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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5 지리산 둘레길 10시간을 걷다 (13)

지리산 둘레길 10시간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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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10시간을 걷다




흔히 지리산 하면 종주산행이나 등산을 생각할 때가 많고,

실제로 지리산을 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천왕봉이나 노고단과 같은 등산을 통한 정상 정복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등산이라는 수직적 산행은

어쩔 수 없이 국립공원인 지리산을 직접적으로 훼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리산 국립공원의 바깥 테두리를 한 바퀴 도는 수평적 산행은 어떨까.

말하자면 ‘걸어서 지리산 한 바퀴’.



벽송사에서 송대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호젓한 산길(위). 남원과 함양의 경계를 나누는 등구재를 넘어가 만난 창원마을에서 본 지리산 풍경(아래).


산림청에서는 지리산에 대한 정상 정복 위주의 등산형태를 개선하고

보행과 체험 중심의 산행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단법인 '숲길'과 함께 오는 2011년까지

지리산을 둘러싼 5개 시·군을 통과하는

300㎞ 길이의 '환지리산 트레일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걸어서 지리산을 한 바퀴 도는 이 ‘지리산 둘레길’ 조성은

지리산의 생태·역사·문화자원을 체험하는 새로운 개념의 트레일 조성사업이다.

이 둘레길은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옛길과

마을과 마을, 마을과 절집, 마을과 고개를 이어주던

마을길, 고갯길, 오솔길, 숲길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민속, 문화적으로도 매우 의의가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황마을에서 만난 고양이 한 마리. 내가 키우고 있는 길고양이 출신 랭보와 너무 닮았다.

사실 지금의 지리산 주변의 옛길과 숲길은 상당수가

억새와 가시덤불이 무성하고, 잡목이 우거진 상태여서

마음대로 보행을 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만일 이 ‘지리산 둘레길’이 모두 복원될 경우

새로운 한국의 명소, ‘걷기 좋은 길’의 대명사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중황마을 마을길에 사정없이 떨어져널린 홍시감. 아무도 감을 따는 이 없어 저절로 길가에 떨어져 있다(위). 벽송사 지나 송대마을 가는 길에 바라본 눈부신 가을하늘(아래).



옛길은 그 자체로 그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옛 농로를 보존해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받았고,

일본에서도 키이산맥의 오래된 성지 순례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지리산 둘레길은 경우가 조금은 다르다.

자취를 감추었거나 옛 모습을 잃어버린 옛길을 복원하는 것은

대부분 찬성하고 있지만,

단순히 관광명소로 다님길을 조성하는 것에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둘레길 조성이 관광객을 유입함으로써 발생할 환경의 파괴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리산 둘레길 조성은 시범구간 개방과 함께 우리에게 비밀스러운 속살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나는 무려 10시간을 걸어 지리산 둘레길 시범구간을 온몸으로 느껴보았다.

종루에서 바라본 벽송사.

 

<지리산 둘레길 시범구간 걷기 코스>

남원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실상사 작은학교-중황마을-상황마을-등구재-함양 마천면 창원마을-의탄리-서암정사-벽송사-송대마을


1. 매동마을에서 등구재 넘어 창원마을까지


마을길 위에서 바라본 매동마을 풍경.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은 옛 흙담과 우물이 보기 좋은 두메마을이다.

마을길로 접어들어 뒷산으로 농로를 따라 1km 정도 올라가면

임도가 끝나면서 옛날 산을 넘어 중황리로 넘어가던 옛길이 나온다.

옛길은 말이 길이지 풀 덤불과 잡목이 우거져

초행자는 길을 찾기조차 어렵다.


매동 지나 숲속에서 만난 오래된 개서어나무.


오래된 개서어나무가 여러 그루 들어선 숲에는

참취, 개미취, 벌개미취가 한창 꽃을 피우고,

수정난풀과 각종 버섯들이 나무 그늘에서 자라고 있다.

기슭 아래로 토종벌을 치는 벌통도 여기저기 보인다.

길이 보이지 않는 길.

그러나 분명 산기슭을 돌아가는 옛길의 흔적이 희미하게 나 있고,

그 길을 한참 등산하듯 넘어가면 실상사 작은학교가 나온다. 

