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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8 사람 떠난 오지마을, 무건리의 쓸쓸한 봄 (10)

사람 떠난 오지마을, 무건리의 쓸쓸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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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떠난 오지마을, 무건리의 쓸쓸한


통리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본 삼척 도계 일대의 산자락과 산중마을의 밤 풍경.

때때로 차를 버리고, 걷고 싶은 길이 있다. 오로지 발바닥으로 흙바닥과 교감하며, 길의 질감을 느끼고 싶은 길이 있다. 도계 인근 무건리 가는 길이 그렇다. 무건리(‘물건네’에서 유래) 소재말에서 큰말까지 이어진 십여릿길은 차와 사람을 전혀 만날 수 없는 심심하고 무료한 길이다. 이 은밀한 길은 산 아래 소재말에서 시작된다. 소재말에서 가파른 고개(국시재)를 올라서면 고갯마루에 성황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거기서부터 큰말까지는 비탈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내내 이어진다. 다만 너무 심심하지는 않게 길은 산자락의 굽이를 따라 구불구불 에움진다. 산의 능선도 길처럼 흘러서 멀찍이 다른 능선과 만나고 겹치고, 헤어진다.


무건리 큰말로 들어가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산모롱이길.

수시로 몸을 바꾸는 구름과 바람에 잎들이 맞부딪치며 내는 미묘한 소리와 봄산을 아찔하게 물들이는 초록 계통의 빛깔과 흰색에서부터 붉은색까지 길가에 핀 갖가지 봄꽃과 숲에 깃든 적막과 적막을 흔드는 어떤 새의 음악들. 그 속으로 걸어간 발자국들. 도로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나는 길 위에서 보았다. 차를 타거나 속도를 내서 지나가면 보지 못했을 것들을 길 위의 보행에서 나는 보았다. 그것이 가끔씩 산중의 비포장길에 차를 버려두고 굳이 내가 흙길을 밟아보는 이유다. 인류 문명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길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것은 속도와 물류 기능이 더해진 ‘도로’가 되면서 자연과 자원을 파괴하는 통로가 되고 말았다.


무건리 큰말 가는 길에 만난 산비탈의 외로운 집 한 채.

동양에서의 길이 인생의 순리나 깨우침을 뜻하는 ‘도’(道, 길)였다면, 서양의 길은 단지 교통과 이동을 목적으로 한 ‘로’(路, 도로)에 가까웠다. 서양에서는 옛날에도 산허리를 자르고 속도를 내기 위해 직선으로 길을 내고, 바닥에 돌로 포장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모든 길이 통한다던 로마의 길도 그러했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일부러 산을 까뭉개고 바닥에 돌을 깔면서까지 길을 내지는 않았다. 고개가 있으면 넘어가고, 산이 있으면 돌아가면 되는 거였고, 사람이 다니던 자취가 쌓여 자연스럽게 길이 되었다. 동서양 길의 차이는 바로 삶의 양식과 정신의 차이에서 온 것이다.


사람이 떠나 빈집으로 남은 무건리 큰말의 흙집 한채.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오지와 극지를 탐사했으며, 또 그런 사람을 위대한 탐험가로 부르곤 한다. 그들이 오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았고, 이미 문명과 사회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눈에 띄었다는 것만으로 ‘발견’이라고 한다. 서양인이 자랑하는 콜럼버스나 아문센은 정복을 위한 선발대에 다름아니었다. 그들이 다녀간 뒤에는 그들이 왔던 길을 따라 어김없이 총칼을 앞세운 군대가 들이닥쳤다. 그리하여 탐험가들이 다녀간 곳은 십중팔구 식민지가 되거나 주객이 전도되어 원주민이 되레 오랜 터전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그들의 탐험은 정복을 위한 것이었고, 그들의 길은 지배를 위한 것이었다. 전통적인 우리의 길이 맨 처음 파괴되기 시작한 것도 일제가 침략과 수탈로에 다름아닌 철길과 교통로를 건설하면서부터이다.


무건리 산모롱이길에서 만난 수수꽃다리(위)와 붉은병꽃(아래).

