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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9 액자에 걸어놓고 싶은 고양이의 봄 (16)

액자에 걸어놓고 싶은 고양이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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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에 걸어놓고 싶은 고양이의

 

5월도 잔인한 달.

멀쩡한 땅에서 라일락은 피어나고,

나는 굴다리를 건너 역전에서 잠시 머물다가 고양이숲으로 가 오후 3시의 적막에 젖었다.

봄 햇살은 가죽나무 잎들 사이로 찬란하게 쏟아졌다.

 

 

역전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라도 오면 언제나 한두 마리쯤 고양이숲에 앉아서 냐앙거리던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로 건너편 부추밭을 지나 파밭에서 나는 소리였다.

파밭에 이르자 그 앞에 펼쳐진 꽃다지 무리가 봄바람에 실랑거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파문이 일었다.

 

 

 

그런데 가만, 꽃다지 무리 속에서 들썩이는 저것은?

고양이였다.

이 녀석들 여기 있었구나!

여기 저기 요기 역전댁이 한 자리에 다 모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모인 것은 아니었다.

 

 

녀석들은 꽃다지밭과 파밭에 각자 흩어져 서로 상관없다는 듯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여기는 파밭으로 들어가 다리쉼을 하다가 이따금 파 대궁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동정을 살폈다.

여전히 경계심이 심한 역전댁은 꽃다지밭 언저리로 도망가

언제라도 도망갈 자세를 취한 채 엉거주춤 앉아 있었다.

 

 

반면에 저기는 봄소풍 나온 소녀처럼 들뜬 마음으로 꽃다지밭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노란 꽃다지밭을 따라 걷다가 하얀 꽃다지밭 속으로 들어가

혼자서 숨바꼭질을 즐겼다.

녀석이 꽃다지밭으로 들어가는 순간 고양이는 사라지고,

꽃다지 무리만이 고양이가 가는 대로 출렁거렸다.

그게 재미있다고 녀석은 멀쩡한 길을 놔두고 꽃다지밭 속으로 자꾸만 걸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요기 녀석도

성큼성큼 파밭에 은신한 여기에게로 접근했다.

보아하니 여기를 놀라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녀석은 살금살금 다가가 갑자기 여기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여기가 파밭을 뛰쳐나와 꽃다지밭을 내달리고,

그런 여기를 좇아 요기도 이리저리 따라다니고.

 

 

 

녀석들의 평화로움과 자유가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잠시 콧잔등이 시큰했다.

액자에 걸어놓고 싶은 고양이의 봄.

고양이에게 5월은 가장 아름다워서 가장 잔인한 달이다.

특히 시골에 사는 시골고양이들에게는 5월이 겨울보다 더한 고비의 계절이다.

텃밭 농사가 시작돼 새싹이 올라오는 것도 5월이고,

그것을 파헤쳤다고 쥐약을 놓아서 가장 많이 고양이를 죽이는 것도 5월이다.

 

 

 

임신묘들이 주로 새끼를 낳는 계절도 5월이고,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상당수 눈도 못 뜨고 죽어가는 계절도 5월이다.

어미고양이는 새끼들의 장래를 위해 영역을 확보하려 하고,

영역을 잃은 고양이는 또 다른 영역을 찾아서 영역전쟁을 벌여야 하고.

영역대란이 일어나는 것도 주로 5월이다.

하지만 지금 역전고양이들은 걱정없이 꽃놀이를 즐기는 행복한 시간이다.

닥치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이 순간을 즐겨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 역전고양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봄바람은 살랑살랑.

꽃다지는 일렁일렁.

고양이는 꾸벅꾸벅.

너무 아름다워서 잔인한 봄은 그렇게 지금 꽃다지밭을 흘러간다.

고양이의 아름다운 시절도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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