2001년 개교한 실상사 작은학교는

현재 46명의 학생이 대안교육을 받고 있는 대안학교(중학교 과정)이다.

이 곳의 교사는 12명, 강사는 10여 명이고

생활관에서 학생과 교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중황마을의 당산나무(위)와 돌로 쌓은 돌서낭 누적단(아래).


원래 이곳은 귀농자를 위한 귀농학교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대안학교와 귀농학교가 한 운동장을 같이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산 아래로 발을 옮기면 중황리다.

중황에는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누적단(돌서낭)을 비롯해

세 군데의 당산이 있으며, 당산마다 여러 그루의 오래된 당산나무를 만날 수 있다.

중황마을 위에 자리한 상황마을에도 이런 당산나무가 여러 그루다.


상황마을에서 바라본 풍경(위)과 멋드러진 굴곡을 펼쳐보이는 상황마을의 다랑논 풍경(아래).


상황마을은 산내면에서 가장 멋진 다랑논 풍경을 보여주는 마을이기도 하다.

구불구불 휘돌아나간 논배미의 굴곡은

그야말로 한국적인 곡선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상황마을에서 걸음을 옮겨 산자락으로 향하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나누고 함양과 남원의 경계를 나누는 등구재가 나온다.


상황마을 사람들이 정자나무 노릇을 하는 당산나무 아래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옛날 함양의 창원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어 남원 인월장을 보러 왔다.

그러나 교통이 좋아진 지금 등구재는 유명무실한 고갯길로 남아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 고갯길을 넘어가면 함양 땅이고, 창원마을이다.


등구재 오르막길. 함양과 남원,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나누는 고개다.


등구재 정상부에서 길은 다시 등산로에 다름아닌

조붓하고 잡목이 우거진 산길로 접어든다.
등구재에서 창원마을로 내려가는 숲길은

두어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숲길이 정갈하게 복원돼 있다.

본래 있던 길에 자라난 잡목과 가시덤불을 쳐내고,

물길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수로를 내어

친환경적으로 복원한 옛길이다.


등구재에서 내려와 만난 창원마을 풍경.


길은 산을 다 내려와 마을길로 이어진다.

함양의 창원마을은 정말 눈에 담기 아까운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위쪽의 다랑논 너머로는 가까이 법화산이 보이고,

멀리는 지리산 천왕봉 능선자락이 보인다.

마을에는 기계화되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 가내 수공업을 하는

작은 한지공장이 있는데, 부부가 농번기를 피해 한지를 만들어낸다.


창원마을의 아름다운 다랑논 풍경.


마을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담도 볼 수 있었는데,

굳이 이름붙이자면 ‘장작이엉담’이다.

겨울에 땔감으로 사용할 장작을 한군데 높이 쌓은 것이 아니라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담장처럼 쌓고,

그 위에 초가지붕에 덮는 이엉마루를 해덮었다.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담이었다.


창원리의 가내수공업으로 운영하는 한지공장(위)과 마을에서 만난 장작이엉담(아래).


창원마을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은 아마도 꽃당산일 것이다.

당산 이름이 꽃당산이다.

꽃당산은 수십 그루의 오래된 소나무가 어울려 커다란 동산을 이룬 모양인데,

당산에 들어서면 용틀임하듯 구부러진 소나무숲이

정말로 꽃처럼 아름답다.


창원리 꽃당산의 당산나무인 소나무 군락.


꽃당산 답사를 마치고 창원마을을 내려오자 점심 때가 다 되었다.

이른 아침 매동마을을 출발해 점심 때가 되어서야

창원마을을 내려가는 것이다.

오랜만에 걸었더니, 무릎과 다리가 아프다고 자꾸만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꼬르륵거리는 뱃속의 신호를 달래는 게 더 시급했다.


창원마을에서 만난 호두 까는 풍경.


2. 의탄에서 벽송사 지나 송대마을까지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의탄리 앞 엄천강은 맑은 물을 하류로 흘려보내고 있다.

하지만 군에서는 이 강의 하류에 댐을 건설하려 하고 있다.

댐 건설에 반대하는 이곳의 초등학생들은

의탄리 당산나무에 댐 반대 문구가 적힌 노란 리본을 매달아놓았다.

