만한 공간은 남극밖엔 남지 않을 것이라고.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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