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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9 소곡주가 앉은뱅이술이 된 까닭은 (47)

소곡주가 앉은뱅이술이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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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곡주가 '앉은뱅이술'이 된 까닭은
- 설날 앞둔 소곡주 마을에서


소곡주를 담은 술독에 이렇게 용수를 박아 놓고 술을 뜬다. 처음에 뜨면 걸쭉한 동동주가 되고, 하루 정도 기다리면 맑은 약주가 된다. 


서천군 한산면 단상리와 성외리 마을에서는 요즘 설날을 앞두고

소곡주 익는 냄새가 알싸하게 풍겨온다.

단상리와 성외리는 소곡주로 유명한 한산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는 이른바 소곡주 마을이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마을의 절반 이상 가구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곡주를 만들어오고 있다.

한산에서 소곡주를 언제부터 빚어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지만,

백제가 멸망할 당시 여자들이 소복을 입고 술을 빚어 소곡주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소곡주는 찹쌀과 누룩을 딛어(누룩을 빚는 것) 100일주로 만든 술로써

도수는 증류하지 않은 약주인 경우 18도, 증류한 불소주인 경우 43도 정도 된다.



발효중인 누룩과 찹쌀을 걷어내자 샘처럼 술이 솟아난다.


흔히 전통주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소곡주가 으뜸이라고 말한다.

오죽하면 이것을 ‘앉은뱅이술’이라고 불렀을까.

소곡주를 ‘앉은뱅이술’로 부르게 된 유래는 대체로

술이 너무 맛있어 먹다 보면 일어날줄 모르고 앉은뱅이가 된다는 것,

술이 독해 먹고 일어나면 도로 주저앉게 된다는 것,

이것을 마시면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 등인데,

모두 술이 맛있고 독한 것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도 몇 가지 있다.

옛날에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한산의 주막에서 소곡주를 마시다가

술에 취해 앉은뱅이처럼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선비가 과거를 보지 못했음은 당연지사다.
마을에서 회자되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이것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소곡주를 떠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모양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며느리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식구들이 술독을 찾아가보니,
며느리가 거기서 술에 취해 앉은뱅이처럼 일어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며느리는 술맛 좀 본다는 게 그만 취하고 만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한번은 집안에 도둑이 들었는데, 하필이면 도둑은 소곡주가 담긴 술독을 발견하고
한두 잔 맛보다가 그만 주저앉아버렸다는 것이다.



술을 뜨기 위해 용수를 박는 모습.


어쨌든 한결같이 소곡주가 그만큼 맛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시중에서 파는 소곡주와 단상리나 성외리 등에서 파는 소곡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선 마을에서 담는 소곡주가 시중의 술보다 맛도 진하고, 색도 탁하다.

또한 마을에서 담는 소곡주가 시중의 술보다 발효주 특유의 누룩 냄새가 더 많이 난다.

마지막으로 마을에서 담는 소곡주가 시중의 술보다 먹고 난 뒤의 뒷끝이 개운하다.

그러나 단상리나 성외리 마을에서도 집집마다, 심지어 항아리마다

술맛이 다른 것이 소곡주다.



한산모시관 앞에 자리한 한산 소곡주 양조장에서 소개한 소곡주 빚는 과정.


분명한 것은 소곡주는 한산에서, 그것도 건지산 아랫마을인

성외리나 단상리 등에서 만든 것을 최고로 친다.

이곳의 건지산 물이 워낙에 좋아 인근의 다른 마을에서조차

건지산 물을 길러 올 정도라고 한다.

그러므로 소곡주의 첫 번째 비법은 바로 담는 ‘물’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소곡주가 거기서 거기지 뭐, 하는 사람들도

한산의 소곡주 마을에서 만든 잘 익은 술을 맛보고 나면

마트에서 파는 출처불명 소곡주는 쳐다보지도 않게 된다.

1.8리터 됫병 하나에 1만 5천원을 주고 나도 두 병이나 차에 싣고 왔는데,

술꾼도 아닌 내가 닷새 만에 됫병 하나를 바닥내고 말았다.

처음엔 그저 맛이나 보자고 한 것이

정말로 앉은뱅이가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성외리와 더불어 한산에서 으뜸으로 꼽는 소곡주 마을, 단상리 풍경.


솔직하게 내 입맛대로 소곡주를 평가하자면 이렇다.

우선 한 모금 마시면 입안 전체에 발효주 특유의 누룩 냄새가 온 입안을 적신다.

또한 쌉싸름한 맛보다 달착지근한 맛이 더 강해

계속해서 마시게 되는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다.

찹쌀술 특유의 찐득찐득함을 느낄 수가 있다.

술잔을 비우고 나면 시원한 강바람이라도 지나간 듯 입안이 개운하고,

혀끝이 쩝쩝 나도 몰래 입술에 남은 술을 핥게 만든다.

문제는 마시다 보면 몇 잔째인지 가물가물해지면서

일어나려는 순간 비틀거리게 된다는 것.

이번 설날에는 비싼 위스키나 물 건너온 와인 대신

전통주 중에서도 맛이 으뜸인 소곡주 선물이 어떨까.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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