시골 초등학생들의 댐 반대 시위는 이렇게 순박하기만 하다.

마천에 사는 대다수의 주민들은 마천댐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댐이 건설되면 이 아름다운 마을이 수장될 것이고,

그것은 도리어 관광지로 알려진 이 곳의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의탄에서 서암정사 쪽으로 오르는 산길.


의탄을 지나 만나는 의중마을에는 빈집이 여기저기 보인다.

어떤 기와집은 아예 지붕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어떤 흙집은 마당에 잡풀이 한가득이다.

의중마을을 지나면 길은 한 사람 정도가 지날 정도의 조붓한 산길로 바뀐다.

얼마 전 폭우와 오랜 동안의 방치로 길은 여기저기 동강나고 무너졌지만,

이 옛길도 인부들이 돌을 쌓고, 흙을 덮어 복원해 놓았다.


 

서암정사의 장독대.


얼마쯤 지나자 양편에 산죽이 우거져 터널을 이룬 멋진 길이 나타난다.

산죽이 하늘을 덮어 캄캄하기까지 하다.

한동안 이어지던 산죽길은 이제 점점 고도를 높여

등산로와도 같은 경사진 오르막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등산이나 다름없다.


벽송사 입구에서 만난 주황색 꽃무릇.


한참이나 오르막 산길을 올라가자 동굴에 암자를 만든 서암정사가 보인다.

그러나 최근에 생겨난 암자인지라 어쩐지 절집의 운치는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서 능선을 옮기면 이제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인 벽송사가 나온다.

서산대사, 사명대사와 같은 기라성같은 선승들이

모두 벽송사에서 수행한 스님들이다.


벽송사 선방에 걸린 목탁.


이 곳의 선방에서는 워낙에 많은 선승을 배출하다 보니,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그리고 그 유명한 변강쇠와 옹녀에 대한 전설도 이곳에 깃들어 있다.

그 옛날 변강쇠가 목장승을 뽑아

전국의 목장승들이 궐기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장소가 바로 벽송사인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이 벽송사 목장승은 변강쇠의 전설이 깃든 목장승으로, 왼쪽의 장승은 벼락을 맞은 상태이다.


그래서 그런지 벽송사에 보관된 두 기의 목장승은

눈과 코가 큼지막한 것이 변강쇠를 닮았다.

두 기의 목장승 중 한 기(금호장군)는 벼락을 맞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벼락에 맞은 상태 그대로 전시돼 있다.

선방 뒤 3층석탑 앞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도인송과

모양이 예쁜 미인송이 함께 자리해 있다.

예부터 벽송사에서는 목장승에게 빌면 애정이 돈독해지고,

미인송에게 빌면 미인이 될 수 있으며,

도인송에게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왼쪽의 소나무가 미인송이고 오른쪽의 구부정한 소나무가 도인송이다.


벽송사를 지나면 길은 더욱 가파르게 봉우리를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송대마을까지는 내내 산행이고 등산이나 다름없다.

조붓한 산길 옆에는 큰갓버섯도 보이고, 테두리방귀버섯도 보인다.

자리공 열매와 산초 열매는 까맣게 익어간다.

하늘을 가린 활엽수의 잎들도 어느덧 누렇게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벽송사 지나 산행길에 만난 테두리방귀버섯.


봉우리를 넘어서자 가파르게 올라온 만큼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계곡의 어두운 곳에서는 다래덩굴이 다 익은 다래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활엽수 숲의 나뭇잎 틈새로 노을이 지기 직전의 하늘이 언뜻언뜻 보인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무릎과 발목은 시큰거린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와 만난 송대마을에는

어느덧 저녁 불빛이 하나 둘 켜지고 있다.


벽송사에서 송대마을 가는 길에 만난, 하늘을 가린 활엽수 잎들. 노랗게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매동에서 출발해 저녁이 되어서야 송대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하루에 걷기에는 조금 힘든 코스라 여겨지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 유서깊은 마을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옛길에서

오랜만에 나는 발 아픈 기쁨을 맛보았다.
오랜만에 나는 '길의 미식가'가 되었다.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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