물자수송과 침략을 위해서는 되도록 넓고 곧게 도로를 건설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수천년이나 이어져 온 우리의 길은 뭉청뭉청 잘려나가거나 일직선으로 뻗은 신작로가 되고 말았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시작된 경제개발시대에 이르러 또한번 우리의 옛길은 대대적인 수난을 당해야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수난의 길은 계속되고 있다. 길이 사라진 곳에는 어김없이 포장된 도로가 생겨났다. 길은 교통로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자연이고 문화이고, 삶의 유산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제 길이란 보기 좋게 포장해서 사람과 자동차가 좀더 편하게 다니도록 만들어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안에 깃든 자연과 문화와 숱한 사연과 전설과 사람에게 전해주는 정서적 기능과 미적 기능을 모두 외면한 채 그저 깔아뭉개서 시원하게 포장도로를 만들어야만 하는 게 건설공화국의 의무이자 사명처럼 인식되고 있다.


무건리 산모롱이길에서 만난 분꽃나무.

그래서 더욱 겨우 남아 있는 시골길은 눈물겹다. 간신히 흘러가는 시골길은 안쓰럽다.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시키고 걸어야 제격인 무건리 가는 길. 이 길을 나는 가을에도 왔고, 봄에도 왔다. 가을에는 침엽수의 무덤덤한 갈색 빛깔을 구경하며 이 길을 걸었고, 봄에는 갖가지 꽃 핀 풍경을 보며 또 이 길을 걸었다. 길 위에서의 시간은 가을보다 봄이 더디었다. 가을에는 너무 늦게 그 길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왔을 때는 날이 다 저물었다. 어둡기 전에 내려오려고 그 때는 너무 빨리 걸었다. 봄에는 아침 일찍 떠나서 점심 때가 훨씬 지나서야 내려왔다. 봄빛과 봄꽃을 구경하느라 발걸음도 덩달아 더디었다. 가을 저녁의 길은 약간 두려웠고, 봄 아침의 길은 더없이 눈부셨다.


주인 없는 무건리의 빈집 마당에 핀 산복사꽃.

소재말에서 큰말로 오르는 고개에는 아예 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기를 만들어 놓았다. 설령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길은 걸어서 발바닥으로 길의 질감을 퍼올려야 제격인 길이다. 길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내게 보여주며 걸음을 멈추게 했다. 가령 난생 처음 보는 귀룽나무꽃이라든가 분꽃나무가 그랬고, 흔하게 보았지만 여전히 사람을 환장하게 하는 산복사꽃이며, 개살구꽃이 그랬다. 무건리 큰말에는 농사철에만 한시적으로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까닭에 이른 봄, 늦가을에는 길에서 사람구경조차 할 수 없다. 봄에도 가을에도 큰말의 집들은 모두 텅 비어 있다. 집이라고 해봐야 고작 10여 채도 되지 않지만, 대부분은 쓰러져가는 빈집이고, 사람의 흔적이 보이는 집도 겨우 서너 채에 불과하다.


무건리 오르는 길에 만난 산자락의 매발톱꽃.

큰말의 빈집 마루에 앉아 있으면, 산바람이 금세 걸어오면서 흘린 땀을 식혀준다. 도계 인근 산자락의 장쾌한 풍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어떤 집은 주인이 떠난 뒤, 부엌이며 안방의 벽이 다 무너져 내렸다. 어떤 집은 아직도 사람이 오며가며 하는지 농기구며 세간이 그대로 다. 집이 몇 채 안되는 관계로 집 구경은 금세 끝이 난다. 마을 뒤편으로는 두루뭉실한 산자락을 통째로 빌린 비탈밭에 무언가를 심었다가 거둔 흔적이 역력하다. 한 시간도 안 걸리는 마을 구경을 마치고 나는 주인도 없는 빈집 마루에 벌렁 누워 한참이나 한량 흉내를 내보았다. 그러다 얼핏 잠이 든 것도 같은데, 일어나보니 점심 때가 한참 지났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나는 좀더 오래 그곳의 빈집 마루에서 빈둥거렸을 것이다.


무건리 소재말에서 만난 전동섭 씨가 아궁이 불씨를 꺼내고 있다.

큰말에서 내려와 다시 소재말에 이르렀을 때, 마을에서 만난 전동섭 씨(72)는 부엌에서 군불을 때고 있었다. 아궁이 옆에는 옛날부터 써오던 화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젊었을 때만 해도 무건리의 약 70여 가구가 대부분 너와집이거나 굴피집이었다고 한다. 더러 청밀짚을 지붕에 이은 청밀 초가도 있었다고 한다. 내가 목이 말라서 마실 물을 청하자, 그는 바가지 가득 찬물을 떠와 건넨다. 물맛이 달다. 오랜만에 왕복 이십여릿길을 걸은 터라 단숨에 나는 찬물 한 바가지를 다 비워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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